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선한의 영화이야기] 나일 강의 죽음

'나일 강의 죽음' 영화포스터.
'나일 강의 죽음' 영화포스터.

[뉴스사천=배선한 시민기자] 케네스 브래너 감독이 애거서 크리스티 작가의 <오리엔트 특급 살인>에 이어 또 다른 명작 <나일 강의 죽음>으로 돌아왔다. 이번에도 주인공인 에르퀼 포아로 역할이다. 시대와 상황이 변한 만큼 변화는 예상했으나 생각보다 각색이 훨씬 많이 이루어졌다. 이게 성공적이었으면 좋았으련만, 아니 본래 기대가 없었으니 실망조차 없었다.

먼저 애거서 크리스티 작가의 핵심이라고 할 주인공 캐릭터 에르퀼 포와로에 대한 해석은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 5년 전 <오리엔트 특급 살인>에 관해 쓸 때 불평에 가까운 실망을 토로하면서 ‘마음에 들지도 않는 포와로를 또 봐야 한다는 게 그저 불편하다.’는 말로 말을 맺었는데, 이는 <나일 강의 죽음>을 만들 때는 조금이라도 달라져 있길 바란다는 소망이 깃들어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아끼고 아꼈던 ‘재수 없지만 사랑스러운 괴짜 잘난척대마왕’ 에르퀼 포와로의 흔적이라고는 콧수염 하나 말고는 찾아볼 길이 없다. 아니, 콧수염마저 없애버렸다. 이렇게 억지로 21세기식 열혈 히어로로 둔갑시켜야 할 이유가 뭘까.

캐릭터 설정이 왜 문제냐 하면 장르영화의 기둥 하나를 부실 공사로 만든다는 데 있다. <나일 강의 죽음>은 살인사건이 벌어지고 범죄자를 추적해 나가는 과정을 그린 전형적인 후더닛(Whodunnit) 영화다. 그러니까 주인공 포와로가 회색빛 뇌세포를 이용해 범인을 밝혀내는 것이 핵심인데 뜬금없는 변신에 그 재미가 사라져버렸으니, 당연하다고 해야 할지 해설로 마무리하는 무책임한 결말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나름 고민을 해서 빈자리를 주변 서사로 채우기는 했는데, 그것도 “4주 후에 뵙겠습니다.”의 ‘사랑과 전쟁’이다. <나일 강의 죽음>은 애거서 크리스티 작가가 가장 사랑한 작품이라고 하는데, 관 뚜껑을 열고 뛰쳐나오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팬데믹 시국이라 해외여행이 꽉 막힌 상황에서, 영화 초반부에 이집트의 이국적인 풍광이 대리만족을 주기는 한다. 그러나 그게 목적이라면 이집트 관광청의 홍보영상을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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