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N'과 함께] 이달의 인물 : 조영란 도시재생 코디네이터

조영란 도시재생 코디네이터가 대방마을 ‘굴항 미니 정원’을 소개하고 있다.
조영란 도시재생 코디네이터가 대방마을 ‘굴항 미니 정원’을 소개하고 있다.

[뉴스사천=하병주 기자] 서울과 수도권으로 인구 쏠림이 심해지면서 지방에서 느끼는 위기감은 크다. 오죽하면 ‘지방 소멸’이란 섬뜩한 말까지 등장했을까. 2013년 이후로 인구가 꾸준히 줄어드는 사천시도 소멸을 걱정해야 할 처지인 건 매한가지. 특히 젊은이의 급격한 감소가 걱정을 더한다. 이런 현실이 20대 여성의 눈에는 어떻게 보일지 궁금하다. 사천시 도시재생지원센터에서 코디네이터로 일하는 조영란(1997년생) 씨를 만나는 이유다.

사천에 활력을 불어넣는 열정
도시재생. 인구의 감소, 산업구조의 변화, 도시의 무분별한 확장 등으로 쇠퇴하는 도시에 새로운 기능의 도입, 지역 자원의 활용을 통한 역량 강화 등으로 활력을 불어넣는 일이다. 낡은 건물을 부수고 다시 짓기보다 고쳐서 재활용한다는 점에서 도시재개발과 구분된다.

낡아 힘이 빠진 도시에 다시 생기를 불어넣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이에 정부는 도시재생 뉴딜사업이란 이름으로 지원사업을 펼쳐 왔다. 지원사업비는 마중물 같은 역할을 하는 셈이다. 사천시에선 동지역 중에서도 삼천포용궁수산시장과 그 주변 지역, 대방진 굴항 주변 지역을 중심으로 도시재생사업이 이뤄지고 있다.

“도시재생의 핵심은 주민들의 참여에 있어요. 그러다 보니 주민 교육이 많은 편이죠. 저도 도시재생이 뭘까 궁금해서 도시재생대학에 참여했는데, 수강 중에 직원을 뽑는다는 소식을 알게 돼 도전했어요. 합격 소식도 현장 견학 중에 들었죠. 어느덧 3년이 훌쩍 지났네요. 주민과 행정 사이에서 소통이 원활하도록 돕는다는 마음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조영란 씨가 참여한 도시재생사업 중 대방진 굴항 미니정원
조영란 씨가 참여한 도시재생사업 중 대방진 굴항 미니정원

조 씨는 경남도립거창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공부했다. 대학에서 배운 걸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어 기쁘단다. 도시재생사업을 더 잘하기 위한 자기 담금질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경상남도가 진행하는 도시재생대학 심화과정에 참여해 다른 지역 활동가들과 정보를 나누는가 하면, 사이버대학인 서울디지털대학교에서 디자인학을 다시 공부했다. 디자인학과를 졸업하면 문화예술교육사 자격을 자동으로 얻게 돼, 도시재생사업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되리라 기대하고 있다.

“뭔가 일을 도모하려 해도 주민들이 어려워하면 잘 안 되더라고요. 과정이 재밌어야 주민들도 끝까지 참여하셔요. 그래서 가능하면 문화와 예술의 영역이 복합적으로 결합하는 교육이나 사업을 하려고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저부터 더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어요. 8월에 졸업인데, 돌이켜보니 그만큼 더 성장한 것 같아 뿌듯합니다.”

애향심 가득한 토박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조영란 코디네이터는 유난히 가족과 자신이 나고 자란 고향마을에 진한 애정을 보였다. 그는 아버지 조백주, 어머니 박미경 씨 사이에 2녀 1남 중 맏이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다녔던 용현초-용남중-용남고를 똑같이 다니며 공부했음을 자랑스러워했다.

“제가 태어나 자라고, 지금도 사는 곳이 용현면 신송마을이에요. 다른 곳으로 떠나 보지 않아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우리 마을이 너무 좋아요. 여기서 개구리 잡고, 고무줄놀이 하며 자랐죠. 동생 하연이, 성환이, 그리고 엄마, 아빠와 쌓은 추억이 너무 많아요. 마을에 작은 축제가 있을 때 로고와 현수막을 디자인하며 함께했던 게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조 씨는 여름 휴가를 아직 쓰지 않고 있었다. 언젠가 군대 간 동생이 휴가를 나오면 함께 가족여행을 가기 위해서란다. 20대 청춘이라면 친구나 연인과 휴가 계획 세우는 게 보통일진대, 동생의 휴가를 기다리고 있음은 분명 예사롭지 않다. 그만큼 가족애가 두터운가 보다.

“엄마, 아빠의 영향이겠죠? 아빠를 존경하고, 엄마를 닮고 싶어요. 그리고 공간이 인간을 지배한다는 말도 있잖아요. 저는 우리 집이 참 좋아요. 특히 텃밭은 저만의 ‘리틀 포레스트’예요. 휴식 공간이면서 취미 공간이죠. 또 조금만 나가면 무지개 해안도로 너머로 갯벌이 펼쳐져 있는데, 제가 꼽는 사천의 으뜸 명소죠. 이러니 우리 집, 우리 마을을 어찌 안 좋아할 수 있겠어요? (웃음)”

 

고향에서 즐기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이야기만으로도 머릿속에 그림이 펼쳐지는 듯하다. 그러나 조 씨에게도 답답한 마음은 있었다. 친구들이 대부분 큰 도시로 떠나버려서다. 그는 그 이유가 지역의 더딘 발전에 있다고 봤다. 거점이라 할 큰 도심이 없음과 문화생활로서 즐길 거리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도 문제로 짚었다.

“학생 때부터 다들 사천을 벗어나는 꿈을 꿨던 것 같아요. 서울, 부산, 대구, 창원. ‘하다못해 진주라도 가자’는 게 친구들 마음이었어요. 저도 그 마음을 이해하죠. 한때는 저도 ‘떠날까?’ 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도시재생 일을 만나면서 마음을 바꿨어요. 누군가는 남아서 변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도 들고요. 큰 도시가 주는 괜한 긴장감과 불안감이 싫기도 해요.”

그는 큰 도시로 나가지 않는 대신 ‘있는 곳에서 즐기자’는 마음으로 산다고 했다. 그래서 갖게 된 취미가 ‘논멍’과 ‘바다멍’이다. 논과 바다를 멍하니 바라보면서 몸과 마음에 여유를 준다는 얘기다.

“도시에 사는 사람이라면 영상으로만 만날 일을 저는 매일 같이, 그것도 현장에서 바로 체험할 수 있죠. 요즘은 벼가 한창 푸를 때라 ‘논멍’하기 정말 좋거든요. 최근에 새로 생긴 취미가 있는데, ‘빵 투어’라고 들어보셨어요? 제가 워낙 빵을 좋아하다 보니 매주 화요일마다 새로운 빵집이나 카페를 가보는 거예요. 사천에선 웬만한 곳은 다 가봤을 겁니다.”

이 밖에도 ‘네일 아트’를 하는 친구를 위해선 손을 내어주고, 헤어 디자이너를 꿈꾸는 친구를 위해선 머리를 빌려주며 ‘있는 곳에서 즐기자’는 마음을 실천하는 그다. 끝으로 결혼 계획을 물으니 ‘똑부러진’ 답이 돌아왔다.

“사실은 제가 욕심이 좀 많아요. 그래서 서른셋 이전엔 결혼하지 않으려고요. 그 사이에 해외여행을 비롯해 하고 싶은 것, 배우고 싶은 것 다 해볼 생각이에요. 결혼해 아이를 낳는다면 농촌에 살면서 키우고 싶어요. 제가 했던 것과 비슷한 경험을 아이에게 만들어 주고 싶어서랄까. 제 경험에 학교도 작아서 더 좋았거든요. 한 학년에 15명뿐이었는데, 선생님의 관심과 사랑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죠.”

도시재생으로 시작한 이야기는 결혼을 주제로 끝났다. 그 사이엔 사천시가 가진 고민과 숙제가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떠나는 청년을 어찌 붙잡을 것인가의 문제도 마찬가지. 그 해법이 쉬울 리 없지만,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일부터 시작해 봄은 어떨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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