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남강댐 사천만 방류에 정부 책임을 묻다 ①

방폐장에서 남강댐 인공 방류 문제를 읽는다
일반지원 3조 4318억 원, 특별지원 3000억 원
특별법으로 보장…한수원 본사 이전도 실행

 

국가의 정책으로 졸지에 남강 물벼락을 맞게 된 사천시. 50년 넘는 설움은 오늘도 끝날 줄 모른다. 오히려 더 큰 물벼락의 위험이 눈앞이다. 지방자치 시대에 국가가 한 자치단체에 이렇듯 일방적 부담을 떠안기는 게 온당한가. 앞선 공공사업의 사례에서, 남강댐 인공 방류의 피해 지역인 사천시에 국가가 마땅히 해야 할 역할과 책임을 짚는다. -편집자-

 

[뉴스사천=하병주 기자] 다시 비가 많이 오는 계절이다. 열대 우림지역에서나 경험할 ‘스콜’성 폭우가 남부와 중부 지역을 오가며 쏟아진다. 정부는 기상이변 운운하며 더 많은 비가 한꺼번에 내릴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실은 이는 오래전부터 이어지는 현재진행형의 이야기다. 2002년 태풍 루사가 한반도를 덮칠 때, 이전에는 경험해보지 못한 큰 규모의 ‘물폭탄’을 쏟아내면서부터다. 그 뒤로 정부는 전국의 댐과 하천의 관리 기준을 강화해 왔다.

낙동강의 지류에 있는 남강댐도 예외는 아니었다. ‘치수 능력 증대’니 ‘댐 안정성 강화’니 하는 사업 이름으로 나왔는데, 핵심은 하나같이 ‘진양호 제수문을 키워 사천만으로 인공 방류량을 늘리자’는 거였다.

2020년 8월 집중호우 당시 남강댐 제수문 방류 모습.
2020년 8월 집중호우 당시 남강댐 제수문 방류 모습.

댐과 하천을 관리하고 홍수에 대비해야 할 정부로서는 너무나 손쉬운 방법일 수 있다. 그러나 남강댐의 인공 방류수를 받아내는 자리에 있는 사천시와 사천시민들은 생존이 걸린 문제로 인식한다. 10년에 한 번이든 100년에 한 번이든, 언젠가 홍수가 큰 재앙으로 닥칠 게 불을 보듯 빤한 가운데, 누가 사천이란 터전을 계속 지키며 살아가겠는가의 문제다.

재앙은 올여름에 닥칠 수도 있고, 바로 내년에 찾아올 수도 있다. 남강댐 인공 방류는 호수처럼 좁은 사천만의 바닷물 높이를 끌어 올려 주택과 공장, 도로, 농경지 등에 막대한 침수 피해를 낳을 것이다. 바닷물 수위 상승에 따라 사천만으로 흘러들어야 할 주요 하천의 물이 빠지지 못하면서 침수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다. 바닷물이 민물처럼 변한 데 따른 어업피해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2020년 8월 남강댐 홍수방류로 온갖 쓰레기가 사천만으로 떠내려왔다. 당시 큰 피해를 입은 죽방렴 모습.(사진=뉴스사천 DB)
2020년 8월 남강댐 홍수방류로 온갖 쓰레기가 사천만으로 떠내려왔다. 당시 큰 피해를 입은 죽방렴 모습.(사진=뉴스사천 DB)
‘남강댐 문제 대응 범시민대책위원회’의 집회 모습.
‘남강댐 문제 대응 범시민대책위원회’의 집회 모습.

언제 닥칠지 모를 큰 재앙을 머리맡에 이고 사는 사천시. 가까이 있는 지자체와도 ‘더 살기 좋은 동네’를 만들고자 경쟁하는 ‘지방자치 시대’에 그저 ‘운명’으로 여기기엔 속이 새까맣게 탈 일이다. 이 일이 50여 년 전 국가의 정책으로 만들어졌음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물론 국가나 지방정부는 대의나 다수를 위해 반대를 무릅쓰고도 꼭 해야 할 일이 있다. 충분한 토론과 설득의 시간을 거쳐야 함은 당연한 전제다. 그 과정에 어쩔 수 없이 손해나 피해를 보는 대상이 있다면, 그들을 품고 위로하는 일도 국가와 지방정부의 몫이다. 때로는 보상이, 때로는 지원이 필요하다. 그런 사례를 살펴서 ‘남강댐 인공 방류 문제 해결’에 참고하는 게 이번 기획 보도의 배경이다. 그 첫 예를 경주시의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줄여 방폐장) 유치 과정에서 찾는다.

우리나라의 방사성 폐기물 관리사업은 1984년 원자력위원회가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을 원전 부지 외부에 짓겠다는 정책을 세우면서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방사성폐기물은 원자력안전법 제2조 18호에서 ‘방사성물질, 또는 그에 오염된 물질로서 폐기의 대상이 되는 물질’로 정의하는데 여기에는 사용후핵연료도 포함된다. 관리의 주체는 한국원자력환경공단(KORAD)이다.

한국수력정부는 특별법에 따라 방폐장 유치지역에 다양한 지원책을 펴기로 약속했다. 지원책 중 하나가 원전 발전사업자의 본사 이전이다. 이 약속으로 한국수력원자력㈜이 2016년 3월에 경주시로 이전했다.
한국수력정부는 특별법에 따라 방폐장 유치지역에 다양한 지원책을 펴기로 약속했다. 지원책 중 하나가 원전 발전사업자의 본사 이전이다. 이 약속으로 한국수력원자력㈜이 2016년 3월에 경주시로 이전했다.

방폐장을 둠에 있어 가장 큰 고민거리는 장소를 정하는 일이었다. 2015년 8월에 경주에서 해당 시설이 문을 열기까지 아홉 차례나 부지선정 무산 과정을 거쳤다. 특히 전북 부안군에선 2003년에 군수가 직접 유치 의사를 밝혔다가 지역사회에 심각한 내홍을 불러일으켰다. 나아가 이 문제는 원자력 발전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으로 엇갈려 국가적 논란으로 번지기도 했다.

반면에 경주시는 2005년 11월에 주민투표로 방폐장 유치를 결정했다.

경주시의 방폐장 유치 결정에는 정부가 약속한 특별한 지원 정책도 한몫했다. 정부의 이 지원 약속은 2005년 3월에 국회가 제정한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의 유치지역 지원에 관한 특별법」에 담겼다.

이 법은 유치지역 지원위원회 설치와 지원계획 수립, 특별지원금 지원, 지원사업 특별회계 운용, 지역주민 우선 고용 또는 참여, 국고보조금 인상 지원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국고보조금 인상 지원이란 「보조금의 예산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10조에서 ‘차등 보조율’을 정하고 있음에도, 대통령령이 정하는 보조율에 따라 유치지역에 국고보조금을 더 지원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원자력발전사업자의 본사 이전도 의무화했다.

한국수력원자력㈜ 본사 건물의 홍보관에는 주민들이 자유롭게 드나들며 다양한 체험거리를 즐길 수 있다.
한국수력원자력㈜ 본사 건물의 홍보관에는 주민들이 자유롭게 드나들며 다양한 체험거리를 즐길 수 있다.

이 법에 따라 경주시에는 3,000억 원의 방폐장 유치지역 지원금이 지급됐다. 이 지원금은 종합 장사공원 조성, 생활문화센터 건립, 복합도서관 건립 등 주민의 복지 증진과 편의 증대에 쓰이고 있다.

경주시에 방폐장 유치지역 지원금으로 건립된 문무왕면 생활문화센터.
경주시에 방폐장 유치지역 지원금으로 건립된 문무왕면 생활문화센터.

이뿐만 아니라 정부는 2035년까지 3조 4318억 원을 들여, 12개 부처에 걸쳐 55개의 대형 사업을 일반지원사업이란 이름으로 진행한다. 법에 따라 원전 발전사인 한국수력원자력㈜은 2016년 3월에 본사를 경주로 옮긴 상태다. 이 밖에 저소득 계층과 국가유공자 세대에는 전기료를 지원하고 있으며, 모든 세대에 TV수신료 지원 사업도 펼치고 있다.

  

이 과정에 경주시 시민사회는 “문화재 발굴이나 도로 개설 등 언젠가는 정부 주도로 해야 할 사업을 앞당겨서 하면서 온갖 생색을 낸다”거나 “사업이 너무 더디게 진행된다”며 비판을 쏟아내면서도,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유입 문제와 관련해선 정부와 협상을 제대로 해야 한다”며 새로운 협상을 앞둔 긴장감도 드러내고 있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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