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음을 묵시默示하는 시어들 2

송창섭 시인.
송창섭 시인.

누추한 속옷 내걸린 목련나무 빨랫줄 / 꽃이 어느 시간 속을 이동해 사라지는 것처럼 / 축축해진 옷을 입은 사람의 시간도 말라 간다 / 빨래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받아먹는 / 야생 고양이 한 마리의 시간도. - 박서영 「목련나무 빨랫줄」 전문

[뉴스사천=송창섭 시인] 목련나무 빨랫줄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요? 누추한 속옷이 살고 있습니다. 시간 속에 사라지는 꽃도 살고 있습니다. 축축한 옷을 걸친 사람도 살고 있습니다. 아득바득 빨래를 부여잡았다가 마침내 떨어지고 마는 물방울도 살고 있습니다. 야생 고양이도 살고 있습니다. 언급하지 않고 어물쩍 넘어 갔지만 햇살도 살고 있고 어둠의 그림자도 살고 있습니다. 스쳐가는 바람, 새 소리, 벌레 또한 살고 있습니다. 

생명체들의 서식지라 해도 과언이 아닐진대 어쩐지 무겁고 가라앉은 분위기를 진열한 느낌입니다. 빨아서 넌 속옷인데 더럽고 지저분하답니다. 꽃이 사라지고 그처럼 사람의 시간도 말라 간다고 합니다. 피치 못할 사정이 아니면 축축한 옷을 입을 이유는 없을 텐데, 그런 사람의 시간이 말라 간다고 합니다. 물방울이라도 받아먹고 목을 축여야 살아남는 고양이의 시간도 말라 간다고 합니다.    

‘누추한 시간의 고갈’은 시인이 생의 끝자락에서 걷어 올린 과거와 현재의 담담함입니다. 시간의 흐름 속에 꽃의 움직임을 포착하는 시선은 예사롭지 않아 예리합니다. 누추하고 축축하다는 독백은 삶의 흔적들에 대한 아쉬움과 회한이 빚은 토로입니다. 삶이 꺼져 가는 순간에도 생을 통틀어 다섯 줄 시로 압축하고 있습니다. 보통 깜냥이 아닙니다. 

내 가슴에 칼로 빗금을 그으며 / 내 길, 비 오는 길로 돌아가네 / 돌무더기의 기원이나 풀 한 포기의 짧은 生 / 모두 적시는 빗길로 돌아가네 / 원하고 보니 피 낭자한 길이라서 / 돌아서려고 했네 / 하늘에서 내리는 저 비가 / 내 더럽게 묵은 유리창을 때리네 / 씻겨내리네 / 나는 다시 내 길로 돌아가네   - 박서원 「내 길로」 전문

말로는 차마 꺼내기 힘든 심중의 사연을 글로써 드러내는 모습이 영화 속 비련의 주인공 같습니다. 핏빛 고통을 깨끗이 청산하고 비를 맞으며 돌아가고 싶은 그 길은 대체 어떤 공간일까요? 시인은 믿음에 실연당하고 삶에 실연당했는지 모릅니다. ‘남자’라는 용어를 파묘하듯 그녀의 언어관에서 뽑아냈을 것이라는 추측을 불러일으킵니다. 떠올리고 싶지 않은 지난날을 씻어 주는 비의 세례식에 육신과 영혼을 몽땅 맡깁니다. 고통을 순명으로 받아들이며 묵묵히 참아내는 외형적 수평선 아래에서는 시인의 내면세계가 거칠게 몸부림하고 있습니다. 긁적거리는 심리를 닮은 시어들이, 시적 표현 시적 형상들이 몸부림하고 있습니다.  

‘내 길로 돌아가’겠다는 의지는 자신의 원초적인 삶에 대한 갈구입니다. 맑고 평범한 삶, 이 대단치 않은 소망이 시인이 그토록 만나고 싶었고 걷고 싶었던 길일 텐데 말이지요. ‘풀 한 포기의 짧은 生’이란 시구가 내내 머리를 맴돌며 온몸을 아리게 합니다.

 

 

※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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