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삼조 시인.
정삼조 시인.

[뉴스사천=정삼조 시인] 추석이 지난 지 며칠 되었다. 예년 같으면 아직 노곤한 명절 피로감에 젖어 있을 때지만 올해는 왠지 추석이 싱겁게 지나간 것 같다. 코로나19가 극성을 부리면서 가족 간 이동을 은근히 금기시하는 사회 분위기가 어느결에 생기고 그런 까닭인지 불과 몇 년 전에만 해도 눈에 띄던 명절날 한복 입은 사람들조차 보기 어려워졌다. 사람 모이기를 금하니 명절 분위기를 자아내던 각종 행사도 사라지고 얼굴마저 마스크 아래 감춘 사람들이 바쁘게 제 갈 길만 간다. 이러니 명절이 언제 지나갔는지도 모르고 지나갔다는 생각이 안 들 수 없다.

그런데도 적게나마 사람이 오가고, 그만큼 느슨해진 사회 분위기 탓인지 코로나19에 걸리는 사람들 수가 연일 새 기록을 쓰고 있다고 한다. 세상이 온통 막혀 답답해진 모습이다. 언제쯤 이 감염병이 물러나 세상이 시원하게 통하고, 일상이 정상으로 돌아가게 될까. 

이런 사정임에도 우리네 마음속에 무슨 DNA처럼 여전히 남아 있을, 명절을 맞는 마음 중 최고의 미덕은 아마 ‘빚’을 청산하는 데 있지 않은가 한다. 빚이라 하면 남에게 빌린 것이나, 남에게 지불해야 할 금전을 우선 가리킨다. 오늘날도 그렇겠지만 옛날부터 우리 선대(先代) 어른들은 이 명절을 기해 채무 채권 관계를 깨끗이 해 왔다. 명절을 쇠기 위해서는 누구라도 금전이 필요했기에 설 추석을 기해 갚아야 할 돈을 갚는 일은 반드시 해야 할 지상과제 같은 것이었다. 그래야 받은 사람은 그 돈으로 자기가 진 또 다른 빚을 갚게 되는 것이다. 요즘 말로 하자면 아마 돈이 돈다는 경제의 순환쯤 될 것 같기도 한데, 이 흐름에서 소외된 사람들은 신용을 잃게 된다는 사회 통념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니 명절 앞을 대목이라 해서 경제 관계에 신경을 곤두세우게 되고, 그 할 일을 다 한 사람은 비로소 홀가분한 명절을 맞이하게 되었던 것이리라. 

그러나 명절 앞의 진정한 빚 갚기는 마음의 빚을 갚는 일이 가장 소중하지 않을까 한다. 옛날 어른들은 글을 알든 모르든 잊어버리지 않고, 누구에게 어떤 신세를 졌다든지 혹은 꼭 인사를 해야겠다거나 베풀어야 할 일이 있으면 명절날 어떤 방식으로든 그 마음을 표하는 일을 반드시 행하곤 했다. 누가 내게 인사를 해야 한다는 마음은 행여라도 가지지 않은 채. 이 일을 이행하지 않는다고 하여 나무랄 사람은 없겠지만, 이 일이야말로 마음의 빚을 조금이라도 덜어내는, 명절에 해야 할 가장 마땅한 일이 아니었을까.

부모와 자식 간의 빚 갚기는 아마 가장 자연스럽게 계승되는 의무 사항이지 싶다. 예전에 자기가 그 부모로부터 사랑을 받았기에 사람들은 그 부모를 공양하거나 제사를 성의껏 지내고, 또 옛날 부모에게서 받은 대로 자식에게 사랑을 되물린다. 기대하고 하는 일은 아니지만, 아마 그 자식도 그와 같이 행하리라. 이런 자연스런 계승과 순환의 범위에 무사히 든 사람은 아마 우리 사회의 모범적인 한 사람일 것이다.

세상은 자꾸 바뀌고 있고, 그 변화에 나 홀로 끼지 않을 수는 없지만, 대대로 가꾸어온 명절을 맞는 좋은 전통은 발전적으로 계승되어 나가야만 하리라고 다짐해 본다.

 

 

※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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