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는 사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노인경 글·그림 / 문학동네 / 2022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노인경 글·그림 / 문학동네 / 2022

[뉴스사천=김혜진 삼천포도서관 사서] <곰씨의 의자>로 관계의 어려움을 살피고 <고슴도치 엑스>로 무한한 가능성을 응원했던 노인경 작가가 이번엔 옛이야기로 판을 펼친다. 그것도 무려 444명의 왕과 함께다.

먼 옛날 어느 나라에 왕들이 자꾸만 죽자 왕이 되면 목숨을 잃는다는 흉흉한 소문이 퍼진다. 그래도 사람들은 왕위에 오르고 싶어 했고 그중 한 사람이 444대 왕이 된다. 날아갈 듯 기뻤던 왕은 이튿날 아침, 당나귀처럼 커진 귀를 보고 깜짝 놀란다. 급히 커다란 왕관을 주문해 귀를 감췄지만, 너무 무거운 탓에 온몸이 아프다. 끙끙 앓던 왕은 문득 그간 왕들은 어떻게 살았는지 궁금해져 이전의 일기를 펼친다.

일기에는 즉위하자마자 죄다 귀가 커져 버린 왕들과 그걸 가리기 위해 썼던 왕관과의 사투가 담겨 있었다. 허약했던 126대 왕은 무게를 못 버텨 허리가 휘어서 죽고, 늠름했던 21대 왕은 부끄러워 수치심에 죽고, 학구파 367대 왕은 원인을 찾지 못해 기가 막혀 죽고, 성격이 불같았던 440대 왕은 자신의 모습을 보자마자 심장마비로 죽었다는.

선대의 기록을 읽으며 깊은 생각에 잠겼던 444대 왕은 “에잇, 이깟 귀가 뭐라고” 마침내 왕관을 벗어 버린다. 그 모습에 대신들이 웃음을 참지 못하자 왕도 절로 웃음보가 터진다. 한바탕 웃고 나니 마음도 한결 가벼워지고 아픈 곳도 감쪽같이 사라진다. 무엇보다 백성들의 말이 잘 들리게 된 왕은 귀가 큰 데는 다 이유가 있었음을 깨닫는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오던 오래된 구전은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 선정에 빛나는 작가의 디테일과 만나 감각적인 그림책으로 재탄생한다. 단순한 듯 보이지만 적절히 호기심을 자극하는 패턴과 색감, 펼침을 고려한 사철누드 제본, 무엇보다도 압권은 반복이 익숙해질 때 즈음 튀어나오는 팝업이다.  
 

누구나 약점이 있다. 그런데 내게 부끄러운 점이 막상 다른 이에겐 별것 아니거나 시간이 지나고 돌아보면 대수롭잖은 일이 되기도 한다. 필요한 건, 인정하고 스스로 다독일 수 있는 마음이다. 고민으로 끙끙 앓는 건 이제 그만! 용기의 씨앗을 품고 대나무 숲에 가서 소리 한번 질러보자.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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