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향분 차벗.
박향분 차벗.

[뉴스사천=박향분 차벗] 우리는 문명과 문화를 혼용하여 쓰기도 하는데, 문명은 물질문명으로, 문화는 정신문명으로 구분하여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현대인들은 급변하는 물결에 휩쓸려 자신을 지탱하기도 힘들어한다. 문밖엔 고층의 아파트들이 키재기를 하듯 즐비하고 도시에선 지하철과 시내버스 노선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으며, 최근 탑 뉴스에서 보듯이 황금의 위력이 모든 것을 밟고 서 있음을 느끼는 세상이다. 안에서는 가족 모두가 제 일에 밀려 옆도 돌아볼 틈이 없고 피곤에 지쳐 정겨운 대화조차 어렵다. 그리하여 우리 마음속에는 늘 영혼이 살아 있는 아날로그에 대한 향수(鄕愁)와 소박한 개성이 돋보이는 자연스런 리듬에 젖고 싶은 시간과 공간을 원하고 있다. 삶의 촉박함 속에 여유(餘裕)를, 기계적 사유(思惟)속에 인간미(人間味)를, 조직의 일원이 아닌 나를 찾을 수 있는 시간으로 내가 남과 다름을 알 수 있는 길이 차(茶)를 마시는 일이라 생각한다.

우리가 차(茶)를 마시기 시작한 것이 줄잡아 1500년이 넘었는데도 아직까지 이렇다 할 문화적인 사관(史觀)이 뚜렷하게 자리 잡지 못하고 있음도 사실이다. 우리민족은 수많은 외침(外侵)으로 그동안 참으로 많은 고난의 역사를 이겨내고 오늘에 이르렀다. 나라가 있어야 우리도 살 수 있음을 최근 아프가니스탄의 사태를 보면서 더욱 실감하며, 이 나라를 지켜준 선조들의 은공을 잊을 수 없다. 6.25전쟁이후 우리민족은 먹고 살기에 급급했고, 모든 것은 의식주에 국한되어 살아왔다. 의식주가 점차 해결되면서 부모들은 자녀들의 교육에 열을 올리기 시작하였고, 그 자녀들은 교육의 힘으로 이 나라의 기술경제를 일으키고 나라를 부흥시키면서 우리나라를 선진국의 대열에 접어들게 하였다.

이렇게 바쁘게 앞만 보고 살아왔던 우리들은,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이제 우리도 살만한 세상이 되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살만하다는 것은 삶의 여유가, 마음의 여유가, 시간의 여유가, 경제적인 여유가 조금은 생겼다는 의미이다. 이렇게 살만한 여유가 있다면 우리는 무슨 생각을 하겠는가? 자연스레 문화를 즐길 마음을 갖게 된다. 차(茶)를 마시고, 커피를 마시고, 와인도 즐기고, 영화를 보고, 여행을 가고....그래서 카페나 찻집, 영화관을 찾게 되는 것이고, 여행으로 쉼표의 힐링을 하는 것이다.

사람은 여유로움을 가지게 되면 제일 먼저 티(tea)를 즐기고 그 다음으로 와인을 즐기고 요트를 즐긴다고 한다. 티(tea)를 즐긴다는 것은 비단 차(茶) 뿐만 아니라 커피나 전통차나 각종 음료등을 마시는 여유로움을 즐긴다는 뜻이다. 우리는 이미 티(tea)를 즐기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예전에는 맛있는 밥집을 먼저 꼽았지만, 지금은 구내식당 밥을 먹고서도 구내식당 밥값보다도 비싼 분위기 있는 카페에서 후식으로 커피나 차(茶 )마시는 것이 문화로 자리잡은지 오래다. 

청명한 이 가을날에 가끔은 바쁜 일상을 뒤로 하고 삶의 여유로움도 느끼면서 초의선사가 동다송에서 읊었듯이 우리도 차(茶)의 신비로움에 한번 빠져보자.

一傾玉花風生腋(일경옥화풍생액)             
옥화같은 차(茶) 한잔 기울이자
겨드랑이에 바람이 일어

身輕已涉上淸境(신경이섭상청경)             
몸이 가벼워져
하늘을 거니는 것 같네

 明月爲燭兼爲友(명월위촉겸위우)
밝은 달을 촛불삼고 
벗으로 겸하여

白雲鋪席因作屛(백운포석인작병)
흰 구름은 자리되고
아울러 병풍이 되어주네

 

 

※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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