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삼조 시인.
정삼조 시인.

[뉴스사천=정삼조 시인] 겨울이 시작된다는 절기인 입동(立冬)을 갓 지났다지만, 낮에는 조금 덥다는 느낌마저 든다. 그래도 단풍이 설악산을 지나 내장산에 절정이라 하니 우리 사는 남녘도 곧 단풍에 덮일 것이라, 어느덧 가을도 막바지를 향하고 있겠다. 

단풍은 사실 나뭇잎이 시들었다는 증거이고, 겨울로 가는 길목을 가리킨다. 이형기 시인이 시 「낙화(落花)」에서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라고 노래한 첫 연은 아름답기도 하고 사랑과 이별의 낭만을 노래한 뜻으로 읽을 수도 있겠지만, 시 전체의 맥락으로 보면 꽃이 져야 열매가 열린다는 원리를 빌어 우리 인생도 아픈 이별을 겪은 후에야 그 삶의 자세가 더 원숙해질 수 있다는 이치를 말하고 있다. 그처럼, 이 계절의 단풍도 겨울의 메마름과 추위에 대비해 낡은 잎을 떨어내고 봄에 새잎을 피워낼 힘을 비축하는 과정일 것이고, 나무가 나름대로 계절에 적응해 가는 것처럼 우리도 이 겨울에 힘과 지혜를 길러야 하리라는 각오를 다지는 것이 어쩌면 정상적인 생각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이성적 판단에만 몰두하기에는 단풍과 낙엽이 불러일으키는 감성의 힘이 훨씬 크다. 나뭇잎이 노랗고 붉게 물들어 세상을 잠시 아름답게 변하게 하고, 흡사 저녁노을처럼 누구나 본질적으로 가지기 마련인 삶의 종말과 아픔을 연상시키게도 한다. 쓸쓸한 느낌이 드는 서늘한 바람과 함께 오는 가을은 그래서 사람을 은근히 시인으로도 만들고, 잠시 철학자로 변모시키기도 하는 계절일 것 같다.

그런 연유에선지 가을엔 유독 문화예술행사가 많았는데, 지난 10월 30일 우리 고장 앞바다 신수도에서도 작은 시낭송회가 열려 이채로웠다. 선착장 입구 뜰에 작은 무대를 만들고 50명 정도의 사람이 띄엄띄엄 모여 가진, 작지만 아기자기하고 가을냄새 물씬한 조촐한 행사였다. ‘신수도 환경연합회’에서 주최했는데 행사의 정식 명칭은 ‘제1회 신수도 시 낭송과 주민 노래잔치’였다. 주민 노래잔치를 곁들인 이유는 아마 시가 낯설 노인층을 배려한 데에 있을 것인데, 노래란 시에다 음악을 가미한 것이라 시 낭송과 노래잔치가 전혀 이질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신수도에는 이 행사를 주최한 단체 이름으로 동쪽 방파제에 부착해 나가고 있는 시 판넬이 어느덧 100개를 헤아리고 있다. 조금만 더 갖춰 간다면 대한민국 섬 최고의 문학 명소가 될 것으로 믿어 마지않는다.

이날 발표된 시는 주로 등단한 시인의 시였는데, 이제 등단을 기다리고 있는 시인의 좋은 시가 있어 소개한다. 필명 주리애 시인의 「그리움」이란 시다.

“어린 기억들이 열리면/ 배시시 일어나는 웃음// 두꺼비를 부르며/ 수북한 모래손등 토닥이던 강가/ 여전히 까만 조약돌// 작은 올챙이 연못/ 아까시 향기 차려 놓은 개구리밥// 살구색 가슴 가리개 입던/ 수줍은 첫날/ 봉숭아 꽃물들인 손톱달 뜨면// 너도 이젠 사랑을 하게 될 거야/ 자꾸만 속삭이는 툇마루의 꿈결// 한나절 해 기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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