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호 씨.
이용호 씨.

전대미문의 바이러스로 홍역을 앓고 있는 요즘, 수상한 시절을 아는지 모르는지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청명한 자태로 세모를 그려내고 있다. 갑갑한 숨통 짊어지고 올라선 곳은 각산 봉수대다. 인적 뜸한 전망대에는 망원경 혼자 축 처진 어깨를 한려수도에 던져놓고 망중한에 빠져 있다. 하루를 달려온 시간이 은빛 산란에 여념이 없는 실안에는 부지런한 노을이 다시 내일을 잉태하기 위해 산고에 들어간다.

봉수대에 서서 바다를 바라본다. 외적의 노략질이 횡행했던 암울이 시대, 연안의 방어를 책임졌던 각산 봉수대는 창선 대방산에서 신호를 받아 곤양 우산봉수대와 용현 안점산으로 불과 연기를 피워 위급함을 알렸고 다시 진주 망진산을 거쳐 한양으로 전갈이 이어졌을 터, 그 긴박했던 여정을 생각해보니 단아하게 재현된 봉수막사가 얼마나 긴장과 고단의 진지였던가를 짐작하게 한다. 더구나 기상악화 등 봉수 여건이 충족되지 않았을 땐 봉졸들이 직접 달려가 상황을 전달했다고 하니 그 노고에 숙연함이 밀려온다.

백척간두에 처한 백성과 나라의 안위를 염려하며 피워 올렸을 봉수는 국방의무의 당위성도 있지만 그 덕분에 민초들의 피해를 최소화했고 위기로부터 나라를 구할 수 있었으니 분명 희망의 횃불이었고 내일을 향한 간절한 평화의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코로나의 침략이 극에 달한 지금의 우리에게도 간절한 선물이요 어둠을 밝히는 청사진에 다름없다.

다시 연말연시다. 코로나19라는 희대의 세균에 시달리며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악몽 같은 한 해였다. 아니 아직도 연속이다. 하루 천명 내외의 확진자가 속출하고 있는 가운데 3차 대유행이 현실이 되었다. 고비를 넘겨야 한다. 정부는 급기야 특별방역의 강력한 조치를 발표했다. 내년 1월 3일까지 5인 이상 모임 금지를 비롯해 집합시설의 운영을 중단시켰다. 종교도 예외는 아니다.

5인이라는 명시적 숫자 속에는 제발 모이지 말라는 간곡한 당부가 담겨있다. 이번 방역 제방이 무너지면 그 피해와 고통은 한계를 넘어설지도 모른다. 고통을 전담하고 있는 의료진과 관계자들 그리고 소상공인은 물론 우리 모두에게 다가올 타격은 두렵기까지 하다 당장 백신 접종을 기대할 순 없지만 우선 개개인의 강력한 의지와 참여가 최선의 백신이 될 것이다. 꼼수를 부리거나 편법을 동원한 이기주의는 절대 용납될 수 없다.

최대 축제인 연말연시를 코로나19에 저당 잡힌 심정이야 오죽하겠는가. 누적된 피로와 짜증 그리고 감사와 위로까지 깡그리 빼앗아간 코로나의 저주를 똑똑히 기억하고 복수하려면 올해만은 한발 물러서는 인내와 지혜가 필요하다. 해와 달과 낮과 밤은 잠시 잊고 모두 슬기로운 은둔 생활 속으로 잠입하는 수행의 과정이 요구된다. 그것이 해넘이와 해돋이와 연하장과 새해에 대한 예의고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창조적 사명이 될 것이다. 서로 조금만 보듬고 위로하며 이제부터 다시 시작될 세균과의 전투에서 반드시 승리를 거두어야 한다.

한 해가 저문다. 전례 없는 마스크 가면으로 치열하게 싸운 한 해였다. 시시각각 변하는 코로나 상황을 봉수처럼 피워 올리며 희로애락을 공유했던 고단한 나날이었다. 이제 그 끝을 봐야 한다. 신축년 흰 소의 해, 우리 사회에 하루빨리 희망의 횃불이 활활 피어오르길 갈망한다. 우리가 그 청신호를 올리는 봉수군이 되어야 하는 이유다. 새해에는 모두에게 복이 가득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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