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을 반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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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을 반대합니다
  • 구륜휘 작가
  • 승인 2022.05.04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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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륜휘 작가
구륜휘 작가

[뉴스사천=구륜휘 작가] 나는 노래를 쓰기로 작정한다. 노래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게 모티브라고 하니까. 모티브가 정해지면 곡을 쓰면 되고 곡을 완성하면 된다. 그렇게 만든 노래 중에 하나는 모깨때기가 있다. 발표하지는 않았지만 우리 할머니에 관한 이야기다. 우리 할머니는 경남 고성군 목계마을에서 자랐다. 심 씨 일가의 첫째 딸로 태어났고, 갑자기 시집을 가게 된다. 우리 할아버지는 경남 고성군 가룡마을에서 자랐다. 가룡마을로 시집을 간 목계댁(宅)이는 모깨때기가 되었다. 갑자기 혼사를 치룬 것은 태평양전쟁에 징집을 면하기 위한 할아버지의 간곡한 부탁에 의해서였다.

태평양전쟁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일제가 일으킨 전쟁이다. 1931년 만주사변을 시작으로 하와이 진주만 기습까지 이어질 정도로 질긴 역사 속 그 전쟁. 1945년 해방이 되기까지 일제강점하에 살던 때 이야기다. 내가 만든 ‘모깨때기'는 평화롭던 경상남도 아주 작은 바닷마을에서도 태평양전쟁에 징집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결혼한 한 남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1절/ 가룡마을 구부러진 길 따라, 바다를 따라 걸어가면 나오는 목계마을. 그래서 목계댁된 우리 할머니. 봄이면 취나물 캐고, 여름이면 고사리 삶고, 가을이면 청각을 줍고, 겨울이면 굴 까던 우리 할매. 좋아하는 색깔도 없대. 좋아하는 친구도 없대. 다 죽어서 사라져버렸대, 할아버지 구대원도. 그래서 청각이 좋대. 모깨때기가 보고 싶어. 모깨때기 손녀는 모깨때기를 부르네. 모깨때기, 모깨때기, 모깨때기. 모깨때기, 모깨때기, 모깨때기. 모깨때기, 모깨때기. 모깨때기, 모깨때기, 모깨대기.

2절/ 할아버지, 구대원은요. 태평양 전쟁 때 징집을 면하기 위해서 목계마을 첫째 딸과 결혼했죠. 그리고 아주 더운 여름날, 할아버지 새파랗게 젊은 날 갑자기, 갑자기 돌아가셨어. 모깨때기는 그때부터 하루종일 독하게 일만했어. 새우를 받아서 삼천포까지 버스를 타고 나가 팔아더랬지. 못 팔고 남은 썩은 새우 부둥켜 안고 울었대. 버스도 놓쳐 마냥 걷다가, 귀신이 나타날까 이렇게 외쳤대. “사람이면 오고, 귀신이면 그냥 가소.” 모깨때기가 보고 싶어. 모깨때기 손녀는 모깨때기를 부르네. 모깨때기, 모깨때기, 모깨때기. 모깨때기, 모깨때기, 모깨때기. 모깨때기, 모깨때기. 모깨때기, 모깨때기, 모깨대기.

3절/ 우악스런 성격. 괴팍한 성미. 욕쟁이 할머니 모깨때기는 손녀만 보면, 손녀만 보면 옛날 이야기를 해줬죠. 나는 로맨틱한 할아버지 구대원이 궁금하기만한데, 할아버지 사진 한 장 남기지 않은 모깨때기는 그를 너무 사랑했나봐. 정말 많이, 많이.

4절/ 모깨때기가 웃었어. 말도 못하게 아픈 상태면서도. 급하게 뛰어간 병원에서 모깨때기는 루니 좋다고 웃었어. 간호사 선생님. 알콜을 묻혀 할머니 손에 금반지 빼냈어. 그리고 내게 줬어. 내 손가락에 끼워 봤어. 모깨때기가 웃었어. 모깨때기가 사라져 버렸어. 보고싶어서 할매를 부르는, 루니 손녀라네. 모깨때기라네.

해방 한지가 언제인대. 언제적 라떼 이야기를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내 눈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모깨때기를 다시 떠올리게 한다. 우악스러운 옛 제국들의 싸움 걸기를 언제까지 지켜보고 있어야 할까. 우연찮게도 요즘 새로 배운 영어 단어가 있다. Refugee(난민)가 그것이다. 전쟁을 피해, 폭력을 피해, 박해를 피해 집을 ‘도망' 쳐야 하는 수많은 우크라이나의 아이들과 사람들은 봄볕을 떠올리면 이제 지옥을 떠올릴 것이다.

나는 노래를 쓰기로 작정했었다. 태평양 전쟁으로 모깨때기는 Migrant(이주자)가 되었지만, 난민은 아니었다. 구부러진 길따라 걸어가면 나오는 바닷마을인 가룡마을에 새로 정착했다. 봄이면 취나물 캐고, 여름이면 고사리 삶고, 가을이면 청각을 줍고, 겨울이면 굴을 깔 수 있었다.

“할매, 할아버지가 좋아? 청각이 좋아?” 가을로 넘어가는 여름날 할머니에게 물었다. 할머니는 청각이라고 말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와는 생활할 수 없지만, 청각으로는 생활이 가능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밥을 짓고, 숨을 쉬고, 잠을 자는 삶은 생활로 이루어져 있다. 생(生)활을 사(死)활해야 하는 우크라이나의 난민들과 사람들을 생각해보자. 내가 여름날 고르는 반팔티셔츠가 내가 더워서 먹는 냉면이 내가 피곤해서 눕는 우리집에서 도망쳐야 한다고 안 그러면 죽음으로부터 해방될 수 없다고 생각하며 떠는 사람들이 있다. 우크라이나의 현 상황이다.

 

※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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