히죽히죽. 20×15. 2020.
히죽히죽. 20×15. 2020.

혼신을 기울인 작품의 마지막 화룡점정(畵龍點睛)은 그 작품과 장소에 걸맞은 표구(表具)라. 모두가 낙관(落款) 찍는 것이 마지막이라 여기지만 이는 어림없는 소리이니. 작품을 더 아름답게 때로는 더 못나게, 더 크게 때로는 더 작게, 더 화려하게 때로는 더 초라하게 만드는 것조차도 표구의 몫인지라. 그래서 작품을 하는 작가는 표구하는 당신과 호흡을 맞추어야 하니, 역시 세상 갑(甲)은 따로 있었더라.

도로변 나지막한 표구사가 저만치 눈에 들어오면 빨리 뛰어서 가고픈 그곳이라. 사람 좋은 사람이 있으니 작품을 앞에 두고 주거니 받거니 농(弄)을 즐겨 하니라. 내가 들어서면 산만해지고 내가 사라지면 다시 평온을 찾는 점잖은 사람들의 아날로그 아지트가 그곳이라.

그곳에 들락날락 최고의 까다로운 이 있었으니 이가 분명 나인지라. 마감 임박하여 가져가서는 당장에 표구해 내놔라 떼쓰는 자 이내 몸이고, 찢어진 작품 붙여 달라, 화선지에 얼룩 지워 달라 이내 몸이며, 치우친 것 고쳐 달라 반듯한 거 옆으로 밀어 달라 떼를 쓰는 이 이 몸이라.

이뿐이면 괜찮은 객(客)이라. 작품 하나 가져가면 비단 색깔 다 대보고 비단 질감까지 만져본다. 액자틀을 비교하며 글씨 내용에 맞겠는가 글씨 분위기에 맞겠는가 물음표가 난발하고, 현장 사진 가져다가 시뮬레이션을 돌려 대고, 취급 사양 작은 작품 수십 개 펼쳐 놓고선 눈앞에서 요렇게 저렇게 요구하니 표구인생 처음 겪는 일이시라. 

히죽히죽 웃으심은 내가 사랑스러워 웃는 겐지 기가 차 웃는 겐지. 문 앞에서 내 차가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심은 헤어짐이 아쉬움인지 소금 뿌리시려 망보시는 건지.

돌아보며 히죽히죽 “무조건 오래오래 사셔야만 합니다. 저 붓 놓는 순간보다 꼭 하루는 더 살아내셔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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