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창섭 시인.
송창섭 시인.

[뉴스사천=송창섭 시인] 9월 어느 하루 어둑어둑해질 무렵이었습니다. 거리엔 일을 끝낸 사람들이 총총걸음을 하거나 차량을 몰고 불빛을 토하며 길을 재촉했습니다. 짙붉었다가 차츰 검게 물드는 놀을 보면서 나는 겸허히 인근의 한 산으로 들어섰습니다. 밤의 숲속은 낮의 새들 지저귀는 소리와 달리 보이지 않는 작은 곤충들과 벌레들의 세상입니다. 그들이 연주하는 거침없는 교향곡들은 쉼 없이 누리를 채웁니다. 낮에는 맛볼 수 없었던 청각의 즐거움이 가득합니다. 어둠을 만나면서 그들만의 향연을 갖습니다.  

오늘은 전혀 예상치 못한 장면과 맞닥뜨리면서 흥미롭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산의 숲길로 들어선 지 한 시간 반쯤 지났을 때였습니다. 한동안 흔적을 찾을 수 없었던 반딧불이 무리와 마주한 것입니다. 급작스럽게 나타나 사람을 놀라게 하고는 그것도 부족해 발목을 꽁꽁 묶어 버린 이 불청객 앞에서 나는 어린애처럼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처음에는 한두 마리에 불과해 그저 찰나의 행운이라 생각했습니다. 공기가 쾌적하리라는 확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길을 조금 더 들어가니 이쪽에서도 저쪽에서도 두 마리, 다섯 마리, 열 마리, 무수한 반딧불이가 마치 물안개인 듯 피어오르며 율동을 선보였습니다. 와아, 세상에 이럴 수가. 반딧불이는 그들만의 세상을 꿈꾸며 나뭇잎 혹은 풀잎 사이로 낮은 데에서 높은 곳으로 날아다니며 춤을 추었습니다. 어떤 녀석은 높은 곳에서 가까이 다가와 낯선 인간과의 경계심을 허물었습니다. 작은 몸집에서 뿜는 발광체가 빚은 노란 아름다움은 차이코프스키의 발레곡 ‘잠자는 숲속의 공주’에 맞춰 추는 황홀한 공연 그것이었습니다. 

개똥벌레라고도 부르는 반딧불이는 몸이 말랑말랑하고 연약한 딱정벌레입니다. 낮에는 습한 곳에서 숨어 지내다가 밤이면 신비로운 존재를 드러냅니다. 달팽이나 다슬기를 잡아먹으며 살아가는 반딧불이는 루시페라아제Luciferase라는 발광 효소를 이용해 발광 기질이 있는 화학에너지를 빛으로 변환시킵니다. 노란 빛은 의사소통의 수단으로써 짝짓기를 위한 구애의 표현입니다. 또한 반딧불이는 빛을 내는 독성물질이라는 뜻의 루시부파긴Lucibufagin(Lucifer반짝이다+bufo두꺼비)을 지니고 있습니다. 박쥐나 두꺼비 같은 식충동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장치로 빛을 활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노란 빛이 경고등인 셈입니다. 

반딧불이의 밝기는 99%가 빛이며 1%는 열로 빠져나가기에 살갗에 닿아도 전혀 뜨겁지 않은 냉광입니다. 손에 살며시 얹어도 델 염려가 없고 해롭지가 않습니다.  

임도의 캄캄한 숲속에서 만난 반딧불이는 그들의 삶터가 얼마나 청정한 지를 각인시켜 주었습니다. 오가는 차량이 거의 없고 인가와 멀리 떨어져 있으며 사람이 놓은 불빛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반딧불이는 칩거를 하며 인간들에게 통렬한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인간이 거쳐간 곳엔 자연의 상처와 가득한 쓰레기로 파멸뿐이라는 걸 말입니다. 반딧불이의 조용하고 나지막한 춤사위는 무지막지한 인간들의 지혜가 얼마나 어리석은 지를 일깨우고 있었습니다.

 

 

※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저작권자 © 뉴스사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