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야화(野生野話)] ⑬ 서포 자혜리 바닷가

사천시 서포면 자혜리 바닷가에서 동쪽을 바라본 모습. 물새 나는 바다 너머로 남양동과 각산이 보인다.
사천시 서포면 자혜리 바닷가에서 동쪽을 바라본 모습. 물새 나는 바다 너머로 남양동과 각산이 보인다.

[뉴스사천=최재길 시민기자] 따스한 온기에 마음이 동하니 길을 나선다. 사천대교를 건너 서포 자혜리에 발걸음이 닿았다. 목적지를 정해두지 않고 마음 내키면 무작정 떠날 때가 많다. 그래도 막상 나서보면 볼 건 많다. 변화무쌍한 자연이 맞아주기 때문이다. 때로 운이 좋으면 삽시간의 황홀을 맞는다. 그러니 마음 비우고 야생의 자연 앞에 자주 서게 되는 거지.

마을을 지나치는데 멀구슬나무 열매가 노란빛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긴 잎자루는 스치기만 해도 가볍게 툭 떨어지는 떨켜가 생겨났다. 노란 잎자루는 잎의 영양분을 나무줄기로 옮기는 통로가 되었다. 잎이 그랬듯 잎자루도 제 역할을 다하고 나면 스스럼없이 떨어져 나간다. 자연의 법칙에 미련 따위는 설 자리가 없다. 멀구슬나무는 남부지방 해안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때론 마을의 정자나무로 서 있는 정겨운 나무다.

멀구슬나무 열매
멀구슬나무 열매

산자락 길가에 늦게까지 피어나는 가을 국화, 쑥부쟁이와 산국을 맞는다. 이 꽃들은 서리가 내리도록 피어서는 배고픈 곤충들을 불러 모은다. 짧은 해 떨어지는 늦가을에 갈 길은 멀지만 마음씨가 참 따스한 꽃이다. 허투루 보아 쓸모없는 꽃이 어디 있으랴!

산국
산국
찔레나무 열매
찔레나무 열매

노란 꽃송이 다닥다닥 뭉쳐서 피어난 산국 가까이 다가선다. 알싸하고 달콤한 국화 향이 코끝에 스치니 벌도 꽃등에도 그 향기에 이끌려 왔나 보다. 먼데 푸른 하늘에 비추어보니 작은 꽃송이마저 크게 보인다. 찔레나무 누이의 선한 맘 같은 꽃이 진 자리에 이리도 붉은 결실을 맺었다. 붉은 눈망울 하늘을 보며 새들을 기다린다. 이 자연의 아름다움에 종족 번식의 깊은 뜻이 꿈틀거리고 있다니, 나그네의 마음은 그저 감탄스러울 뿐이다.

썰물 해안가를 따라 걷는다. 개산초가 군락을 이루었다. 붉은 껍질 사이로 까만 씨가 반짝반짝 윤기 있는 얼굴을 내민다. 개산초 열매는 초피나무 열매하고 비슷한데 좀 큰 편이다. 둘 다 강한 향기를 지녀 양념으로 이용하는 운향과의 나무다. 초피나무 열매껍질은 곱게 빻아서 양념으로 쓰니 추어탕에 넣어 비린내를 잡아준다. 겉절이김치 담을 때도 넣는다. 흔히 산초가루라 부르는 그것이 사실은 초피가루인 게지.

개산초 열매
개산초 열매
산부추 열매
산부추 열매

산초나무는 가을에 익는 열매로 기름을 짠다. 예전부터 산초기름은 가정의 상비약이었다. 개산초 역시 열매를 향신료로 사용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름 앞에 ‘개’ 자가 붙은 것으로 보아 그리 선호하던 향신료는 아닌 것 같다. 해안가에서 자라는 개산초는 상록이지만 주로 야산에서 자라는 초피나무나 산초나무는 잎이 떨어진다. 겉흙이 쌓인 바위틈에 산부추 한 포기, 진작 말라버린 줄기 끝에 까만 씨가 절반쯤 남아 있다. 온 힘으로 키워낸 유전적 다양성! 한여름 뜨거운 태양을 받아낸 꽃줄기는 이제 쉬어야 하겠지.

한무리의 청다리도요가 물가에서 노닐고 있는 모습
한무리의 청다리도요가 물가에서 노닐고 있는 모습

산비탈 외진 곳에 앉아 있던 철새 한 무리 인기척에 놀라 후다닥 날아오른다. 바다를 배경으로 활공하는 철새들의 움직임을 눈으로 좇아간다. 시각세포를 따라 흐르는 찰나의 그림이다. 물이 빠져나간 갯벌 얕은 물가에서 한 무리의 청다리도요가 빠르게 움직이며 식사를 한다. 잔잔한 파도가 그리는 여울 위로 빠른 템포의 군무가 펼쳐진다. 순간순간 변하는 학다리의 움직임이 물 흐르듯 부드러운 율동이다. 바닷물에 음표가 빠졌구나!

사철나무
사철나무

돌아오는 길에 마을의 어떤 집 정원수가 눈길을 끌어 차를 세우고 다가선다. 꽤 나이를 먹어 보이는 사철나무 두 그루! 얼마나 오래도록 단정하게 잘 키웠는지 보는 눈이 다 즐겁다. 그 이름처럼 남부 해안에서 자라는 사철 푸른 나무다. 열매는 아직 넉 십자의 대문이 열리지 않았다. 이 문이 열리는 날 짙은 주황색 보석이 빛나리라. 푸른 이파리와 주황색 씨는 묘한 앙상블을 이루어 겨울 조경수로서 큰 몫을 한다.

식물 문화 연구가이자 산림 치유 지도사인 최재길 시민기자는 사남면 죽천 사람이다. 지리산 자락에서 오랫동안 머물다 최근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앞으로 사천의 곳곳을 걸으며 만나는 풀과 나무, 숲 따위를 이곳 ‘야생야화(野生野話)’에서 소개한다. 때로는 그의 추억이나 재미난 이야기도 만날 수 있다.    -‘야생야화(野生野話)’ 소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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