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관성 없는 자격관리가 장애아동재활치료 불신 낳는다!

대구 장애아동 사망사건을 계기로 정부가 벌이는 장애아동재활치료사업을 비롯한 관련 정책에 대한 비판이 일고 있다. 특히 일관성 없는 민간자격 관리에 쓴 소리가 쏟아진다. (사진은 지난해 장애아동재활치료사업 모습. 경상남도건강발달지원센터 제공)
발달장애2급 장애아동이 대구의 한 놀이치료시설에서 손발이 묶인 채 목뼈탈골로 숨지자 사설치료시설에 대한 허술한 관리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런 가운데 정부가 막대한 예산을 들여 진행하는 장애아동재활치료사업도 허술하게 진행되고 있음이 드러났다.

보건복지가족부는 지난해 국비290억원을 들여 장애아동재활치료사업을 벌였다. 또 올해는 사업대상자를 더 늘리기로 하고 480억원의 예산을 책정했다. 여기에 서울시는 5대5, 그 외 지방자치단체는 이보다 적은 7대3의 비율로 지방비를 더 보태 이 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여기서 말하는 장애아동재활치료사업이란, 장애아동이 있는 가정으로부터 신청을 받아 여러 전문 치료사들이 가정이나 단체를 방문해 장애아동의 기능향상과 행동발달을 위한 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을 말한다.

이 서비스는 기초생활수급자는 무료로 이용할 수 있고, 그 외 가정은 일정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그러나 사설기관에 비해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어서 장애아동을 둔 부모들은 크게 반기는 사업이다.

문제는 ‘치료사’로 불리는 여러 전문가들의 자격에 있다. 보건복지부는 해당사업에 참여해 재활치료를 할 수 있는 자격으로 언어치료사, 미술치료사, 음악치료사, 행동치료사 등을 꼽고 있다.

그러나 엄격히 말하면, 이들 모두는 국가가 인정하는 검증기관에서는 전혀 발급하지 않는 자격증이다.

장애아동재활치료사업에는 각종 '치료사'들이 참여하고 있지만 정작 국가는 이러한 자격명 사용을 자제시키고 있어 민간자격 관리에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사진은 지난해 장애아동재활치료사업 모습. 경상남도건강발달지원센터 제공)
이해를 돕기 위해 잠시 민간자격에 관해 알아보자.

정부는 1997년에 자격기본법을 제정함으로써 민간 영역에서 이뤄지던 민간자격을 양성화하기 시작했다. 자격제도를 국가자격과 민간자격으로 나누고, 이중 우수한 민간자격을 국가에서 공인할 수 있는 ‘민간자격 국가공인 제도’를 마련한 것이다. 물론 국가가 공인하지 않는 자격은 그대로 민간자격으로 남는다.

각종 자격 체계적 관리 위해 도입한 ‘민간자격 등록 제도’

이후 민간자격은 더욱 난무하기 시작했다. 웬만한 단체나 협회 그리고 법인들이 온갖 자격증을 남발해 혼란스러워졌다. 이러한 혼란을 막기 위해 정부는 자격기본법을 고쳐 2008년부터 민간자격 등록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각종 민간자격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등록함으로써 국민들에게 정확한 민간자격정보를 제공할 목적이었다.

그리고 민간자격 등록관리기관으로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선정됐다. 이 기관에 따르면 현재 국가공인민간자격은 88종, 순수 민간자격은 947종이다.

여기서 말하는 국가공인민간자격은 달리 ‘민간자격 국가공인’으로 부르며, 민간자격으로 등록된 것 가운데 우수한 자격에 한해 심의를 거쳐 지정한다. 나머지는 자연스레 ‘순수 민간자격’으로 불린다.

민간자격을 통틀어 장애와 관련 있는 것을 꼽아 보면 점역교정사, 수화통역사, 언어발달교육사, 아동놀이재활교육사, 행동발달교육사, 특수체육치료사, 임상미술심리사, 미술심리상담사, 운동지도사, 음악심리지도사, 미술심리지도사를 들 수 있다. 이 가운데 점역교정사와 수화통역사만 국가공인 민간자격이고 나머지는 순수 민간자격이다.

자격관리기본법에서는 민간자격 이름으로 '아무개치료사'란 이름은 사용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사진은 지난해 장애아동재활치료사업 모습. 경상남도건강발달지원센터 제공)
여기서 눈에 띄는 것은 특수체육치료사다. 관련 민간자격 가운데 ‘치료사’란 이름을 달고 있기로는 유일하다. 나머지는 ‘상담사’ 또는 ‘지도사’ 등의 이름을 달고 있다.

현재 자격기본법에서는 자격 이름에 관해 몇 가지를 제한하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국민의 생명ㆍ건강ㆍ안전 및 국방에 직결되는 분야”이다. 따라서 일종의 의료행위로 비쳐질 수 있다는 이유로 국가 등록 민간자격에 ‘치료사’란 이름을 사용할 수 없도록 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특수체육치료사는 어찌된 걸까. 이에 관해 한국직업교육개발원 관계자는 “초기에 정확한 지침이 없던 상황에서 등록된 것”이라며 “지금은 모든 부처가 협의한 끝에 ‘치료사’란 이름을 절대 사용할 수 없다”라고 밝혔다.

민간자격에 등록하지 않는 ‘치료사’, 이유는?

그러나 지난해 장애아동재활치료사업에 참여한 자격증은 국가에 전혀 등록되지 않은 언어치료사, 임상미술치료사, 예술치료사, 놀이치료사, 음악치료사 등 53종이었다. 이는 올해도 비슷한 상황이다.

정리하면 이렇다. 국가가 수 백 억 예산을 들여 장애아동재활치료사업을 벌이면서, 정작 민간자격으로 등록조차 받아주지 않는 온갖 ‘치료사’들에게 장애아동을 맡기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지자체 일선에서는 이 ‘치료사’들이 아닌 다른 자격은 잘 인정하지 않았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는 지난 4일 발생한 대구 놀이치료시설에서의 장애아동 사망 사건이 사설 치료사와 그 시설에 대한 허술한 관리에서 발생한 필연적 결과라고 주장했다. 사진은 지난 6일, 숨진 장애아동의 장례식 장면.
물론 이들 ‘치료사’들도 각종 단체나 협회에서 제시하는 엄격한 기준을 통과했을 가능성이 높다. 또 모든 민간자격이 국가에 등록하거나 인정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므로 기존 치료사들을 탓할 필요도 없다.

문제는 정부가 엄청난 예산을 사용하며 추진하는 사업이 민간자격을 엄격하게 관리하겠다는 ‘민간자격 관리 정책’과 심각하게 부딪히고 있다는 점이다. 바꿔 말하면 국가가 공식적으론 ‘치료사’란 이름을 못 쓰게 하면서도, 정부 역점 사업은 이들을 염두에 두고 진행함으로써, 사실상 장애아동 재활치료 전반에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보건복지가족부 관계자의 말이 더욱 놀랍다.

“굳이 ‘치료사’가 아니어도 자격기본법에 등록된 자격을 가진 사람도 치료사업에 참여할 수 있다. 문제는 거기(민간자격 등록기관=한국직업개발연구원)는 등록만 하면 받아주기 때문에 신뢰하기가 힘들다는 거다. 오히려 등록되지 않은 단체에서 발급하는 자격이 더 엄격하게 관리되고 있다.”

이 말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치료사’란 명칭을 쓸 수 없는 국가기관 등록 자격에는 믿음이 덜 가고, 반면 등록되지 않은 자격에 더 믿음을 주는 형국이다. 따라서 "정부 사업에 괜한 오해를 살 것이 아니라 단체마다 협조를 구해 자격명 변경을 유도하는 쪽이 낫지 않느냐"는 지적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

일관성 없는  장애아동 재활치료 자격 관리는 다른 혼란과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사천시장애인부모회가 운영하는 '희망이 자라는 열린학교'가 지난 8일 겨울운동회 시작을 앞두고 얼마 전 숨진 故이아무개 군의 명복을 빌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군은 이곳에서 함께 뛰어 놀았다.
특수교육을 가르치는 한 대학 교수는 학과 학회에서 발급하는 자격이 ‘아무개치료사’가 아니어서 학생들로부터 불평을 많이 들었다고 한다. 수강생들이 장애아동재활치료사업에 참여하고 싶었지만 자격이 안 주어졌기 때문에 나온 불평이었다.

그는 평소 발달장애 아동들은 환자가 아니라는 믿음으로 ‘치료사’란 이름을 사용하지 않았으나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치료사’란 이름이 국가등록 민간자격이 될 수 없음을 깨닫고는 고민에 빠져 있다.

장애인단체 쪽에선 장애아동 재활치료 전반을 불신하는 눈빛이 역력하다.

대구 장애아동 사망사건 뒤인 지난 6일, 전국장애인부모연대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 단체는 성명에서, 장애아동재활치료사업이 ‘국가의 공적지원’으로 이루어짐은 긍정하면서도 “사설치료실 시장 확대 과정에서 자질이 부족한 치료실 등장, 서비스 질 하락, 치료단가 인상 등 여러 문제를 나타내고 있다”며 정부의 관리감독 체계가 허술함을 지적했다.

또 2005년 기준 자료를 들어 “장애아동 사설치료실이 전국에서 822개인 반면 학원법에 따라 등록된 것은 20여 곳에 불과하다”며, 이 또한 “법적 장치가 없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전국장애인부모연대는 이번 사건이 우연히 발생한 것이 아니라고 진단했다. 반면, 아무런 법적 규제나 관리감독이 없는 상태에서 일어난 필연적 결과였음을 지적하며 “(사망에 이른 아이뿐 아니라)해당 치료실도 사회적 방치상태에 놓여 있었다”고 결론지었다.

나아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치료사의 자격관리, 치료서비스의 질 관리, 표준 단가 설정 등 장애아동재활치료 전반에 걸쳐 종합대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참고로, 사고가 발생한 대구의 놀이치료시설 원장 또한 재활치료사업 참가 가능 자격인 ‘놀이치료사’였다.

8일 열린 겨울운동회에서 정신지체1급 장애가 있는 딸과 그 아빠가 활짝 웃고 있는 모습. 추운 날씨는 '혹독한 세상에 놓인 장애아동'에 비하면 별 문제가 안 된단다.
“임시방편보다는 꼼꼼하고도 종합적인 대책 내놔야”

취재 과정에서 보건복지가족부는 각종 민간자격의 명칭과 발행기관 관리 그리고 자격기본법에 따른 등록 여부 등 다양한 문제가 있음을 인정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관련 자격을 국가공인자격으로 전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여전히 걱정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같은 국가공인자격인 ‘노인요양보호사’ 자격의 경우 지금도 큰 사회적 물의를 빚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급하게 도입되면서 노인요양보호사 수요가 늘었고, 여기에 교육기관 난립, 관리감독 부실 등이 어우러져 노인요양보호사 자격 ‘부정 발급’으로 이어진 결과다. 그리고 최근에야 요양보호사 자격시험 도입, 신고제에서 지정제로 교육기관 전환 등 사후약방문격 처방을 내놓고 있는 게 현실이다.

따라서 관련 학계와 장애인단체 등은 임시방편적 처방보다는 꼼꼼한 준비로 종합적인 대책을 내놓기를 정부에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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