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보다 ‘마타도어’가 낯익은 우리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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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보다 ‘마타도어’가 낯익은 우리 현실
  • 송창섭 시인
  • 승인 2021.07.27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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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창섭 시인.
송창섭 시인.

[뉴스사천=송창섭 시인] 지난 7월 2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68차 무역개발이사회에서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1964년 설립 이후 처음으로 우리나라를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지위를 변경하였습니다. 세계 200개 국가가 넘는 가운데에 선진국은 32개국 정도라 하니, 지속적인 경제 발전이 가져온 결과이지만 가히 경이롭습니다. 

하지만 우리 현실은 이 같은 소식을 접하고도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는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백신 접종으로 코로나19의 짙은 그늘이 호전되기를 기대했지만 거꾸로 점차 확산하면서 많은 국민들을 깊은 시름에 빠뜨리고, 상위층과 하위층의 소득 격차는 더욱 커졌기 때문입니다. 

선진국이 되는 기준을 혹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인구수가 5천만을 넘고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불을 넘었기에 자격이 충분하다고요. 과연 그런가요. 경제가 발전하여 초고층 건물이 들어서고, 가정마다 자가용을 소유하고, 너나없이 들로 섬으로 해외로 여행을 다닌다 하여 선진국이 되었다 말할 수 있을까요. 정치, 사회, 문화, 과학, 종교 등의 분야는 어찌되었든 상관이 없다 단언할 수 있을까요. 아마도 이에 동의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적어도 선진국이라 함은 국민들이 평화롭고 안전한 생활 속에서 건강하고 정의롭고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며 세계와 인류를 위해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나라를 가리킨다고 봅니다. 그런 관점에서 우리의 여건들을 분석해 보면 ‘선진국’이란 여전히 낯선 영역인 것입니다.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여야 할 것 없이 연일 많은 말들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이맘때면 마땅히 겪는 통과의례라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아쉬움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정책 공약이나 참신하고 소신 있는 정치 철학은 잘 보이지 않고, 당내 경쟁자나 상대 후보를 두고 중상모략하거나 근거 없이 비방하는 일들이 어김없이 되풀이되고 있음을 봅니다. 정치판의 불청객 흑색선전黑色宣傳, black propaganda이 이번에도 고개를 들고 활개를 칩니다.  

스페인 투우경기를 보면 투우사가 물레타muleta라는 막대기에 감은 카포테capote라고 하는 붉은 천을 사용합니다. 짙은 어둠에 갇혀 있던 소가 밝은 투우장아레나arena로 뛰쳐나와 관중의 엄청난 함성을 들으며 붉은 천을 보고 흥분하면서 경기는 시작합니다. 이때 소의 의식을 혼란스럽게 하다가 마지막에 소의 정수리를 칼로 찔러 죽이는 투우사를 마타도어matador, 마따도르라 이릅니다. 이런 연유로 ‘마타도어’는 상대편을 중상모략하거나 그 내부를 교란하기 위한 정치가들의 흑색선전이란 뜻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마타도어란 그 맡은 역할이 공평하거나 정의롭지 못함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웃하고 있는 포르투갈의 투우경기에서는 투우사의 안전을 위해 소뿔에 가죽을 씌웁니다. 아울러 투우사가 소의 숨통을 끊는 시늉만 하지 죽이지는 않습니다. 짐승일지라도 그 생명을 존중하며 투우를 놀이로 즐기는 지혜롭고 성숙한 국민 의식을 보여줍니다. 

선거는 물론 어떤 정치 행태든 마타도어나 네거티브 따위의 언행이 빌붙지 못하도록 국민 의식이 빛난다면 선진국 운운할 까닭이 없습니다.

 

 

 

※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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