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삼조 시인.
정삼조 시인.

[뉴스사천=정삼조 시인] 옛날 국어책에 독일 사람 안톤 슈낙이 쓴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란 수필이 있었다. 

1953년부터 1980년대까지 당시 유일한 국어 교과서인 국정교과서에 실렸다고 하니 이 수필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읽은 문학작품 중의 하나가 아닐까 한다. “울음 우는 아이들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정원 한편 구석에서 발견된 작은 새의 시체 위에 초추(初秋)의 양광(陽光)이 떨어져 있을 때, 대체로 가을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로 시작되는 이 수필은 우리 주변에서 접할 수 있는, 소홀히 보기 쉽지만 나름대로는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소재들을 나열함으로써 우리의 무뎌지고 몰인정해진 감성을 일깨우는 아름다운 글이다. 대체로 각 문장의 끝이 ‘――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로 되어 있어 시적인 감성도 갖추고 있다. 1950년대 특유의 한자말 위주 표현인 ‘초추(初秋)의 양광(陽光)’은 아마 ‘초가을 햇볕’이란 뜻이겠다. 

굳이 이 수필을 기억에서 불러낸 까닭은 이 수필을 되새겨 보거나 인터넷에서 검색해 읽어 보실 것을 권하는 뜻에 있다. 아름다운 감성을 불러내기를 기대해 보아서다. 굳이 거기에 다른 의미를 보태자면 근래에 일어난 일들이 진정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이 많아서이다. 

그 가장 대표적인 것이 LH(한국토지주택공사) 사원들의 토지 투기 사건이다. 이 공적 기관의 소속원들이 그 고유 정보를 이용하여 개발될 예정인 땅을 미리 매입하여 막대한 이익을 챙기려 한 사건으로 안다. 사건이 불거지고 보니 이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관련되는 기관이 더 있고, 더 큰 문제는 이전부터 이런 일이 있어 오지 않았겠느냐는 추측이 나온다는 데 있다. 이미 국민적 공분을 산 사건이라 정부에서도 사활을 걸고 수사에 나서겠다고 하고는 있지만 조사 범위가 워낙 방대한지라 국민이 납득할만한 결과를 이끌어내기가 쉽지 않으리라는 전망도 있다. ‘너희도 능력 있으면 LH 직원 돼 보라’는 비아냥도 나온다. 슬픈 일이다.

만약에 내가 그 회사 직원이었다면, 내 주위의 누군가가 그 회사에 입사해 있었더라면 나도 한몫 단단히 챙길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면 그것은 더 슬픈 일이다. 그 한몫잡기에서 소외된 데 대한 분노로 불공정을 부르짖고자 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 마음은 부정을 저지르는 사람의 마음과 다른 점이 없다. 이런 일은 생각만 해도 우리를 슬프게 한다.
근자에 우리를 슬프게 하는 일이 많다. 아이를 돌보지 않아 미라가 되도록 방치한 보호자들이 있는가 하면 아이를 학대해 죽인 사람도 있고 유산을 빙자로 부모에게 칼을 들이대는 사람까지 있다. 

그래도 세상은 착한 사람들이 만 명 중 구천구백구십구 명이라 믿고 싶다. 이 만 명 중 최후의 한 명도 착한 사람이 되어 우리 사회가 안톤 슈낙의 글처럼 인간 본연의 생존과 허무의 문제에만 슬퍼해야 할 일이 있기를 빌어본다.

저작권자 © 뉴스사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