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씨식물의 공생 전략…‘내가 가진 것을 나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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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씨식물의 공생 전략…‘내가 가진 것을 나누다’
  • 최재길 시민기자
  • 승인 2022.11.09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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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야화(野生野話)] ⑨ 오인숲~성황당산

[뉴스사천=최재길 시민기자] 정동면 예수(禮樹)리! 나무에 예를 올린다니, 이름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이 마을에는 오인숲이라는 별난 사연을 지닌 숲이 있다. 일제강점기에 사천과 사천 이웃 다섯 고을 수령들이 이 숲에 모여 인장을 나무에 걸어 둔 채 나랏일을 걱정했다는 사연과, 오 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살던 집성촌이 예수마을이고 이 마을의 숲이 오인숲으로 불렸다는 두 가지 사연이다.

둘 중 어떤 사연이 사실에 가까운지는 알 수 없으나, 숲의 규모는 꽤 소박한 편이다. 그만큼 조그맣다는 얘기다. 하지만 그 옛날에 고읍성이 있었던 곳이라 그런지 숲의 일원인 나무들의 면면이 옹골차다. 가장 눈길을 끄는 터줏대감은 팽나무다. 그중에서도 곧게 선 팽나무가 가장 인상적이다. 나무껍질은 팽나무가 아닌 듯 독특하다.

청개구리.
청개구리.

이 거대한 나무의 거친 껍질에 청개구리 한 마리 붙어있다. 이 팽나무는 오랜 세월의 흔적을 끌어안고 마을과 성황당을 바라보며 우뚝 솟아있다. 곧고 탄탄한 줄기 위에 올라선 높은 가지들은 하늘을 이고 있다. 노익장의 선한 품위마저 보인다. 그래서 다소곳한 예를 차리게 된다.

예수리에서 사천강 건너는 단감으로 유명한 고읍마을이다. 조선 초까지 사천을 다스리는 관청이 있던 곳이다. 세종 때 사천읍성으로 무대를 옮기면서 한적한 변방이 되었다. 옛 동헌 자리는 단감밭으로 변했다. 하지만 600년이 넘는 이팝나무 한 그루 살아남아 그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한때 마을의 중심을 잡아주던 당산나무였다. 하늘과 사람을 이어주는 연결고리! 이제는 쇠약해져 껍질이 절반 이상 죽어있다. 당산제를 지낸 지도 한참이나 되었다.

고읍에 해마다 감을 사러 가는 단골농장이 있다. 그 할머니께서 어릴 적에 이 나무에서 그네를 타고 놀았다고 한다. 당산나무에서 그네를 탔다니?! 성과 속이 한 공간에 있는 우리의 풍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마을숲은 특별한 날 예를 올리고 정성을 다하는 성스러운 공간이지만 보통 때는 휴식과 놀이의 장소가 된다. 이것이 바로 보자기처럼 여유롭고 헐렁헐렁한 우리의 오랜 사고방식이다.

성황당 산성에서 서쪽을 바라본 산자락
성황당 산성에서 서쪽을 바라본 산자락

오인숲을 한 바퀴 돌아, 가파른 산길을 따라 고읍성에 올랐다. 성곽에 서니 사천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저 멀리 겹겹 산자락들이 농담을 그리며 아련하게 드러누웠다. 발 아래로 커다란 굴피나무들이 겉씨 열매를 가득가득 매달고 있다. 오래전에 지구 생태계를 살찌웠던 겉씨식물은 씨를 감싸는 과육이나 껍질이 없다. 그래서 벌거벗은 나자식물(裸子植物)이라 한다. 솔방울처럼 비늘 껍질이 열리면 그 사이에서 씨앗이 삐져나온다.

굴피나무.
굴피나무.
개서어나무.
개서어나무.

이러한 결실 방식은 자연의 생명들과 나눌 것이 많지 않다. 뒤에 나타난 속씨식물이 새로운 세상을 열게 되었으니. 과육이나 영양분이 많은 열매를 맺어 다양한 생물 종을 먹여 살렸다. 생태계를 살찌우는 이 공진화 덕분에 인류도 탄생하게 되었다. 함께 잘 살려면 내가 가진 것이 충분해야 하고 그것을 또 잘 나누어야 하겠지. 속씨식물은 이것을 몸소 보여주었다. 

고읍성으로도 불리는 성황당 산성. 이곳에선 해마다 사천시민의 평안과 사천시의 발전을 비는 성황당 산성제를 지낸다.
고읍성으로도 불리는 성황당 산성. 이곳에선 해마다 사천시민의 평안과 사천시의 발전을 비는 성황당 산성제를 지낸다.
성황당 오르는 길.
성황당 오르는 길.

고읍성(=성황당 산성) 정상에는 단군 할아버지께 제사를 올리는 성황당이 있다. 그래서 성황당산(城隍堂山·209m)이라 한다. 이곳은 사천의 지방관청에 중요한 장소였다. 성황당은 산신신앙과 깊은 연결고리를 갖고 있다. 삼국유사에 단군 할아버지께서 산신이 되었다고 한다.

산의 정기를 이어온 우리의 산신신앙이 단군신화에서 비롯되었구나. 환웅이 내려온 신단수의 정기가 사천의 와룡산에서 이구산을 타고 성황당으로 이어지는 것이지. 이 성황당에서 산천제를 올렸다는 조선 태조 때의 기록이 남아있다. 산천제는 국가나 고을의 무사태평을 기원하고, 당산제는 민간이나 마을의 풍요와 안녕을 기원한다. 우러러 하늘에 예를 올리는 기원은 같다.

식물 문화 연구가이자 산림 치유 지도사인 최재길 시민기자는 사남면 죽천 사람이다. 지리산 자락에서 오랫동안 머물다 최근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앞으로 사천의 곳곳을 걸으며 만나는 풀과 나무, 숲 따위를 이곳 ‘야생야화(野生野話)’에서 소개한다. 때로는 그의 추억이나 재미난 이야기도 만날 수 있다.    -‘야생야화(野生野話)’ 소개 글-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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