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창섭 시인.
송창섭 시인.

[뉴스사천=송창섭 시인] 낮에는 더우면서 새벽이나 저녁 무렵엔 추워 옷깃을 여미게 하는 불규칙한 날들입니다. 그러고 보니 지금 이 시각은 낭만적 우수와 어울려 뒹굴어도 괜찮은 늦가을입니다. 늦가을이란 이름 대신에 초겨울이라 불러도 낯선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길가의 나뭇잎들이 하나 둘 색이 바래더니, 어느새 속살까지 마른 채 힘없이 떨어져 바람 따라 이리저리 구르며 스스슥 소리를 냅니다. 굳이 까닭이랄 게 없어도 쓸쓸하고 서글픈 감정이 마음을 파고드는 순간의 연속입니다. 쓸쓸하고 서글픈 감정뿐이 아니라 세상 그 어떤 감정을 품어도 거뜬히 받아 안을 수 있는 따사롭고 해맑은 때입니다.  

늦가을! 말만 들어도 느닷없이 가슴을 뚫고 한 뭉텅이 시가 쏟아져 나올 듯한 기분이 듭니다. 늦가을을 짝사랑한 나머지 온몸이 땅에 얼어붙어 그냥 이대로 화석이 되어도 괜찮겠다는 상념마저 듭니다. 40년 전 일입니다. 1982년 어느 극장에서 《만추晩秋》 영화를 봤습니다. 스산한 바람이 걸음을 재촉하게 만든 그때도 별 사연이 없었던 늦가을 저녁이었습니다. 관객들이 객석의 반의반도 되지 않아 흥행 여부와 달리 집중력은 훨씬 강했던 것으로 추측합니다. 영화 속에 펼쳐진 숱한 장면들은 하나하나 각인되어 잊을 수가 없습니다. 어느 늦가을날, 살인죄를 지은 김혜자(혜림 역)와 범죄 조직에 연루되어 경찰에 쫓기는 정동환(민기 역)과의 짧은 만남 그리고 순박한 사랑 또 그리고 알알戞戞한 이별. 그게 이야기의 전부입니다. 하지만 두 남녀 사이에 벌어진 어긋난 별리는 깊은 여운이 되어 마음을 아리게 흔들었습니다. 

잊는다는 말은 나의 기억 속에 그대를 지우는 영혼의 노동입니다. 누군가를 잊으려는 작업을 의도적으로 한다면 그 뜻을 이루기는 쉽지 않습니다. 무엇인가에 몰입이 필요합니다. 홀로 서기든 타인의 도움에 의지하든 새로운 정신 영역으로의 전이가 있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고통의 대가를 피할 순 없습니다. 아픔을 이기고 소화시키는 과정을 견뎌 내야 합니다. 잊는다는 것이 사는 것보다 힘든 이유입니다. 

잊힌다는 것은 타인으로부터 자신의 존재가 흔적 없이 사라지는 현상을 이릅니다. 수용하기도 어렵고 인내하기도 어렵습니다. 도무지 서글프고 마음 아픈 일이라 참을 수가 없습니다. 씻을 수 없는 상처는 마침내 곰삭은 흉터로 남습니다. 그렇다고 주저앉겠습니까, 어쩌겠습니까. 자신을 구제할 수 있는 처방을 찾아야 합니다. ‘냉철한 용기’도 좋습니다. 현실을 부정하거나 거부하지 않아야 합니다. 슬픔이란 철부지를 육신에 잠깐 간직했다가 떠나보내야 합니다. 눈앞에 일어난 잊힘의 사태는 어제 오늘 발생한 사건이 아닙니다. 기억력은 시간이 흐를수록 딱딱하게 굳든지 은연중에 분해됩니다. 기억력이 지닌 사소함과 어리석음을 보았다면 잊힌다는 것은 속상할 일도 가슴 아플 일도 아니라는 뜻입니다. 

늦가을은 풍요롭게 들떴던 가을 잔치를 차분히 가라앉히고 설거지하는 역할을 합니다. 지난 시간들을 곱씹어 성찰하는 움직임은 소중합니다. 내년에도 오늘과 같은 늦가을을 만나리라 기약할 수 없습니다. 많은 생각들 속에서 자신의 하나뿐인 삶을 미쁘게 조탁하는 길을 찾아야만 늦가을은 예년과는 확연히 다른 의미로 다가설 것입니다.

 

 

※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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