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삼조 시인.
정삼조 시인.

[뉴스사천=정삼조 시인] 엊그제 우보 박남조 선생의 시비(詩碑) 제막식이 우리 지역 앞바다 신수도에서 있었다. 이 섬은 우보 선생께서 광복 전 13년 동안 야학 및 계몽운동을 펼치셨던 인연이 있는 곳이다. 

시비의 시는 선생께서 연세 70의 고희(古稀)를 맞아 펴낸 저서인 시조시집 『바닷가에 살면서』에 수록된 시조시 「시아섬 등 외소나무」이다. 선생께서 공식적으로 등단한 때는 1929년이고 매체(媒體)는 동아일보였으니 1979년에 처음 시집을 내신 일은 이례적으로 늦은 것인데, 선생께서는 후일 전쟁의 와중에서 젊은 때의 많은 원고를 모두 잃어버렸다는 회고를 하신 것으로 안다. 그러니 이 시집의 시들은 장년 이후 틈틈이 쓰신 것으로 보이는 것들이고 모두 39편이다. 

시 「시아섬 등 외소나무」는 선생의 생전 모습을 그려볼 수 있는 작품인데, 특히 선생의 강(强)하나 외로운 노년을 노래한 역작(力作)이라 하겠다. 작품 말미에 ‘시아섬’을 ‘삼천포 노산 앞에 있는 무인도’라고 소개하고 있다. 신수도에 못 오신 분들을 위해 작품 전문을 소개한다. 세 수의 평시조로 이뤄진 연시조이다.

“노산 앞 시아섬 등/ 홀로 늙는 외소나무// 한(恨) 겹겹 물에 잠겨/ 벼랑 위 서러운 몸// 전엇배 독딱이는 밤/ 은하(銀河)에 젖는 향수(鄕愁).//

갈 바람 시든 껍질/ 늣새 바람 멍든 가지// 묵조(墨潮) 휘몰아 쳐/ 포말(泡沫)에 눈물 져도// 잔 뿌리 바위 틈 사려/ 또아리 튼 푸른 혼(魂).//

한 낮에 잠든 바다/ 낚시배도 조으는데// 어디서 노래 가락/ 외 소나무 쓰다듬고// 이따금/ 썰물 스치며/ 갈매기는 날은다.”

첫 수는 외소나무의 모습을 그렸다. 시아섬의 ‘시아’는 아무래도 ‘씨앗’을 연상시킨다. 실제로 이 섬은 씨앗처럼 동그랗게 생긴, 조그만 섬이다. 요즘 보면 이 섬 위에는 나무 여러 그루가 보인다. 하지만, 우보 선생께서 이 시를 쓰실 적에는 한 그루 소나무만 유독 우뚝해 보여 외소나무라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등’은 섬 위를 가리키는 말이리라. 이 외소나무는 한과 향수 곧, 설움과 그리움에 젖어있다. 

둘째 수에서는 마지막의 ‘푸른 혼’이 눈에 띈다. 수많은 시련을 상징하는 갈 바람, 늣새 바람, 묵조, 포말, 바위가 있어도 이 외소나무의 정신은 ‘푸르게’ 살아 있다. 이 고난 속에서도 지키고자 하는 정신을 우보 선생은 가슴 속에 품고 계셨으리라는 짐작을 가능하게 한다.

셋째 수는 외소나무의 고독을 달래주는 ‘벗’을 그렸다. 벗이랬자 말없는 바다, 낚싯배, 노래 가락, 갈매기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소나무는 꿋꿋이 서 있다.

  선생의 자신에게 유독 엄격하신 삶과 정신을 잘 드러낸 이 시가 널리 읽혀 사람들의 마음을 좀 더 밝게 할 수 있으면 좋겠다.

 

※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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