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기다림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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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기다림의 미학
  • 송창섭 시인
  • 승인 2021.09.15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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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창섭 시인.
송창섭 시인.

[뉴스사천=송창섭 시인] 사람들이 마라톤을 인생 역정에 비유함은, 출발부터 결승선을 밟기까지 다양한 빛깔과 향기의 삶을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그 빛깔과 향기 속에는 굵은 땀방울을 비롯해 우는 듯 웃는 듯 파노라마 같은 희로애락이 요동칩니다. 달리기를 삶의 질곡으로부터 자유를 향해 비상하려는 달림이들의 용기 있는 몸짓으로 풀이하는 근거입니다.

마라톤 풀코스 42.195km를 일반인들이 완주하는 데에는 보통 3시간에서 5시간 정도 걸립니다. 물론 3시간 이내에 완주하는 서브쓰리sub-3 주자도 있고, 고통에 굴복하지 않고 특유의 끈기와 뚝심으로 흐느적거리면서도 완주 제한 시간을 훨씬 넘겨 6-7시간만에 텅 빈 운동장을 돌아 결승선을 밟는 인간 승리의 주인공이 되는 달림이도 있습니다. 더욱이 100km 이상의 거리를 달리는 달림이들의 성취 욕구와 도전 정신은 이미 인간 한계를 뛰어 넘었다고 해도 과한 표현이 아닙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과연 그들이 길 위의 달리기를 통해 추구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도달하려는 궁극적인 목표는 ‘건강하고 행복한 삶’입니다. 행복한 삶은 인간이면 누구나 꿈꾸는 이상입니다. 이러한 행복 추구권 밑바탕에는 ‘사랑과 기다림’이라는 두 축이 버팀목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사랑! 사랑에는 서로를 배려하고 감싸는 포용력과 여유가 있어야 합니다. 앞만 보고 달리는 주자들의 모습을 연상해 볼까요. 풍류적인 멋과 흥취가 있을 리 없습니다. 힘들고 몸놀림이 둔하지만, 서로 ‘반갑습니다, 고맙습니다, 힘내세요, 히-ㅁ!’하고 외치는 격려가 얼마나 아름답고 넉넉한 멋을 드러냅니까. 작은 위안에서 사랑의 싹은 트기 시작합니다. 

기다림! 로버트 레드포드 감독·주연의 ‘호스 위스퍼러’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그레이스는 말을 타다가 언덕에서 미끄러져 다리를 잃으며, 말은 중상에 정신적인 외상stress까지 입습니다. 복잡한 도시에서 바쁘게 살아온 그레이스의 엄마 애니는 호스 위스퍼러(말을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사람)인 톰 부커를 찾아 말을 치료합니다. 치료 중인 말이 전화 소리에 놀라 달아나 버립니다. 들판 한 가운데에 서 있는 말을 톰 부커는 초원 언덕에 앉아 하염없이 기다립니다. 뜨거운 열기를 내뿜던 태양이 지고 땅거미가 내려앉을 무렵 말은 제 스스로 놀람과 상처를 삭이고 마침내 그에게 돌아옵니다. 

기다림의 시간은 분명 지루합니다. 도저히 견디기 힘든 지긋지긋한 고통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톰 부커는 서두르지 않습니다. 쉽게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의 지적 감각이 떨어지고 그의 판단력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기다림의 참된 가치를 잘 알기에 말이 제 감정을 삭일 때까지 침묵으로 인내하며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치료사와 말은 무언의 줄다리기를 한 끝에 교감을 합니다. 참 놀랍습니다. 

문화를 일러 ‘사람이 본래 가지고 있는 이상을 실현하려는 인간 활동의 과정 또는 성과’라고 합니다. 사랑과 기다림의 미학은 인간의 내면적, 정신적 활동에서 중요한 영역을 차지합니다. 이런 까닭에 사랑과 인고의 시간은 사람에게 필수 영양분과 같은 것으로 동물에게도 이러한 세계가 필요함을 우리는 인지해야 합니다.

 

 

※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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