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삼조 시인
정삼조 시인

[뉴스사천=정삼조 시인] 언젠가 여기서 짧게 소개한 바 있는 ‘녹번통신’ 선배께서 오늘도 변함없이 시를 보내 오셨다. 무심코 보니 박재삼이라고만 소개돼 있고 제목이 없다.

‘늘
햇빛과 가까이 하는
마음으로
편하게 살자’
고만 했고, 그 아래 작은 글씨로 해제를 적은 것이다.

내친 김에 그 해제도 적어 보면,

‘여름은 햇빛과 나무들의 호시절
잠들지 않고 세상을 건너가는 푸른 강물
빛나는 약속으로 버티고 서서
물살을 거슬러 오르는 거친 숨결로
나날이 새로 깊어지는 생의 호흡’
이라 했다. 짐작컨대 시 모두를 소개하자니 짧은 지면에 다 들어가지 않아 시의 요지를 요약해 싣고, 그 해제를 붙인 것이리라. 소개하고자 했을 시는 아마도 박재삼 시 「햇빛의 선물」이지 싶다. 이제 조금 더 넉넉한 지면을 빌어 그 시 전문을 소개해 본다.

“시방 여릿여릿한 햇빛이
골고루 은혜롭게
하늘에서 땅으로 내리고 있는데,
따져보면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무궁무진한 값진 이 선물을
그대에게 드리고 싶은
마음은 절실하건만
내가 바치기 전에
그대는 벌써 그것을 받고 있는데
어쩔 수가 없구나.
다만 그 좋은 것을 받고도
그저 그렇거니
잘 모르고 있으니
이 답답함을 어디 가서 말할거나”

  엊그제 해가 바뀐 것 같은데 벌써 유월이다. 유월이라는 단어에는 우리를 먹먹하게 하는 역사가 있다. 영원히 잊어버릴 수 없는 가슴 아픈 전쟁이 있었고 현충일도 있는 달이다. 많은 억울한 죽음이 해마다 잊히지 않고 되살아나고 이산가족의 한이 또 한 해 더해지는 달이기도 하다. 이 기막힌 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고 휴전 상태로 있다. 우리는 이 역사를 곱씹어 민족의 미래를 다듬어야 할 숙제를 이 유월에 첫째로 가지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아픈 역사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유월은 또 한 해의 중간이고 햇빛이 가장 많을 때다. 만물이 맘껏 자라고 농사가 마무리되는 것도 있고 시작되는 것도 있어 풍년을 기약할 때다. 풍요로운 녹음의 계절이다.

  이 유월을 멋지게 노래한 시로 정혜숙 시인의 시 「6월」이 있다. 형식은 평시조 두 수다. 시조가 가진 형식의 틀이라는 구태의연함을 벗어난 빼어난 시다. 움직이는 것들은 움직이는 대로, 움직이지 않고도 자라는 것들은 또 그들대로 본연의 힘을 뽐내는 유월의 정취를 손에 잡힐 듯 그렸다. 두 번째 수만 소개한다.

“여름을 들어 올리는 노고지리 높은 음계에
감자밭 화답하듯 이랑마다 흰 꽃이다
들녘은 숨 가쁜 소리
밀 보리 익는 소리”

황금찬 시인의 시에도 「6월」이 있다. 1918년에 나서 2017년에 작고하셨으니 우리식 나이로는 백수를 누린 분이다. 남기신 시집이 15권이라 한다.

‘신록은
꽃보다 아름다워라’
라는 시구로 유월의 생기발랄함을 다 드러낸 시로 생각된다. 후반부만 소개한다.

“신록은
꽃보다 아름다워라
마음에 하늘을 담고
푸름의 파도를 걷는다

창을 열면
6월은 액자 속의 그림이 되어
벽 저만한 위치에
바람 없이 걸려있다

지금은 이 하늘에
6월에 가져온 풍경화를
나는 이만한 거리에서
바라보고 있다”

 

 

※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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