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N'과 함께] 이 달의 인물 : 박민주 학생과 권경숙 코치

육상 꿈나무인 박민주 학생(사천여중, 오른쪽)과 그의 엄마 같은 스승인 권경숙 코치.
육상 꿈나무인 박민주 학생(사천여중, 오른쪽)과 그의 엄마 같은 스승인 권경숙 코치.

[뉴스사천] 지난해 가을, 경북 구미시에서 열린 제50회 전국소년체육대회 현장. 여자 초등부 육상 800m 경기에서 빼어난 실력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한 이가 있다. 그 주인공은 사천초등학교 박민주 학생(지금은 사천여중 재학)이다. 그는 ‘꿈나무 국가대표’로서 대한민국 여자 육상의 미래를 밝힐 인재로 주목받고 있다. 민주 양에게 가슴 뛰는 오늘을 있게 한 이는 권경숙 코치이다. 때론 스승과 제자, 때론 엄마와 딸 같이 지낸다는 두 사람에게서 ‘꿈을 좇아 뛰는’ 숨은 이야기를 들었다.

사천을 깨우는 소리의 주인공은?

“후, 후, 후”

한산하고 고요한 사천 수양공원에 거친 숨소리가 긴장감을 가득 불어 넣는다. 초등학생에서부터 중학생쯤으로 보이는 여남은의 아이들이 달려가며 내는 숨소리다. 숲을 지나고 탁 트인 평지를 달려온 아이들의 숨소리는 계단을 오르며 더욱 거칠어졌다. 

사천 수양공원에서 훈련 중인 박민주 학생(가운데).
사천 수양공원에서 훈련 중인 박민주 학생(가운데).

“그렇게 뛰면 어떡해! 종아리에 힘을 주고 다리를 밀어 올려야지!”

 

속도를 늦추며 숨을 고르고 싶다가도 채찍처럼 꽂히는 코치 선생님의 목소리에 아이들은 화들짝 놀라 더욱 힘을 내는 듯했다. 겨울방학이라 또래의 다른 아이들은 여태 이불 속에서 뒹굴지도 모를 일인데, 뜨끈한 김을 내뿜으며 수양공원의 찬 공기를 데우는 모습이 기특하면서도 멋있다.

이 멋진 그림의 한가운데 있는 이가 박민주(14) 학생이다. 키 150cm에 몸무게 38kg의 작은 몸집이지만 두세 살 위의 언니·오빠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지친 기색도 찾아보기 힘들다. 1월에 이미 졸업식을 마친 민주 양은 3월에 사천여자중학교 진학 전까지 모교인 사천초등학교와 수양공원에서 이처럼 체력 훈련을 계속하고 있다.

그런데 여느 아이들과 달리 민주 양의 옷차림이 눈에 띈다. 특히 윗옷에 적힌 ‘KAAF’라는 글씨. 이것은 ‘대한육상연맹’을 뜻하는 영어 약자다.
그런데 여느 아이들과 달리 민주 양의 옷차림이 눈에 띈다. 특히 윗옷에 적힌 ‘KAAF’라는 글씨. 이것은 ‘대한육상연맹’을 뜻하는 영어 약자다.

육상 꿈나무 박민주를 소개합니다

그런데 여느 아이들과 달리 민주 양의 옷차림이 눈에 띈다. 특히 윗옷에 적힌 ‘KAAF’라는 글씨. 이것은 ‘대한육상연맹’을 뜻하는 영어 약자로서, 그것만으로 예사롭지 않다. 실제로 민주 양은 3년째 육상 부문의 ‘꿈나무 국가대표’이다. 주 종목은 80m, 200m, 800m 등으로 바뀌어 왔다.

지금은 같은 또래 여자 800m 부문의 국내 최강이다. 지난해 11월 6일에 열린 제9회 추계 전국초등학교 육상경기대회에서 2분 16초 34라는 기록으로 우승한 데 이어, 일주일쯤 뒤에 열린 문화체육관광부장관기 제42회 전국육상경기대회 겸 제50회 전국소년체육대회에서도 2분 16초 59의 기록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둘 다 대회 신기록이었을 뿐 아니라 2위보다 월등히 앞선 기록이었다. 이로써 민주 양은 대한민국 육상계가 주목하는, 명실공히 ‘육상 꿈나무’가 되었다.

제9회 추계 전국초등학교 육상경기대회 여자 800m 부문에서 우승한 박민주 학생.
제9회 추계 전국초등학교 육상경기대회 여자 800m 부문에서 우승한 박민주 학생.

“어릴 때부터 뛰어노는 게 제일 재밌었어요. 그래서 친구들과 학교 운동장에서 늘 놀았죠. 3학년 때부턴가? 코치 선생님께서 육상을 해보자고 해서 시작했는데, 보람도 있고 적성에도 맞았어요. 훈련이 힘들면 다른 친구들은 ‘내일은 하기 싫어’라고 하는데, 저는 안 그랬거든요. 어차피 집에 혼자 있을 테고 심심하니까 ‘나는 내일도 운동하러 가야지’ 하는 마음이었어요.”

 

민주 양의 손을 잡아 준 권경숙 코치

외로움과 심심함? 어쩌면 지금의 민주 양을 만든 원동력이다. 그리고 그 밑바탕에는 조금은 독특한 가족사가 있다. 민주 양은 베트남에서 시집온 엄마와 사천 토박이 아빠 사이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엄마와 아빠의 결혼이 깨어지면서 민주 양은 아주 어릴 적부터 엄마 손에서만 자랐고, 엄마의 서툰 한국어와 바쁜 일상 탓에 교육도 뒤처질 수밖에 없었다. 홀로 힘든 시간을 보내던 민주 양에게 빛이 되어준 건 권경숙(48) 코치(=선생님)였다.

권 코치는 경남체고를 졸업한 뒤 한국국제대, 경상국립대에서 학사와 석사 학위를 차례로 취득한 ‘학교 운동부 (육상)지도자’이다. 2006년에 사천초등학교에 부임한 뒤로 사천 관내 여러 초·중교를 순회하며 지금껏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처음 만났을 적 민주 양을 ‘예의 바른 부진아’로 기억했다.

 

“민주가 1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저에게 지도를 권했어요. 얼핏 보니 키는 작아도 날다람쥐처럼 빠르고 잘 뛰더라고요. 예의도 발랐는데, 말은 어눌했어요. (……) 초등학교에서 운동을 가르친다는 건 선수를 키운다기보다 교육적 목적이 강합니다. 그것이 지식이든 인성이든 몸의 자세든 달리기든. 그래서 계속 소통하며 눈여겨봤죠. 본격적인 운동은 민주가 3학년 때부터 시작했는데, 그때도 지금도 강조해요, 운동하려면 공부를 해야 한다고. 지금은 많이 나아졌죠.”

 

“유소년 체육에 더 관심 가져주기를”

권 코치가 꼽는 민주 양의 장단점은 분명했다. 먼저 장점은 꾸준함과 성실함이다. 훈련에 있어 게으름이 없다고 했다. 단점으로는 신체적 조건을 들었다. 심폐기능과 근육이 발달해 있으나, 속도를 높이거나 순간적인 폭발력을 발휘하는 데 필요한, 이른바 ‘건(=힘줄)’이 약하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단거리 종목보다는 중장거리 종목이 민주 양에게 더 알맞다고 했다.

권경숙 코치가 박민주 학생의 자세를 고쳐주고 있다.
권경숙 코치가 박민주 학생의 자세를 고쳐주고 있다.

권 코치는 “지구력은 웬만한 선수라면 훈련으로 따라올 수 있으므로 민주도 끊임없이 몸을 만들면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런 진단과 충고가 낯설지 않은 듯, 민주 양은 “발을 잘 못 써서 미는 게 힘들다”라며, “죽기 살기로 연습할 것”이라 다짐했다.

권 코치는 민주 양에 관해 이야기하는 동안 불쑥불쑥 다른 제자들의 이야기를 꺼내곤 했다. 하나같이 제자에 관한 애정과 학교 체육을 향한 소신 같은 것이 묻어났다. 그는 “유소년 체육이 있어야 성인·프로 스포츠가 있다”며, 유소년과 학교 체육에 사회가 더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 주기를 바랐다. 사천시와 사천시민을 향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겨울에 운동할 곳이 마땅찮아 수양공원을 자주 이용하거든요. 그런데 뛰는 아이들을 향해 ‘먼지 일으킨다’며 나무라는 어른들을 가끔 만나곤 해요. 그럴 땐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부끄럽죠. ‘아이들이 운동할 곳이 얼마나 있나 살펴보고 그런 얘기 하시라’고 말해주고 싶기도 하고. 그나마 손뼉 쳐 주고 응원해주는 분도 계시니 힘을 냅니다.”

 

“나의 기록을 차근차근 깨고 싶어요”

이렇듯 제자들을 향한 권 코치의 마음은 각별하다. 그런 마음이 닿았는지 민주 양은 권 코치를 엄마처럼 잘 따르는 모양이다. 엄마가 바쁜 일이 있을 땐 아예 권 코치의 집에서 지내기도 한다고 했다. 덕분에 민주 양의 엄마와 아빠도 시름을 덜고 딸에게 응원을 보낼 수 있게 됐다.

아시아권 제패를 꿈꾸는 박민주 학생과 권경숙 코치.
아시아권 제패를 꿈꾸는 박민주 학생과 권경숙 코치.

“꿈요? 제 기록을 차근차근 깨는 거죠! 그러다 보면 한국 신기록을 세울 수 있겠죠? 그럼 다시 더 노력해서 그 기록을 깨고 싶어요!”

 

민주 양의 이 꿈은 이루어질까? 민주 양과 중학교 3년 과정을 더 함께할 엄마 같은 스승, 권 코치는 긍정의 마음을 실었다.

 

“약한 점을 잘 다듬으면서 성장시켜야 해요. 나중에 더 좋은 지도자를 만나는 일도 중요하겠죠. 그렇게 되면 아시아권 제패, ‘제2의 임춘애 탄생’도 가능하리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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