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화식물은 야생의 숲에서는 힘을 쓰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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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화식물은 야생의 숲에서는 힘을 쓰지 못한다
  • 최재길 시민기자
  • 승인 2022.09.21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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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야화(野生野話)] ②죽천~화전 냇가

식물 문화 연구가이자 산림 치유 지도사인 최재길 시민기자는 사남면 죽천 사람이다. 지리산 자락에서 오랫동안 머물다 최근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앞으로 사천의 곳곳을 걸으며 만나는 풀과 나무, 숲 따위를 이곳 ‘야생야화(野生野話)’에서 소개한다. 때로는 그의 추억이나 재미난 이야기도 만날 수 있다.    -‘야생야화(野生野話)’ 소개 글-

죽천~화전 뚝빵길에서 바라본 죽천천. 백로 한마리가 노닐고 있다.
죽천~화전 뚝빵길에서 바라본 죽천천. 백로 한마리가 노닐고 있다.

해거름 뚝방길(=둑길)을 걷는다. 어릴 적 멱감고 뛰놀던 고향의 냇가! 냇물 흐르는 소리 ‘또랑’하다. 그 위로 풀벌레 소리 들려온다. 달뿌리풀 무성한 냇물엔 물잠자리들이 검은 날개를 나풀거린다. 백로 한 마리가 쏜살같은 냇물에 발을 담그고 긴 목을 뽑아 식사에 여념이 없다. 한참을 지켜보고 있으니 불안감에 슬쩍 자리를 뜬다. 내가 사회적 거리 안에 있었던 거지.

강아지풀
강아지풀

어릴 적 멱감던 곳을 다시 찾다

고개 들어 마주 보는 벼랑은 진초록의 장막을 치고 있다. 뭉텅뭉텅 초록 동선을 부풀린 숲은 몸과 마음을 녹여내는 마법을 지녔다. 먼 옛날 사바나 초원의 기억이 우리네 유전자 속에서 꿈틀대기 때문이리라. 왜가리 한 마리 숲의 품에 깃들어 잠자리를 보고 있다. 귀소본능! 저녁 멧비둘기는 부지런한 날갯짓으로 냇물을 거슬러 올라간다. 생명이 동화하는 해 질 녘 자연의 한가운데 섰다. 따라오던 길 뒤론 황금빛 노을. 뒤돌아보니 강아지풀 마른 열매들이 노을을 머금고 있다. 풀숲에 층층이 피어오르는 익모초는 붉은 입술을 더욱 붉게 빛낸다. 

익모초
익모초

뚝방길 옆 농장에는 호두나무와 꾸지뽕 열매가 실하게 달렸다. 호두 열매는 우리 뇌의 주름을 닮아있다. 호두는 골을 튼튼하게 한다는 말이 있다. 서로 닮은 것은 같은 기능이나 역할을 한다지. 호두는 견과류 중에서도 특히 두꺼운 껍질을 갖고 있다. 영양분이 많은 종자를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다. 이 두꺼운 껍질 역시 설치류와의 경쟁에서 공진화했다. 

호두나무
호두나무

닭이 공룡과 한 집안이라고?

호두나무 아래 풀어 키우는 닭과 오리들은 한가로운 휴식에 들었다. 수탉 한 마리 일어나 자태를 과시하듯 늠름하게 걷는다. 닭의 조상은 4천 년 전 동남아 정글에 살던 야생조류라고 한다. 이 야생조류가 날지 못한다니 닭도 당연히 날지 못하는 것이겠지. 세상에는 날지 못하는 새가 40여 종이나 된단다. 날지 못하는 이유는 천적이 없어 기능이 퇴화하거나 타조처럼 무서운 발톱으로 살아낼 수 있기 때문이란다. 

수탉
수탉

놀라운 사실은 새가 공룡하고 한 집안이라는 것. 걸어 다니던 공룡이 진화해서 하늘을 나는 새가 되었다는 거지. 새가 진화하면서 작동이 정지된 유전자 중에는 이빨을 만드는 유전자가 있으니. 생물학자 매슈 해리스가 닭에게서 이 유전자를 밝혀냈다. 우리가 즐겨 먹는 치킨 속에 공룡이 있다니! 영화 <쥬라기공원>의 무시무시한 티라노사우루스 이빨을 상상해 본다.
 

산딸나무
산딸나무

돌아오는 길에 조경용으로 심은 듯한 산딸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열매가 붉은 축구공 같다. 길바닥에는 붉은토끼풀이 피어 고개를 치켜들고 있다. 산딸나무는 우리 산하에서 살아온 토종이지만, 길가에서 볼 수 있는 조경용은 대부분 개량종이다. 하얀 꽃이 흐드러지니 붉은 열매도 많이 달린다. 탐스러운 딸기를 닮은 이 열매는 새들이 좋아한다. 먹어보면 단맛이 좀 나지만 그리 맛나지는 않다.

붉은토끼풀
붉은토끼풀

물량 공세로 뚫느냐 텃세로 지키느냐

붉은토끼풀은 유럽에서 사료로 재배하던 것이 건너왔다고 한다. 먼 이국땅에 뿌리내리는 데 성공한 귀화식물이다. 서양민들레처럼 봄부터 가을까지 끈질기게 꽃핀다. 낯선 곳에 정착하려면 텃세를 이겨내야 한다. 그 방법의 하나는 물량 공세다. 끊임없이 꽃피우고 많은 열매를 맺는 일. 그렇지만 허물지 못하는 벽도 있으니! 바로 건강한 야생의 숲이다. 귀화식물은 야생의 숲에서는 힘을 쓰지 못한다. 생명이 스스로 지켜내려면 야성의 힘이 필요하겠다. 야성을 잃으면 가축처럼 강력한 힘에 의존하든지 구석으로 밀려나야 한다. 

부추
부추

논에는 벼가 고개를 숙이고 마을 어귀 대추나무는 볼살을 익히고 있다. 길가에 함부로 내팽개쳐진 부추 한 무더기 억척스럽게 살아나 하얀 꽃을 피웠다. 생명의 본성은 얼마나 강력한가. 야생은 또 얼마나 위대한가?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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