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반려동물 문화의 확산, 그 빛과 그늘 ②

반려인·반려동물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동물 장묘시설
장묘업체는 ‘법적 기준 지킨다’지만 주민들은 ‘질색’
혐오시설로 인식돼 갈등…‘공공 동물시설’ 해답 될까?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구는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반려동물 유기나 개물림 사고, 반려동물 사체 처리 문제 등, 사회적 문제 발생 빈도 역시 증가세다. 반려동물과 관련된 시설 등을 새로 지으려 해도 주민들과의 갈등으로 진행이 어려운 상황. 다른 지역의 상황을 살펴 반려동물 문화에 대한 지역사회의 인식 개선과 주민과의 갈등 해결책을 찾아 본다. -편집자-

올해 초 축동면 가산·용수·용산마을 주민들이 용수마을회관 앞에 모여 축동면 동물 관련 시설 건립 반대 집회를 열었다.
올해 초 축동면 가산·용수·용산마을 주민들이 용수마을회관 앞에 모여 축동면 동물 관련 시설 건립 반대 집회를 열었다.

“조용한 시골에 (반려)동물 시설이 들어서는 것을 반대한다!”

“그런 시설이 필요하다면 도시에 짓지 왜 이곳으로 오느냐!”

[뉴스사천=김상엽 기자] 올해 초 축동면 가산·용수·용산마을 주민들이 외쳤던 말이다. 한 업체가 축동면 가산리에 동물화장장을 비롯한 반려동물 관련 시설을 지으려 한 데 따른 것이다. 해당 업체는 이후 동물화장장을 포함한 모든 동물 관련 시설을 짓지 않겠다고 약속한 채 건축허가 승인을 받았다.

이처럼 반려동물 화장시설 설치를 둘러싼 갈등은 전국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경기도 파주에서는 행정소송 끝에 한 장묘업체가 운영을 시작했지만, 주민들과 갈등이 계속되면서 결국 문을 닫았다. 굳이 멀리 가지 않아도 비슷한 사례는 많다. 가까운 진주시와 고성군에서도 민간 동물화장장 건립 추진에 지역주민들이 강력히 반대한 바 있다. 

농촌진흥청이 실시한 ‘반려동물에 대한 인식 및 양육 현황 조사 보고서’에는 반려동물을 잃은 반려인의 절반 가까이가 직접 땅에 묻었다고 답했다. 그러나 현행법으로 보자면 이는 불법이다. 동물보호법에 따르면, 동물의 사체는 폐기물관리법에 따라 생활폐기물로 분류해 쓰레기봉투에 담아 버리거나, 동물병원이나 동물 장묘시설에 위탁해 처리해야 한다. 이를 무시하고 임의로 땅에 묻거나 버리면 1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 수 있다.

2022년 9월 현재, 전국에는 62개의 동물 장묘시설이 등록돼 있다. 그중 8개가 경남에 있으나, 경남 서부권에는 하나도 없다. 사천시에도 없긴 마찬가지다. 이로 인해 지역민들은 반려동물이 죽으면 사체 처리를 두고 고심하기 일쑤다. 가족 같은 반려동물을 쓰레기봉투에 담아 버리기는 내키지 않는 데다 먼 장묘시설을 찾자니 멀어서 불편한 까닭이다.

반려동물 장묘시설에서는 반려동물의 유골을 봉안당에 두거나, 나무 아래 묻는 수목장을 하고 있다. 반려동물의 사진이나 생전 좋아했던 장난감이나 간식 등을 함께 두기도 한다. 사진은 김해에 있는 반려동물 장례식장의 봉안당 모습.
반려동물 장묘시설에서는 반려동물의 유골을 봉안당에 두거나, 나무 아래 묻는 수목장을 하고 있다. 반려동물의 사진이나 생전 좋아했던 장난감이나 간식 등을 함께 두기도 한다. 사진은 김해에 있는 반려동물 장례식장의 봉안당 모습.

이런 반려인들의 고민을 안고 전국의 몇몇 동물 장묘시설을 둘러봤다. 먼저 찾아간 곳은 김해시 1호 동물 장묘시설. 깔끔한 건물에 반려인들이 많이 찾는 시설이다. 지금은 평화로워 보이지만, 몇 년 전까지는 주민들과의 갈등으로 꽤 시끄러웠던 곳이다.

업체가 김해시에 건축허가 신청을 한 것은 2017년 3월이다. 이에 주민들은 ‘동물화장시설 반대추진위원회’를 만들어 거칠게 항의했다. 김해시도 허가 신청을 반려했다. 그러자 업체는 경남도에 행정심판까지 청구한 끝에 건축허가를 받아냈다. 이런 갈등을 겪은 탓인지 시설에서 만난 업체 관계자는 “법적 기준을 잘 지키려 늘 애쓴다”고 강조했다.

반려동물 장묘시설에서는 반려동물의 유골을 봉안당에 두거나, 나무 아래 묻는 수목장을 하고 있다. 반려동물의 사진이나 생전 좋아했던 장난감이나 간식 등을 함께 두기도 한다. 사진은 고성에 있는 반려동물 장례식장의 수목장 모습.
반려동물 장묘시설에서는 반려동물의 유골을 봉안당에 두거나, 나무 아래 묻는 수목장을 하고 있다. 반려동물의 사진이나 생전 좋아했던 장난감이나 간식 등을 함께 두기도 한다. 사진은 고성에 있는 반려동물 장례식장의 수목장 모습.

사천시와 가장 가까이 있는 시설은 고성군에 있다. 동물화장장과 동물장례식장을 갖춘 채 역시 민간 업체가 운영한다. 이 시설이 들어서는 과정은 앞서 소개한 것과 조금 다르다. 창고 용도로 지은 건물을 동물 화장시설로 용도 변경을 꾀했다는 점에서다. 이를 두고 심한 논란과 갈등이 일었지만, 1년여 진통 끝에 결국 허가가 이뤄졌다.

지금은 새로운 법인이 업체를 인수해 운영을 맡고 있다. 마을에서 조금 더 떨어진 곳에 새로운 시설을 짓기로 주민들과 합의하면서 논란거리도 사라졌다.

 

앞의 사례들처럼 반려동물 장묘시설은 혐오시설로 인식돼 어디든 들어서기가 어렵다. 지자체에서도 필요성엔 공감하면서도 주민반발을 무릅쓰고 시설을 허가하기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일부 지자체에선 공공시설을 만드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실행에 옮긴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중 한 사례를 전북 임실군에서 찾을 수 있었다.

민간 시설에서 생길 수 있는 갈등과 잡음을 막기위해 전북 임실군에서는 지자체가 직접 나서 ‘공공 반려동물 장례식장’을 만들었다.
민간 시설에서 생길 수 있는 갈등과 잡음을 막기위해 전북 임실군에서는 지자체가 직접 나서 ‘공공 반려동물 장례식장’을 만들었다.

임실군은 2018년에 농림축산식품부의 ‘공공 동물 장묘시설 설치 지원 사업’에 신청해 선정됐다. 그리고 지난 8월, 국내 최초이자 현재까지는 유일한 ‘공공 반려동물 장례식장’의 문을 열었다. 시설 이름은 ‘오수 펫 추모공원’이다. 여기서 ‘오수’는 오수면을 뜻하는 것으로, ‘몸에 물을 적셔 주인 옆에 난 불을 껐다’는 ‘오수 개’ 설화의 배경이 되는 곳이다.

임실군은 공공 동물 장묘시설뿐 아니라 반려동물 테마파크, 훈련장, 반려견 놀이터 등을 짓거나 설치 계획 중이다. 주민들도 반려동물에 호의적이어서 사업 추진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는 게 담당자의 설명이다. ‘오수 펫 추모공원’을 방문한 9월 17일, 거창군에서 왔다는 한 추모객은 “나라에서 지었다는 ‘공공’ 마크가 있으니까 믿고 왔다”고 말했다.

현재 임실군은 추모공원의 운영을 민간 업체에 맡긴 상태다. 수탁 업체의 최명주 팀장은 “공립시설인 만큼 사료 기부나 ‘동물 현충원’ 운영 등 여러 활동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동물 현충원에는 장애인 도우미 견, 독도지킴이 견, 군견 등을 안치한다.

 

※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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