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태 사천 ‘막걸리 문화촌’ 촌장, “옛 풍류 사천에서 되살리고파”
은퇴 후 우리 술 만들며 ‘인생 이모작’…“새로운 도전 과감히 하기”

'사천여성회가 만난 사천·사천사람' 코너는 사천여성회 글쓰기 모임에서 채우는 글 공간입니다. 사천의 여러 동네와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싣습니다. -편집자-

“나눔은 연대예요. 나눔의 가장 대표적인 물이죠. 물과 물이 만나서 최종적으로 나아가는 곳, 바다입니다. 바다의 색깔은 청색이죠. 청(靑)의 많은 의미 중 맑다는 뜻을 가진 청(淸)이 있습니다. 손님에게 대접하는 잘된 술, 제사에 올리는 맑은 술. 그래서 술은 정성으로 빚는 청빛이라고 생각해요.” 

사천예술촌 촌장, 자활센터를 거치는 동안 환갑을 맞이한 최 씨. 생의 전환기를 맞으며 우리 술을 빚어내는 일을 선택했다. 어려서부터 살아온 집을 개방해 막걸리 교육관을 만들어 ‘막걸리와 문화를 잇는’ 공간으로 쓰고 있다.(사진제공=사천여성회)
사천예술촌 촌장, 자활센터를 거치는 동안 환갑을 맞이한 최 씨. 생의 전환기를 맞으며 우리 술을 빚어내는 일을 선택했다. 어려서부터 살아온 집을 개방해 막걸리 교육관을 만들어 ‘막걸리와 문화를 잇는’ 공간으로 쓰고 있다.(사진제공=사천여성회)

최인태 ‘막걸리 문화촌’ 촌장. ‘우리 술’에 대한 그의 생각은 남달랐다.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 이전까지 집집마다 술을 빚었고 가양주 문화가 가장 활발했던 조선시대에는 술맛으로 그 해의 집안 운세를 점칠 정도였다고 한다.

2017년 사천읍에 문을 연 ‘막걸리 문화촌’은 ‘막걸리 학교’로 불리고 있다. 사천과 진주 등 여러 지역의 많은 이들이 이곳에서 우리 술의 역사와 전통제조법을 배웠다. 현재 5년째 운영되고 있는 ‘막걸리 문화촌’ 최인태 촌장을 만났다. 

막걸리에 대한 관심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1999년에 사천예술촌 촌장으로 일했습니다. 사천예술촌을 은퇴하고 자활센터에서 일하다보니 어느새 환갑이 되어 있었어요. 환갑은 인생 한바퀴를 다 돌았다는 뜻이 있지요. 60년 살아온 길을 똑같이 다시 살지 않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인생 이모작을 시작하는 것이지요. 그 선택이 막걸리였습니다. 막걸리를 생각하면 자생적 민족주의, 건강한 민족주의라는 생각이 들어요. 막걸리는 우리 민족의 삶 속에서 뿌리 깊게 존재해왔는데, 일제강점기 때 싹 사라지게 되었죠. 막걸리를 공부하다 보니 우리에게는 뛰어난 우리 술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배움이 깊어 질수록 그것이 우리 민족의 뿌리이자 숨결이라는 걸 알게 되고, 공부의 즐거움이 더해지기 시작했어요.

관심이 배움으로 연결되는 게 어렵지는 않았나요?
=부산 막걸리학교에서 초급과정을 수료하고, 중급과정과 상급과정은 서울에서 배웠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버스 타고 통학했죠.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을 즐거워하는 편입니다. 일주일에 한 번인 그날이 꼭 소풍 가는 날 같았습니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도,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도 참 좋았어요. 수업 후엔 막걸리집을 돌아다니며 뒤풀이를 했습니다. 그런 날은 찜질방에서 자고 다음 날 사천으로 내려오곤 했어요. 막걸리를 배우러 온 사람들 대부분이 우리 것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해요.

2017년 문을 연 ‘막걸리 문화촌’에서 최인태 촌장이 막걸리 제조법을 알려주고 있다.(사진제공=사천여성회)
2017년 문을 연 ‘막걸리 문화촌’에서 최인태 촌장이 막걸리 제조법을 알려주고 있다.(사진제공=사천여성회)

지난 5년 동안 <사천 막걸리 문화촌>을 운영하면서 힘든 점은 없었나요?
=옛날에 집에서 건재상을 했습니다. 시멘트 같은 건축자재도 팔고 석유나 가축 사료, 소금 등을 취급하던 종합마트였죠. 현재 막걸리 교육관으로 활용하고 있는 자리가 옛 우리 집 소금 창고였습니다. 건물을 임대해서 사용한다면 임대료나 인건비 같은 운영비가 부담스러워 막걸리 교육공간을 만들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여기는 우리 집이고 또 제가 직접 운영하기 때문에 부담이 적습니다. 그러니까 남도의 끝자락에 막걸리 학교가 생길 수 있었습니다. 사천에 이런 공간이 있다는 것을 지역 주민들이 기쁘게 생각해줬으면 해요. 

‘우리 막걸리’를 제조하고 알리는 데 있어 목표가 있으신가요?
=조선 시대 가양주같이 사천의 집집마다 우리 술을 만들어 먹었으면 좋겠어요. 사천의 가양주 문화를 다시 꽃피우는 것이죠. 봄에는 사천 이구산과 와룡산에서 딴 진달래로 빚은 술인 두견주와 가을에는 와룡산에서 딴 국화로 만든 와룡국주를 만들었습니다. 겨울에는 백천골에서 솔순을 따서 송순주를 만들었고요. 이제 연꽃으로 여름을 위한 연화주를 만들어 보고 싶어요. 그럼 사계절 술이 완성되는 것이겠죠. 사천재(材), 사천인(人), 사천주(酒), 사천의 재료로 술을 빚어 사천 사람들과 함께 즐긴다는 말이 될 수 있겠죠. 혼자 하면 기술이고, 함께하면 문화입니다. 단순히 막걸리를 제조하는 공간이 아니라, 막걸리와 문화를 잇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어요. 옛 풍류를 사천에서 되살리는 거죠.

최인태 촌장이 제철에 핀 꽃으로 빚은 두견주, 와룡국주, 송순주. 이구산과 와룡산 등 사천에서 난 재료로 만든 ‘사천 술’이다.(사진제공=사천여성회)
최인태 촌장이 제철에 핀 꽃으로 빚은 두견주, 와룡국주, 송순주. 이구산과 와룡산 등 사천에서 난 재료로 만든 ‘사천 술’이다.(사진제공=사천여성회)

새로운 도전으로 지역에 새로운 문화를 만들고 있는데 최 촌장님으로서는 인생 이모작이랄 수 있겠습니다. 끝으로 인생 이모작을 고민하는 분들에게 한 말씀 해주시지요.
=절망의 끝에서도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 나이가 많다고 해서, 또는 다른 이유로 힘들더라도 그것을 새로운 계기로 삼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인생 이모작을 시작할 때는 지금까지 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을 과감하게 해보시기를. 당신의 변화에 두 손 모읍니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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