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첫 시집’ 함께 펴낸 김희주·박은성 모녀

김희주 시인과 딸 박은성 양이 함께 만든 시집을 들고 있다. 웃음 많은 엄마가 시를 쓰고, 시크한 딸이 그림을 그렸다.
김희주 시인과 딸 박은성 양이 함께 만든 시집을 들고 있다. 웃음 많은 엄마가 시를 쓰고, 시크한 딸이 그림을 그렸다.

[뉴스사천=고해린 기자] 열셋, 그리고 마흔일곱. 강산이 3번 하고도 반이 바뀌는 터울이다. 그럼에도 다정하게, 때론 아웅다웅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은 친구 같았다. 12월 1일 김희주(47) 시인과 딸 박은성(13) 양은 시집 『시계 밑에 커다란 찻잔을 두고 싶다』를 발간했다. 웃음 많은 엄마는 10년 전부터 작업해 온 시들을 묶었고, ‘돈 많은 백수’가 꿈인 시크한 초등학생 딸은 시집에 들어갈 그림을 맡았다. 모녀가 힘을 합쳐 만든 첫 시집은 ‘가족끼리 뚝딱뚝딱 힐링 시집’이란 부제를 달았다. 12월 17일, 김 시인의 작업실이 있는 삼천포의 ‘바다가 분다’ 공방에서 두 사람을 만났다. 

“저는 1974년생, 맨드리 김희주라고 합니다.”

김 시인의 짧은 소개 뒤로 은성 양의 인사가 이어졌다.

“저는 용산초등학교 6학년 박은성이에요. 더 이상 말할 게 없어요.”

첫 마디부터 엄마와 딸은 달랐다. 수줍고 조심스러운 김 시인과 반대로, 은성 양은 거침없었다. ‘돈 많은 백수’라는 꿈도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란다. 가식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솔직한 대답에 김 시인이 되려 당황해하기도. 이렇게 다른 엄마와 딸, 어떻게 함께 시집을 만들 생각을 했을까?

“지난 6월에 문화공간 담다에서 개인 시화전을 열었어요. 그때 한 번 합을 맞춰본 걸 계기로, 제가 은성 양에게 이번 시집의 표지와 삽화를 맡아달라고 부탁했죠.”  

김 시인이 9월 말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창작지원 사업에 대상자로 선정되면서, 협업이 시작됐다. 12월까지 대략 한 달 반 동안 빠듯하게 책을 준비했다고. 작업과정은 이렇다. 시를 보고, 모녀가 함께 삽화 방향을 구상한다. 이후 은성 양이 그린 스케치를 김 시인이 보고, 허가(?)가 나면 작업 진행!

작업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었냐고 묻자, 은성 양의 장난 섞인 투정이 이어졌다.

“처음에는 엄마가 ‘그림이 흑백이고, 한 50장만 그리면 될 거야’라고 해서 어렵지 않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작가님이 수정을 많이 요구하더라고요. 아직도 기억나는 게, 「세 천사들」이란 작품에 들어간 삽환데, 수정만 4번을 한 거 같아요.”

“은성이가 무슨 말을 할지 무섭네요.(하하하) 가끔은 은성이가 언니 같기도 해요. 은성이와 함께 작업하면서 딸이라고 제 맘대로 하는 게 아니라, 작업에 대한 대가를 충분히 지급하고, 동등한 작업자로서 타협점을 찾아갔죠.”

12월 17일 '바다가분다' 공방에서 만난 김희주, 박은성 모녀.
12월 17일 '바다가분다' 공방에서 만난 김희주, 박은성 모녀.

첫 시집인지라, 두 사람 모두에게 애착이 남다를 터. 은성 양은 가장 마음이 가는 작품으로, 「그림자」의 삽화를 골랐다. 작업 초반에 의욕이 넘칠 때 그렸기 때문이란다. 김 시인은 「엄마」와 「당황」이라는 시를 꼽았다. 

“쉽게 말하면 ‘알몸’ 같아요. 제 속을 다 드러내서 창피하기도 하고, 두려움도 있죠. 「엄마」는 은성이를 낳고 얼마 안 되서 쓴 신데, 저희 엄마가 1남 3녀를 낳으셨거든요. ‘엄마도 네 아이를 키우며 많이 힘들었겠지?’하고 엄마를 생각하며 쓴 시라 남달라요. 「당황」은 은성이가 어릴 때 옷을 입히면서 있었던 이야기를 담았어요. 두 시 모두 엄마와 딸내미 얘기네요.(하하)” 

은성 양은 친구들이 시집이 나온 걸 알게 됐다고 털어놓으며, 또래 친구들이 시집을 갖고 있다가 어른이 되어 다시 읽어봤으면 좋겠단다. 

“어른이 되면 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잖아요. 시집 낸 건 비밀이었는데, 제일 친한 친구가 단톡방(단체 카톡방)에 말해서 다른 애들도 다 알게 됐어요. 친구들이 ‘앞으로 유명해져서 모른 척하면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김 시인도 이번 시집이 독자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요즘엔 다른 무엇보다 한 마디의 말과 위로가 굉장히 필요한 시기잖아요. 저는 나쁜 말을 하면 자기 자신이 제일 먼저 듣는다고 생각해요. 좋은 말을 하는 건 결국 남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게 아닐까요? 시집을 읽는 순간만큼은 읽는 분들이 자기 자신을 생각하고, 잠깐이라도 힐링했으면 해요.”

은성 양에게 이번 시집은 중학생이 되기 전 엄마와 함께 만든 하나의 추억이란다. 김 시인은 딸과 함께 뚝딱뚝딱 오두막집을 지은 느낌이라고. 

마지막으로 올해 크리스마스 계획을 묻자, 은성 양의 직구가 날아왔다. 

“요즘 같은 때는 밖에 나가면 욕먹어요. 하루 종일 집에서 컴퓨터 해야죠.”

“(하하하) 은성이 때문에 웃어요. 코로나19로 조심스러운 시기니까, 가족들과 함께 집에서 ‘방콕’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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