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야화(野生野話)] ⑫ 노산공원

삼천포 사람들의 추억과 애환이 서린 노산공원과 삼천포 앞바다.
삼천포 사람들의 추억과 애환이 서린 노산공원과 삼천포 앞바다.

[뉴스사천=최재길 시민기자] 삼천포의 명소 노산공원을 찾았다. ‘노산’은 예전에 바닷물이 들면 섬이 되었다고 한다. 이곳에 호연재라는 서당이 있었는데 학동들이 건너다닐 수 있도록 징검다리를 놓았다. 그래서 노다리가 있는 산, 노산(魯山)으로 부르게 되었다는 설이 있다. 1956년 도시계획에 따라 여기 공원이 들어서게 된 것이다. 그때부터 노산공원이 되었다.

공원 곳곳이 삼천포 사람들에겐 찐한 추억과 애환이 서린 곳이다. 바위로 우뚝 뭉친 노산은 바다를 향해 긴 혀를 내밀고 있다, 어제도 오늘도 만인의 군상을 지켜보면서. 혀끝에는 정자가 하나 있어, 파도가 시간을 타는 해안 쉼터다. 갯바람이 너무나 시원해서 어머니와 잠깐의 무더위를 식힌 적이 있다.

삼천포 앞바다
삼천포 앞바다

정자 아래로 내려와 따스한 햇볕이 내리쬐는 벤치에 앉았다. 좁쌀 같은 파도가 일렁이며 은빛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일상을 낚아 올리는 고깃배들은 쉴 새 없이 흰 파도를 가른다. 공원 스피커에선 ‘삼천포 아가씨’ 노래가 흘러나온다. 시대를 공유하지 못하면 들리지 않는 노래다. 낚시하는 사람들, 나들이 나온 가족, 도심의 분주한 소음들, 온갖 군상들이 한순간에 얽히면서 물거품처럼 흩어져 간다.

꽃향유
꽃향유
동백(왼쪽)과 애기동백
동백(왼쪽)과 애기동백

북녘 산책로 가에는 꽃향유가 무리 지어 피어있다. 연보라 꽃송이가 눈길을 아래로 아래로 끌어당기며 눈높이를 낮추라 한다. 잘 가꾸어진 동백 숲에 붉디붉은 꽃이 피어났다. 겨울을 맞는 이 계절에 동백꽃이라니? 우리 토종 동백이 아니라 애기동백이다. 일본에서 들어온 ‘사상까’라는 품종이다. 다른 나무들이 긴 휴식에 드는 늦가을부터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꽃이 귀한 철에 화려한 꽃을 피우니 관상용으로 인기가 높다. 벌 한 마리 찾아와 밥상 차린 꽃술에 앉는다.

돈나무열매
돈나무열매

둥그런 풍채를 이룬 돈나무엔 열매가 벌어져 붉은 씨가 드러났다. 동글동글 상록의 이파리와 붉은 씨가 환상적인 앙상블을 이룬다. 이 나무는 심어서 가꾼 것이지만 원래 남해안 산기슭이 고향이다. 돈나무의 사연은 심심풀이로 살펴볼 만하다. 돈나무의 제주도 방언 ‘똥낭’은 열매에서 똥 냄새가 나기 때문이란다. 꿈에 똥을 보면 돈이 들어올 징조라 하고, 집에 돈나무를 키우면 재물이 들어온다고 하니, 기복(祈福)의 심리가 묘하게 닮았다. 돈은 스스로 감당하지 못하면 똥 냄새가 나니 이 또한 닮았다.

맷비둘기
맷비둘기
농익은 감을 맛보는 직박구리
농익은 감을 맛보는 직박구리

아침 기온이 뚝 떨어져 손이 시리다. 저 건너 와룡산 민재봉은 삭풍의 길목처럼 비스듬히 누웠다. 오래 묵은 팽나무 가지, 아침 햇살에 고운 자태를 드러낸다. 노란 물결 사이로 멧비둘기 한 마리 둥근 공처럼 앉아있다. 시린 아침의 몸짓이다. 잎을 떨군 늙은 감나무엔 감 몇 개 달려있다. 얼마나 아름다운 나눔인가? 날갯죽지 흰 깃이 정겨운 까치 한 마리 슬쩍 자리를 뜬다. 그 빈자리에 직박구리들이 냉큼 밥 먹으러 왔다. 탐스럽게 농익은 감은 이 한철 맛볼 수 있는 만찬이다. 호시절은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가느니! 새옹지마 같은 인생에 일희일비는 무엇이냐?

박재삼 문학관
박재삼 문학관

삼천포가 낳은 시인 박재삼 문학관 뜰에 섰다. 우리 산하의 순수 서정을 노래한 시인! 빛바랜 잉크 냄새, 시의 여백에서 묻어나니 감성이 돋는다. 시인은 노산에 올라 올망졸망 삼천포 앞바다의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을 보았을까? 바다는 말이 없다. 슬픔과 허무의 바다에서 시를 건져 올리는 일, 그것은 희망을 일깨우는 고뇌의 일탈일 거야! 돌아오는 길에 이태석 신부의 삶을 다룬 영화 ‘부활’의 감독 라디오 강연을 듣는다. 부활에서 말하고 싶은 키워드는 공감 능력이란다. 좀향유, 애기동백, 감나무, 그리고 박재삼! 노산 앞바다를 바라보고 앉은 나를 되돌아본다.

식물 문화 연구가이자 산림 치유 지도사인 최재길 시민기자는 사남면 죽천 사람이다. 지리산 자락에서 오랫동안 머물다 최근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앞으로 사천의 곳곳을 걸으며 만나는 풀과 나무, 숲 따위를 이곳 ‘야생야화(野生野話)’에서 소개한다. 때로는 그의 추억이나 재미난 이야기도 만날 수 있다.    -‘야생야화(野生野話)’ 소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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