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명절 앞두고 무단 침입한 견공

7개월 넘게 암 투병 중인 저희 아버님. 최근 집으로 무단 침입한 '복돌이'를 안고 있는 모습.
저희 아버님은 식도암 4기에 백혈병을 앓고 있는 중증환자입니다. 지난해 7월 식도 일부를 드러내는 대수술 끝에 지금 살고 있는 경남 진주에서 일산 국립암센터까지 왕복하며 항암 치료를 받고 계시죠.

고희를 훌쩍 넘긴 연세에도 불구하고 병마를 이겨내겠다는 의지가 강하시죠. 항암 치료 부작용 때문에 걷는 것조차 힘겨워 하실 때도 있지만, 빨리 건강을 되찾고자 하는 마음에 뒷산 오르기를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홀로 산을 오르기가 적적하셨는지, 동행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견공 한 마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씀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병간호를 홀로 하고 계신 어머님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병간호도 힘든데 견공까지 챙기기는 어렵다는 게 그 이유였습니다.

그런데 지난 2월12일, 저희 회사 대표와 이사분들이 아버님을 병 문환하기 위해 잠시 아버님 댁을 들렀는데, 난데없이 귀여운 견공 한 마리가 방으로 뛰어 들어왔습니다. 다른 분들이야 집에서 키우는 견공쯤으로 생각했겠지만, 저는 처음 보는 견공에 화들짝 놀랐죠.

아버님은 이 녀석이 복을 가져다 준다면 '복돌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셨습니다.
큰 눈에 온몸이 순백색인 귀여운 견공이었습니다. 몰티즈 종인 듯 했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들인데도 꼬리를 심하게 흔들며 애교를 부리더군요. 성격이 활달하고 사람들을 무척 잘 따랐습니다. 특히 낯선 환경인데도 대소변을 잘 가렸습니다. 신기하더군요.

“이쪽 발 줘봐. 저쪽 발도”
“앉자!”
“먹으면 안 돼!”

처음 보는 사람이 낯설기도 할 법 한데도 이 녀석은 거리낌 없어 척척 명령에 따랐습니다.

어머님에게 어떻게 된 영문인지 여쭙자, 자세한 내막을 말씀해 주시더군요. 

4일 전쯤 이웃집으로 가는 길에 갑자기 견공 한 마리가 졸졸 따라 왔는데, 하루 종일 어머님만 뒤쫓아 왔다고 했습니다. 다시 집으로 왔는데도 다른 곳으로 가지도 않고 집 앞마당을 제 집처럼 지키고 있었다고 하더군요.

저녁 무렵쯤 어머님은 그 견공이 다른 곳으로 가지 않았을까 생각하고 부엌문을 열었는데, 갑자기 그 녀석이 집안으로 달려 들어와 깜짝 놀랐다고 했습니다. 할 수 없이 어머님은 더 이상 그 녀석을 내쫓지 않고 집안으로 들어오는 걸 허락했습니다.

이 개가 안 간다 아이가. 우짜것노”

혹시나 주인이 애타게 찾고 있지 않을까 싶어 동네 사람들한테 수소문을 해봤는데, 동네에서 잃어버린 견공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부모님은 이웃들에게 주인이 나타나면 우리가 데리고 있으니 이쪽으로 보내라고 일러 두셨죠.

낯선 환경인데도 대소변을 잘 가리고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거리김 없이 애교를 부리는 등 귀여운 재롱둥이입니다.
이 녀석의 재롱에 아버님은 벌써 마음을 뺐긴 듯 했습니다. 불과 며칠 밖에 안됐지만 정이 많이 든 듯 했습니다. 어머님도 내심 싫어하는 눈치는 아니었습니다.

“일루 와 바라. 이 놈 참 말 잘 듣재. 이놈이 복덩이야 복덩이...”

그렇게 말씀하시며 흐뭇한 웃음을 짓던 아버님은 이 녀석의 이름을 ‘복돌이’로 지었습니다. 설 명절을 앞두고 제 발로 들어온 그 녀석이 분명 복을 안겨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신 듯 했습니다. 옛말에 집으로 들어온 짐승은 함부로 죽이거나 내 치지 않는다고 했는데, 부모님이 이 녀석을 받아들인 데는 그런 부분도 영향을 준 듯 했습니다.

하지만 걱정이 앞섭니다. 이 녀석이 주인에게 버림을 받은 건지, 아니면 주인이 애타게 찾고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애지중지하게 키워준 주인을 찾아가지 않는걸 보면 버림 받은 것 처럼 보이기도 하고요.

긴 암 투병 생활에 지친 아버님은 이 녀석의 재롱에 조금이나마 활력소를 찾은 듯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주인이 찾아와서 이 녀석을 데리고 가기라도 한다면 정이 깊게 든 아버님의 실망이 크지 않을까 하는 기우가 앞서는데요.

주인이 찾으러 온다면 당연히 그 품으로 보내야 하겠죠. 걱정이 앞서긴 하지만 이 녀석이 재롱을 떠는 모습에 부모님이나 저는 마냥 즐겁기만 합니다. 아버님은 벌써 복을 받은 것이나 다름없다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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