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선한의 영화이야기] '원더우먼 1984'

'원더우먼' 포스터.
'원더우먼' 포스터.

원더우먼이 돌아왔다. 도대체 얼마 만의 블록버스터인가! 코로나19는 풍요롭던 연말 극장가를 꽁꽁 얼어붙게 만들었다. 새로운 영화가 사라진 연말 극장가의 유일한 텐트폴 영화가 <원더우먼 1984>다. 대작들이 줄줄이 개봉을 연기하는 마당에 반갑지 않을 수가 없다. 기대에 부응하듯 오프닝 시퀀스는 압권이다. 돌아온 거장 한스 짐머의 OST가 더해져서 제대로 이 ‘과잉’의 시대를 누려보자는 욕망이 끓어오른다. 황금빛 슈트와 신무기를 장착하고 미국의 80년대를 반영하듯 러닝타임 내내 ‘사치’가 넘친다. 다만 안타깝게도 기대치를 부응하는 것은 초반의 이게 전부다. 히어로 영화 특유의 볼거리도 빈약하고 무엇보다 서사가 약해졌다. 

폭압과 독재의 암울함이 지배하던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의 80년대는 황금기였다. 이른바 신자유주의 특유의 욕망과 개성이 넘쳐나던 시대, 물질은 풍족하고 패션은 화려했으며 음악 또한 다양하고 풍성했던 이 시기가 <원더우먼 1984>의 배경이다. CG의 힘을 빌려 정교하게 재현된 워싱턴 D.C.는 당시 미국의 풍요로움을 제대로 보여준다. 황금빛으로 치장하고 온몸으로 절대악에 맞서는 인류애의 화신은 이 당시 미국의 전형성과도 일맥상통한다. 지난 2017년 <원더우먼>에서 제1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슈퍼히어로로 거듭나는 프린스 다이애나를 보여줬다면 <원더우먼 1984>는 본격적인 활약상을 보여준다는 설정인데, 스케일은 커지고 황금빛 액션으로 무장했음에도 불구하고 돌이켜보면 그냥 반짝이는 황금빛 비주얼에 가려져 버렸다.

과잉은 파멸로 이어진다는 메시지는 충분히 설득력 있지만 전달 방식이 피로해서 서글프기만 하다. 좋은 배우와 좋은 이야기와 좋은 음악까지 다 가졌지만 기초공사인 시나리오가 부실한 상황이라 전체적으로 허술한 느낌이다. ‘원더’한 액션이 사라진 자리에 로맨스로 채워서 슈퍼히어로가 주인공인 로맨틱 코미디를 만들었으니, 관람자의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겠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앉아서 놀랄만한 쿠키 영상은 보고 나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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