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창섭 시인.
송창섭 시인.

인간은 자신의 사상이나 감정을 표현하고, 의사를 소통하기 위해 언어라는 수단을 사용합니다. 소리를 활용한 음성 언어와 글자로 표기한 문자 언어가 단연 으뜸이겠지요. 게다가 몸짓과 손짓을 활용한 수화가 있고, 표정이나 수기, 부호 등으로 간단하게 뜻을 전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인간은 특히 문자 언어를 가짐으로써, 삶과 죽음 사이에서 일어나는 숱한 과정들을 기록으로 남기는 인류사의 전환점을 맞이합니다. 

우리나라의 기본 문맹률은 세계 최저 수준입니다. 물론 이는 문해文解를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능력으로 국한시켰을 경우를 말합니다. 단순히 말은 할 줄 알되 글은 쓸 줄 모르는 까막눈이, 문맹자의 비율이 매우 낮다는 얘깁니다. 낮은 비율의 문맹자 대부분은 70세 이상의 어른들입니다. 사람마다 쉽게 익혀 써서 편안하게 만들겠다는 한글 창제 정신과는 맞지 않는다고 할 수 있겠지요. 이를 개선하기 위해 여러 지방 자치 단체에서는 성인문해교실을 열어 어른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나타낼 수 있도록 말글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결코 만만치 않은 과정이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참고 견뎌서 말글을 깨우친 분들이 있습니다. 삶의 빛깔을 순수하게 시로써 드러낸 어른들의 맑고 꾸밈없는 마음을 엿볼까 합니다. 

“내 어릴 때/똥 누면 뒤를 지푸래기로 딱고/우리 할아버지는/‘야이야 똥이 누고 싶푸면/집에 뛰와서 누래이/거름하구로’ 하셨서요/똥도 안내삐던 그때가/더 좋앗서요” 오애자의 「똥 이야기」라는 시입니다. 

‘물에 빠지면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는 속담은 지금도 많이 쓰고 있지요. 그 지푸라기로 뒤를 닦는다는 말은 동화책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인데 사실이었다니 놀랍지요. 종이가 없거나 있어도 귀했던 가난한 시절의 풍경입니다. 신문지나 전단지를 구겨서 닦을 때엔 그래도 형편이 좀 나아진 뒤입니다. 어릴 적에 똥지게꾼들은 똥장군을 똥지게에 짊어지고 좁고 굽은 골목길이나 언덕, 내리막길을 종종걸음으로 잘도 다녔습니다. 진동하는 냄새 때문에 코를 잡고는 똥지게 뒤를 쫄쫄 따라다닌 기억이 납니다. 밭에 똥오줌을 갖다 부어 거름으로 삼던 일도 예사였지요. 자라는 배추가 신문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모습은 그야말로 배꼽 잡을 사건이었습니다. 자신의 몸에서 빠져나온 똥오줌일지언정 더럽다고, 구린내 지린내 난다고 등 돌리고 멀리하는 현실과는 한참 다릅니다. 똥오줌도 버릴 게 없었던 그때는 ‘먹거리→사람→똥→거름→먹거리’가 선순환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좋았다는 고백은 그리움의 또 다른 얼굴이겠지요.    

사투리를 쓰면 어떻고 글자가 틀려 맞춤법에 엇나가면 어떻습니까. 어렵지 않습니다. 잘나 보이려 억지로 떼를 쓰지도 않습니다. 기교를 부리지 않으니 읽기가 쉽고 뜻을 헤아리기 편합니다. 겪은 일을 그대로 끄집어낼 따름입니다. 글로써 이만하면 남부럽잖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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