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창섭 시인.
송창섭 시인.

[뉴스사천=송창섭 시인] 아이들에게도 그들만의 세상이 있다고 말하면, ‘그걸 말이라고 해. 당연하지. 이제 그걸 깨달았어.’라며 시큰둥한 표정으로 핀잔을 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마치 아이들의 세계를 잘 헤아려 알고 있다는 듯이 말이지요. 누구도 아이들의 세계를 경험하지 않고는 어른이 될 수가 없기에, 이를 인정하고 수용하는 자세는 어른으로서 가져야 할 큰 도량입니다. 문제는 어른들이 당연하다고 말하는 아이들만의 세상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귀를 기울이는가 하는 점입니다. 

지난날 아이들 방학 과제 중에 일기 쓰기가 있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일기를 과제로 내는 것도, 억지로 쓰게 하는 것도, 검사를 맡게 하는 일도 하나같이 바람직하지 않았습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과정이었습니다. 이는 어른들이 빚은 낯선 욕심이었습니다. 사실 어른들은 일기를 거의 쓰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썼냐 안 썼냐 큰 소리 치고 검사까지 해서 강제로 공책을 채우게 합니다. 일기는 남에게는 보이고 싶지 않은 비밀까지 담은 글입니다. 그런데 검사라니 터무니가 없지 않습니까. 아이들의 심중을 헤아릴 마음이 전혀 없었던 것입니다. 일기의 소중함을 일깨워 줄 의향이었다면, 그 필요함과 가치를 아이들이 잘 알도록 물꼬를 터주는 눈높이에 걸맞고 지혜로운 대화를 먼저 나누어야 했습니다.  

삼사십일이나 되는 방학 일기를 미루고 있다가 개학 하루나 이틀 전에 몰아서 쓴 한 아이의 일기입니다. 두고두고 뇌리를 맴돌면서 가슴을 쓰리게 합니다. 첫째 날 ‘아침 먹고 점심 먹고 저녁 먹고 잤다.’ 둘째 날 ‘아침 먹고 점심 먹고 저녁 먹고 잤다.’ …… 방학 마지막날까지 같은 말이 삐뚤빼뚤한 글씨로 계속 이어집니다. 곤혹스러운 중노동입니다. 

미래 삶의 주인공은 아이들이란 생각에, 새삼스럽게 아이를 낳아 함께 뒹굴 때의 과거를 떠올리며 동심에 관한 글을 다시 읽었습니다. 

『동심童心과의 대화對話』(하인호 저). 무려 오십여 년 전에 쓴 글이지만 다양한 교육 자료와 아이들이 쓴 글, 아이들의 생활을 자세히 관찰한 생생한 글을 담고 있습니다. 당시의 교육 상황과 학교 현실, 가정과 사회 분위기 그리고 아이들의 일과를 엿볼 수 있는 풍부한 내용들로 의미가 매우 깊습니다. 무엇보다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아이들 입장에서 한번 더 생각하는 모습은 감동이었습니다. 멍든 동심을 보며 어른들이 지은 죄를 묻는 것만으로도 밝은 미래를 그릴 수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성내운 선생이 쓴 서문이 지금도 유효함에 크게 놀라면서 일부를 덧붙여 작금의 교육 현실을 되돌아봅니다. “<어린이>들이야 말로 나라의 보배가 아닌가. 이들의 생각과, 힘과, 슬기가 모두 국보인 것이. 그러나, 지금 이 값진 생명들은 굴곡된 역사적 과정 속에 살아온 기성세대 때문에 크나큰 시련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정치적 불안정과 경제적 빈곤 그리고 사상의 황무지에서 이 꽃송이들은 부조리한 성장을 해 가고 있다. 천진한 이들 앞에서 어버이도 스승도 부끄러움 없이 서기에 너무나 큰 가책이 앞서는 현실이다.”

 

 

※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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