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삼조 시인.
정삼조 시인.

지난주에 몹시 춥더니 며칠 포근하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소한 대한 다 지내고 다음 절기는 입춘이다. 추위는 아직 남았겠지만, 봄이 시작된다는 입춘(立春)이라니 그 말만 들어도 기분이 상쾌하다. 다소 앞질러 봄날을 그려 보자.

봄날의 우리 고장 바다 풍경을 가장 잘 노래한 시로는 아무래도 박재삼 시인의 시 「봄바다에서」를 꼽지 않을 수 없다. 첫 연인 ‘화안한 꽃밭 같네 참.’이란 구절도 절창이지만, 마지막 연인 ‘돛단배 두엇, 해동갑하여 그 참 흰나비 같네.’에 이르러서는 1960년대 이전의 우리 고장 앞바다 모습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다. 첫 연의 ‘꽃밭’이라는 표현은 봄날 잔물결이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이 시에서 봄날 우리 바다는 꽃밭이 되었다. ‘해동갑하여’라는 말은 ‘해와 함께 하여’라는 뜻이니, 마지막 연에서는 흰 돛단배 몇 척이 봄날 저물도록 ‘꽃밭을 노니는 나비’처럼 섬들 사이를 오가는 모습을 연상하면 되겠다.

실제 6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우리 고장 앞바다 섬들의 주 교통수단은 돛단배였다. 특히 정기여객선이 없었던 신수도, 늑도, 마도, 저도를 비롯해 행정구역이 통영이었던 수우도, 사량도, 욕지도, 두미도 사람들도 돛단배를 저어 삼천포에 와서 볼일을 보곤 했다. 물감이 귀한 시절이어서인지 하얀 옷에 하얀 돛단배를 탄 사람들이 오가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박재삼 시인은 이 시에서 꽃밭으로 표현한 햇살 받은 물비늘을 죽은 사람들의 영혼이 반짝이는 것으로 보고, 이 바다를 저승과 이승이 함께 하는 공간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니 ‘남평 문씨 부인’으로 대표되는 죽은 이들의 보살핌 속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는 상상을 펼치고 있는 셈이 된다. 시 전체를 인용해 본다.

1/화안한 꽃밭 같네 참. //눈이 부시어, 저것은 꽃 핀 것가 꽃 진 것가 여겼더니, 피는 것 지는 것을 같이한 그러한 꽃밭의 저것은 저승살이가 아닌 것가 참. 실로 언짢달 것가 기쁘달 것가. //거기 정신없이 앉았는 섬을 보고 있으면, 우리가 살았닥 해도 그 많은 때는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이 숨소리를 나누고 있는 반짝이는 봄바다와도 같은 저승 어디쯤에 호젓이 밀린 섬이 되어 있는 것이 아닌 것가. 

2/ 우리가 소싯적에, 우리까지를 사랑한 남평 문씨 부인은, 그러나 사랑하는 아무도 없어 한낮의 꽃밭 속에 치마를 쓰고 찬란한 목숨을 풀어 헤쳤더란다.// 확실히 그때로부터였던가, 그 둘러썼던 비단 치마를 새로 풀며 우리에게까지도 설레는 물결이라면, 우리는 치마 안자락으로 코 훔쳐주던 때의 머언 향내 속으로 살닳아 마음닳아 젖는단 것가. /*/ 돛단배 두엇, 해동갑하여 그 참 흰나비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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