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인물 탐구] 소설가이자 역사가, 범보 김인배 ④

“거대 기술 산업사회에서 문학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에게 소설 창작이란 언어로 타인과 관계 맺기였다
새 문학 장르 개척…역사 논문과 소설의 경계 허물어

소설가이면서 역사가로 평가받는 범보 김인배 선생. 그의 고향은 사천 삼천포이다. 그러나 고향을 오래 떠나 있던 탓에 지역에서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이가 드물다. 이에 뉴스사천은 범보 선생의 삶과 작품 세계를 소개한다. 글쓴이는 범보 선생의 누이동생이기도 하다.  -편집자-

삼천포 바다를 배경으로 한 김인배 작가의 생전 모습

[뉴스사천=김도숙 시민기자] 인터넷 시대, 휴대전화 문자 시대의 절정기를 맞아 바야흐로 끝 간 데 없이 넘쳐나는 활자 공해가 도리어 언어를 질식시키는 어지러운 세상이다.

정작 심금을 울리는 글은 점점 보기 힘들다. 출판업계도 그저 상업적 가치로만 환산되는, 이른바 잘 팔리는 기획물들만 마구잡이로 찍어내니, 어떤 면에서는 실로 풍요로운 책 세상으로 변한 지도 오래다. 정신의 등가물(等價物)이라던 문학에 대한 전통적 인식과 관념이 바뀌고 있다. 이런 시대에 김인배 작가는 자신의 심경을 고백한 적이 있다.

“이제는 문학이며 기타 예술도 모두 물질적 재화 가치와 연관 지어 따지게 된 세상에서 문학의 사회적 기능에 대한 회의만 깊어질 뿐입니다. 능률과 생산성을 추구하는 이 거대 기술 산업사회 속에서 진정 문학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런 현실에 대처하기 위해 대관절 소설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은 명색이 이 땅에서 소설가로 행세하는 나 자신을 한없이 무기력하게 만듭니다.” -『경남문학 2007년 봄호』 중에서-

데뷔작 『방울뱀』에서 『열린 문 닫힌 문』까지

작가의 데뷔작인 『방울뱀』에서는 ‘나(김기호)’의 마음속에 드리운 삼촌의 그림자와 월남전에서 자살한 부하 강 병장의 그림자를 애써 지워나가는 과정을 통해, 중편 『극락선』에서는 ‘송랑’의 삶 속에 그늘을 드리운 아버지와 형 ‘충랑’의 그림자를 지우려는 노력을 통해, 내면의 어둠을 극복함으로써 삶의 진정성에 도달하고자 하였다. 소설집 『문신』과 『후박나무 밑의 사랑』에서도 개인과 세계의 불화를 존재론적 차원에서 접근해 들어가며, 작중 인물들의 내면 심리를 섬세하면서도 서정적으로 묘사해 나간다. 이러한 김인배 작가 특유의 문체는 우리에게 진한 감동을 던져 준다.

여기서 김인배의 문학관에 대해 알아보자. 문학의 기본적인 조건이 ‘인간과 인간 사이의 언어 소통’이라면, 그는 ‘소설로 가장 아름다운 언어 소통을 이뤄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여겼다. 같은 동물이면서도 사람과 짐승의 종차(種差)는, 오직 인간만이 언어로 깊이 사유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문학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는 사람으로 태어난 것에 감사하고 또 행복해했다. 그런 그에게 소설의 창작이란 언어의 아름다운 소통으로 타인과 관계 맺는 행위와 다름없었다.

더욱이 딴 장르에 비해 소설이야말로 치밀한 언어의 조합과 엄격성을 요구한다. 의사 전달 면에서도 사고의 통제에 가장 신경 써서 표현해야 하는 것이 소설 문장이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소설가는 모국어의 아름다움을 가장 잘 다듬고 가꾸어야 할 책무가 있다고 그는 늘 말했다. 그리하여, 자기만의 독특한 문체로 ‘슬픔’까지도 아름답게 그려냄으로써 아무쪼록 자신의 작품이 ‘아름다운 소설’로 평가받고 싶어 했다.
                        
 

김인배 작가에게 소설 창작이란 ‘언어로 타인과 관계 맺기’였다. 창작 활동 후반기엔 역사 논문과 소설의 경계를 허문, 새 문학 장르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인배 작가에게 소설 창작이란 ‘언어로 타인과 관계 맺기’였다. 창작 활동 후반기엔 역사 논문과 소설의 경계를 허문, 새 문학 장르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삶의 진정성과 역설의 진리

김인배 작가의 소설은 섬세한 인간의 내면을 그리거나, 또는 개인적 삶의 가치관이 동시대 사회의 다른 조건과 부딪칠 때 일어나는 갈등 앞에서 ‘진정한 삶이란 어떤 것인가’를 등장인물이 독자에게 묻는 내용이었다.

또, 그가 발견한 것은 다름 아닌, 세상 모든 사물의 근본 원리이기도 한 ‘역설의 진리’였다. 그는 소설을 잠시 접고 우리말 연구서인 『일본서기 고대어는 한국어』(1991), 『전혀 다른 향가와 만엽가』(1993), 『일본 천황가의 한국식 이름 연구, 神들의 이름』(2009)과 역사 연구를 통해 왜곡된 한일고대사를 바로 잡은 『역설의 한일고대사 任那新論』(1995), 『고대로 흐르는 물길』(1995) 등을 출간하기도 하였다.

그는 역사 연구로 발견한 것들을 소설로 써보고 싶어 했다. 그래서 2008년부터 다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해 소설집 『비형랑의 낮과 밤』(2008)의 출간을 계기로 연이어 중·단편들을 여러 문예지에 발표했다. 장편소설 『바람의 끝자락을 보았는가』(2012)에 이어 또 다른 장편소설 『오동나무꽃 진 자리』(2015)도 출간했다.

2013년부터 2015년까지 3년에 걸쳐 완성한 장편소설 『열린 문 닫힌 문』을 2018년 말에 출판했다. 이 소설은 역사 논문과 소설의 경계를 허물어, 일종의 새로운 문학 장르를 실험해 본 특이한 글쓰기 형태라는 평가를 받았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이야기체로 쓴 논문’이랄 수 있겠다. 오랫동안 우리말과 고대사를 연구해 온 작가의 놀라운 발견들이 이 소설 곳곳에 반영되어 있다. 결국 그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 일종의 자기 존재 증명 같은 것이었다.

-연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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