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가의 차 이야기 

박향분
박향분

[뉴스사천=차벗 박향분] 차에 관한 글을 처음 쓰려니 조금은 조심스럽다. 내가 글을 전문적으로 쓰는 작가가 아닌 데다, 그렇다고 차(茶) 공부를 많이 한 사람도 아닌 탓이다. 다만, 차(茶)를 좋아하고 차(茶) 마시는 걸 좋아하고 차(茶)와 함께하는 시간을 즐길 뿐이다. 

그러니 혹여 이 글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저 사람은 내 생각과 다르구나’ 하는 마음으로 받아주길 바라며 또 누군가에겐 차에 관한 아주 얕은 도움이라도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펜을 들어 본다.

나는 20년 전, 처음으로 우리 차(茶)를 알게 되었다. 하지만 젊은 시절에는 오로지 커피와 설탕, 프리마를 각각 병에 담아두고는 황금비율인 2:2:2로 타서 마시기도 하고, 방문하는 손님에게도 으레 커피를 내놨다. 그게 최고의 대접이었으니까. 이후 일회용 믹스커피가 나오면서 손님들의 취향에 맞춰 커피를 타는 일은 점점 사라졌다. 세월은 흘러 이제는 동전만 넣으면 다양한 음료를 선택할 수 있는 커피자판기가 나왔고, 블랙커피, 설탕커피, 밀크커피에 코코아, 율무까지 선택할 수 있게 됐다. 

젊은 시절 직장에서 여직원들은 늘 커피를 타서 대접해야 하는 커피담당이기도 했는데,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는 동안 믹스커피는 어느새 내가 마시는 유일한 음료이자 즐기는 기호식품이 돼 있었다.2000년 여름, 나는 직장을 그만두고 사회초년생이 되었다. 

학창시절엔 학교라는 울타리에서의 생활이 전부였고, 직장생활에서는 직장 밖의 생활은 알지 못했다. 직장생활도 사회생활이 아닌 건 아니지만, 나로서는 직장과 가정 그 두 곳의 테두리에서만 생활했던 터라, 직장을 그만두고 백수가 되면서 처음으로 알지 못하는 남들과 어울리고 부딪치며 살아가야 했기에 ‘사회초년생’이라 표현했다.

당시 사회초년생인 나는 처음으로 여성회관에서 진행하는 요리교실에 참여해 다양한 간식과 요리를 배웠다. 그곳에서 수강생으로 참여한 동갑내기 친구를 만났고, 그 친구를 통해 처음으로 커피 아닌 차(茶)를 접하게 되었는데 바로 그 친구의 집에서다. 친구의 집에서 다양한 차(茶)와 다구를 보며 놀랐던 기억이 엊그제 같다. 그전까지 내가 맛본 녹차는 고소한 현미가 섞인 티백으로 된 현미녹차 정도. 그런데 이 친구는 녹차 잎을 우려서 주었는데, 그 향기롭고 신비로운 맛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이때부터 나는 녹차의 싱그러운 색깔과 향기와 맛에 흠뻑 빠지기 시작했다. 

이게 내 차(茶) 생활의 시작이었다. 친구는 내가 차(茶)벗이 되었음에 진심으로 기뻐하며 다기 한 세트를 선물로 주었고, 이후로 나는 줄곧 그 친구와 차(茶)벗으로 지낸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잘한 일로 자동차 운전을 배웠음을 꼽는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꼽는 잘한 일이 차(茶)와 벗했음이다. 차(茶)는 동서양이 따로 없고, 남녀가 따로 없으며, 늙음과 젊음이 따로 없다. 

차(茶)를 좋아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차(茶)벗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많은 분들에게 차(茶)생활을 추천하고 싶다. 차(茶)를 좋아하게 되면 차(茶)벗들은 자신이 몸이 아파서 한쪽 팔이 불편해도, 한쪽 다리를 움직이지 못해도 “오늘 햇차 왔으니 맛 한번 봅시다”는 번개톡을 날리면 한걸음에 달려온다. 

처음엔 ‘번개 친’ 햇차로 시작하지만, 나중엔 황차 마시고 홍차 마시고 보이차도 마시며 해 저무는 줄 모른다. 차(茶)와 함께 차향에 취해 어느새 외로움은 저 멀리 가고 없다. 차(茶)는 영원한 나의 벗이고 나의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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