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보도] 남강댐과 사천, 그 오랜 악연을 파헤친다 ⑤

태풍 루사에 계획방류량 넘긴 물폭탄…법원 “책임 없어” 
법원의 논리면 앞으로 1초 1만 2000톤 방류도 무방? 
수자원공사-어민들 맺은 합의서도 법정에선 ‘휴지 조각’
‘1750톤이냐 5460톤이냐’…‘어업 피해 보상 기준’도 모호

남강댐 물 사천만 방류로 어업피해가 발생하자 어민들은 두 번에 걸쳐 수자원공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번번이 패소했다. 이는 역설적으로 특별법 제정의 필요성을 말해준다.
남강댐 물 사천만 방류로 어업피해가 발생하자 어민들은 두 번에 걸쳐 수자원공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번번이 패소했다. 이는 역설적으로 특별법 제정의 필요성을 말해준다.

전국의 댐 가운데 유일하게 인공 방류구를 가진 남강댐. 이 인공 방류구로 남강과 낙동강 하류는 홍수 피해가 크게 줄었지만, 사천시와 남해안은 졸지에 물벼락을 맞았다. 물벼락은 곧 ‘더 살기 좋은 사천’을 만드는 데 큰 걸림돌이었다. 그런데도 ‘이미 계산 끝난 일’이라며 보상에 손사래만 쳐온 정부. 되레 더 큰 물벼락 계획을 내놓고 있다. 이에 <뉴스사천>은 남강댐의 어제와 오늘을 살피면서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이란 폭압의 현실을 고발한다.   

    
[뉴스사천=하병주 기자] ‘물은 산을 넘지 못하고 산은 물을 건너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첩첩산중 깊은 골, 작은 샘에서 시작한 물줄기가 점점 몸집을 키우면서 바다로 나아가는 모습이 절로 떠오른다.

그러나, ‘변치 않을 자연의 이치’로서 너무나 마땅하다 싶은 이 표현이 무색한 곳이 있다. 바로 남강댐의 비상 방수로가 시작하는 제수문 언저리이다. 남강을 따라 낙동강을 거쳐 부산 앞바다에 닿아야 할 남강 물길이 사천만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명분은 하류 지역의 홍수 방지.

하지만 인공으로 바뀐 물길의 아래에 놓인 사천시와 사천만 주변 지역은 온갖 피해를 호소한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어업을 포함한 수산업의 피해이다. 큰비가 내릴 때마다 남강댐에서 물을 쏟아내고, 이 물은 사천만 바닷물의 염도를 떨어뜨린다. 심할 땐 바다를 며칠씩 ‘염도 0’ 상태로 만들어버려 민물고기가 뛰노는 진풍경을 만들기도 한다.

사천만의 한 어민이 2008년 9월 22일 한국수자원공사 남강댐지사에서 ‘남강댐 방류로 인한 사천만 해양환경영향과 어장의 경제성 평가’ 연구용역 보고서의 이른 공개를 촉구하는 모습.
사천만의 한 어민이 2008년 9월 22일 한국수자원공사 남강댐지사에서 ‘남강댐 방류로 인한 사천만 해양환경영향과 어장의 경제성 평가’ 연구용역 보고서의 이른 공개를 촉구하는 모습.

그럴 때마다 어민들의 가슴은 무너진다. 양식장 물고기가 몽땅 죽어 떠오르고, 굴·바지락·피조개 등도 대부분 폐사하고 만다. 그나마 물고기와 문어, 낙지 따위야 먼바다로 피신하겠지만, 그들이 다시 돌아와 안정을 찾으려면 많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이는 지난 시간에 언급한 ‘남강댐 방류로 인한 사천만 일대 해양환경영향 및 어장의 경제성 평가 조사’(경상대 해양산업연구소, 2008년 11월) 보고서에도 잘 드러나 있다.

그러나 어민들로서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피해가 있음에도 제대로 보상을 받을 수 없다는 점이다. ‘1970년 댐 건설 당시에 어업 피해 보상을 다 했다’는 게 정부의 논리이다. 이에 따라 어민들의 보상 요구에는 수십 년째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그러자 어민들은 사법부에 호소했다. 재판으로 손해 배상과 보상을 받고자 했던 것이다. 위법성이 있고 없고에 따라 배상과 보상의 개념이 나뉘기는 하지만, 실질적 피해가 있다고 믿는 어민들로선 그것이 무엇이든 국가가 적절한 대가를 자신들에게 치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결과는 좋지 않았다.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번번이 패소한 것이다. 법원은 늘 정부의 손을 들어줬다. 사천만 인공 방류에 불법성이 없다고 했고, 어업 피해에 따른 정부 책임이 없다고 했다.

남강물 사천만 방류로 어업 피해가 발생한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인데, 법원은 왜 어민들의 주장을 외면했을까?

남강댐 방류로 어업 피해를 호소한 어민들이 법원에 판단을 구한 건 크게 두 번이다. 그중 첫 번째는 태풍 루사가 불어닥친 지 1년 남짓 뒤인 2004년 3월에 사천과 남해 지역 피조개 양식 어민 91명이 제기했다.

이들은 남강댐 증설(=신남강댐 건설) 이후 사천만 계획방류량이 3250㎥/s임에도 이를 훨씬 넘긴 5430㎥/s로 방류함으로써 어업 생산량이 60% 정도 줄고, 연간 어업 피해율이 95%에 이르렀다며 적절한 배상을 요구했다.

그러나 법원은 이 같은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남강댐 증설 이후 계획방류량이 3250㎥/s이긴 하나, △남강댐 보강공사 이전 계획방류량이 5460㎥/s이었던 점, △현재 남강댐 가능 최대홍수량 유입 시 최대방류량인 6000㎥/s를 초과하지 않은 점에 주목했다. 오히려 이 같은 방류에 대해 “1000년 빈도에 가까운 홍수 상황에 대처하여 남강댐 및 그 유역 주민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적절한 조치”라고 판단했다. 이 판결에 어민들은 한 차례 항소했으나, 부산고등법원이 2009년 7월에 이를 기각하자 상고하지 않았다.

사천만 어민들은 2002년 태풍 루사로 인한 어업 피해가 극에 달하자 한국수자원공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2009년 10월 20일, 창원지방법원 진주지원에 붙은 재판 안내문.
사천만 어민들은 2002년 태풍 루사로 인한 어업 피해가 극에 달하자 한국수자원공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2009년 10월 20일, 창원지방법원 진주지원에 붙은 재판 안내문.

남강댐 방류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의 두 번째 소송은 2009년 5월에 제기됐다. 소송의 주체는 사천만 연안에서 양식업, 마을어업, 정치망어업, 어선어업을 하는 816명이었다. 대부분 사천시민이기도 했다. 이들이 소송을 제기한 주된 계기는 역시 태풍 루사였다. 1초에 최대 5430톤의 남강물 방류로 심각한 어업 피해가 발생했으며, 이에 정부가 적절한 손실보상 또는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이 과정에 △2000년의 남강댐 보강공사는 사실상 신남강댐 건설이었고, △그러함에도 환경영향평가 등을 실시하지 않았으며, △소멸보상지역 바깥에 있는 어민들에겐 방류에 따른 피해 보상을 해야 한다는 논리를 동원했다.

그러나 법원은 이번에도 어민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1심, 2심, 3심이 같은 결론이었다. 어민들은 앞서 소개한 (약칭)‘남강댐 방류로 인한 어장의 경제성 평가’ 보고서를 피해의 증거로 내세웠음에도 효과를 보지 못했다. 이 재판은 2014년 5월에 끝났고, 어민들은 크게 실망했다.

두 번에 걸친 어민들의 법정 싸움은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러나 한두 가지 사실은 분명해졌다. 극한 홍수 시 남강댐의 현재 최대방류량이 6000㎥/s이므로, 그 범위 안에서 이뤄진 방류량은 적법하다는 법원의 인식이다. 이는 남강댐 치수 능력 증대 사업으로 방류량이 1만 2000㎥/s으로 늘어난다면, 그 범위 안에서 방류하는 것 또한 적법하며, 그에 따른 피해에 대해선 국가가 책임지지 않음을 뜻한다.

또 다른 하나. 수자원공사와 어민들의 합의 정도로는 피해 보상을 기약할 수 없다는 점이다. 
재판 과정에 어민들은 어업피해배상추진위원회와 수자원공사 사이에 맺은 합의서(2002년 12월 12일, 2003년 8월 1일)를 제시했으나 효력을 인정받지 못했다. 이 합의서엔 ‘양 당사자는 (남강댐 방류로 인한 어장의 경제성 평가)조사 결과를 인정하며, 수립된 피해대책이 추진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하고, 용역 조사 결과에 대한 후속 지치는 관련 법규에 따른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법원은 이 합의만으로는 수자원공사가 보상대책 등을 이행할 의무가 없다고 판단했다.

결국 남강댐 방류로 발생하는 여러 가지 문제에 있어 현행 법률로는 해결할 수 없음이다. 이는 곧 법률적 보완 필요성을 뜻하며, 남강댐이 전국에서 유일하게 인공 방류구를 가졌다는 점에서 특별법 제정의 필요성까지 말해주고 있다.

이밖에 1970년 남강댐 건설 무렵, 정부가 어민들에게 했다는 어업 피해 보상의 기준을 두고서도 따져봐야 한다. 어민들은 ‘남강댐 공사지’를 근거로 방류량 1750㎥/s을 기준으로 보상했다고 주장한다. 반면 수자원공사는 5460㎥/s로 보상했다는 것. 또 어민들은 어업 소멸보상지역 바깥에 대해선 정부가 추가 피해 보상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정부나 수자원공사는 보상 의무가 없다고 한다. 이에 관해선 1970년 무렵의 ‘남강댐 어업 피해 보상 기준’을 더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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