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사천=최진정 사천중학교 교사] 시간이 흘러 집 마당 가득 단풍이 흘러왔다가 이내 낙엽이 되었다. “단풍 물든 것 좀 봐!”라고 감탄할 새도 없이 하루해가 반 토막이 났다. 참 찰나(刹那)의 기억 같은 생(生)이다.

아들이 오랜만에 집에 들렀는데, 아내와 대화 도중에 

“아들, 올해 니 나이가 몇이가?”
“벌써 서른입니다.”
“무슨 소리고?”
“스물여덟이니 한 달 있으면 아홉 되고 바로 서른입니다.”
“이놈의 자슥아, 스물여덟이라고 해야지!”
“그거나, 그거나”
“그럼 올해 내 나이가 쉰다섯이가?”
“여보, 여보” 호들갑을 떨면서 자기 나이가 벌써 쉰다섯이나 되었다고 한탄하는 아내를 보며 입맛이 쓰다.

사랑이 뭔지, 가정이 뭔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남의 집 딸내미 데려다가 벌써 삼십년을 살았다. 아내에게는 그래도 좀 덜 미안하다. 결혼 초에 청천벽력 같은 병을 치료하고 지금까지 고질(痼疾)로 달고 살면서도 그럭저럭 하느님께 감사하면서 버텨왔다. 울 엄니가 들으시면 환장하시겠지만 내 삶에 지금까지 주어진 시간도 하느님께 감사할 따름이다.

교직 생활도 마찬가지로 참 많은 시간이 흘렀다. 벌써 만 삼십일년이란 시간 동안 아이들을 가르치며 생업으로 삼고 살아왔다. 스물일곱에 처음 만난 여고생들은 총각이라고, 수업은 듣지 않고 연애 이야기만 해달라고 조르고 했었는데……. 연예인 못지않은 관심을 받으며 돈키호테마냥 문학이 어떻고 인생이 어떻고 주저리주저리 섬기며 가을 하늘보다 파란 꿈을 심어주고자 했었다. 지금 사천중학교 학생들에게 보이는 내 모습은 인자한 할아버지 선생님일까, 아님 ‘라떼(나 때)는 말이야’ 이야기를 주워섬기는 꼰대 선생님일까? 

교사로 처음 교무실에 들어섰을 때는 나이 많은 선배 선생님들의 라떼 이야기에 딴 길로 새기가 일수였는데……. 벌써 명퇴를 한 동기들을 만나면 부럽기도 하고 또 한편으론 여분의 내 삶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도 된다. 가끔은 동료들과 생각 차이로 갈등이 일어나기도 하는데 옳고 그름을 가리기도 어렵고 참 어려울 때가 많다. 아직 고집을 피우는 게 철이 한참 덜 들었다 싶다.

오늘 목욕탕에서 학부모님을 만났는데 며칠 전에 수학능력시험을 봤다고 시험은 평소 실력대로 잘 봤다고, 지자체가 운영하는 과학기술원에 수시로 합격은 했다고……. 엊그제 졸업한 것 같은데 벌써 대학생이 된다니? 너무 기쁜 소식인데, 진심으로 축하한다는 인사를 제대로 건네지 못했다. 학부모님의 마음을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 싶다. 자라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애태우며 기뻐하는 것은 부모나 교사나 같은 입장인 것 같다. 

이제 여여(如如)한 마음으로 내가 살아온 고마운 세상, 특히 아이들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고 싶다. 내 이름을 가지고 놀린다며 ‘릴렉스, 릴렉스’하며 깔깔대며 다가오는 아이들이 참 고맙다.

짐을 챙기는 아들을 보면서/ 아들의 모습에 내 모습이 어른거리고/ 난 나의 아버지가 된다.

회자정리(會者定離)/ 만나면 헤어지는 것./ 부자(父子)로 만나도/ 연인으로 만나도

달이 차면 단풍이 들고 바람이 불면 낙엽도 떨어지고/

날씨는 좋은지/배를 곯지는 않는지/배알 뒤틀리게 남에게 대가리 숙이는 일은 없는지

내가 죽거든/ 날 위해 절대 울지 말라시던,/울면 니 신세가 고달픔 때문일거라시던

아버지 말씀에/울지 않고 살려고 아버지 생각 않으려고/그 생각으로 아들은 삽니다.
(아들 모습에서 아버지 모습이 보여서 쓴 잡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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