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야화(野生野話)] 용현 종포마을

용현면 종포마을에서 사천대교 쪽을 바라본 풍경. 작은 섬 ‘법도’의 성긴 숲이 새들에게 쉬어 가라고 속삭이는 듯하다.
용현면 종포마을에서 사천대교 쪽을 바라본 풍경. 작은 섬 ‘법도’의 성긴 숲이 새들에게 쉬어 가라고 속삭이는 듯하다.

[뉴스사천=최재길 시민기자] 용현면 종포마을 해안도로는 즐겨 다니는 길이다. 오밀조밀 남쪽 바다 풍경이 좋은 곳! 해안 끄트머리에 서서 바다를 본다. 사천대교 쪽으로 썰물과 함께 갯벌이 드러나고 있다. 코앞에 눈길을 사로잡는 점 같은 섬, 이름이 ‘법도’란다. 가만히 바라보니 옆얼굴을 닮았는데, 고독해 보인다.

머리엔 성긴 겨울나무가 숲을 이고 있다. 여기 새들이 와서 쉬어가기도 하고 파도에 부딪힌 물결이 속삭이기도 한다. 손바닥만 한 땅, 몇 줌 흙에 뿌리박고 살아가는 나무들, 고독한 섬 안에서 생명의 꿈틀거림을 본다. 고독한 얼굴의 위로를 듣는다. “힘든 순간에도 내 속에 꿈틀거리는 생명의 힘을 들여다보라.” “나도 세상에 해야 할 마땅한 역할이 있다.”

풍만한 바다를 껴안고 천천히 얕은 언덕길을 따라 걷는다. 풀숲 언저리에 이런저런 열매들이 보인다. 밋밋한 겨울 풀숲에서 열매를 찾아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이 속에 소소한 행복이 있다.

인동덩굴열매
인동덩굴열매
노박덩굴열매
노박덩굴열매

숲 아래 인동덩굴의 파란 이파리가 남아 있다. 위로 솟은 까만 열매가 더욱 돋보인다. 인동덩굴은 추운 지방에서는 잎을 모두 떨군 채 겨울을 나지만 남부지방에서는 잎을 매달고 겨울을 나기도 한다. 남은 이파리에서 온기를 느낀다. 나무를 타고 높이 오른 노박덩굴은 속이 붉은 열매를 알알이 토해 놓았다. 고개를 드니 쪽빛 하늘이 발그레 웃는다.

참느릅나무열매
참느릅나무열매

참느릅나무 열매는 이미 바람을 타고 날아갈 준비를 마쳤다. 둥그런 씨앗 가에 실핏줄 날개를 달았구나. 바람을 타고 날아가는 여행 장비는 식물마다 그 모양과 형태가 다르다. 다만 효율에 차이가 있을 뿐 기능은 서로 비슷하다. 존재를 위한 개성을 부여하는 힘, 대를 잇는 유전자의 목적은 무엇이란 말인가?

멀구슬나무열매
멀구슬나무열매

멀구슬나무는 해안가 주변에서 흔하게 보인다. 잎을 모두 떨군 나무에 온통 누렇게 매달린 열매 사이로 멧비둘기 여러 마리가 앉았다가 후다닥 날아간다. 새들은 붉은 열매를 좋아한다는데, 멀구슬나무 열매는 어찌 누런색을 하고 있을까?

멀구슬나무는 독립적으로 훤히 드러난 곳에 자리 잡고 무수히 많은 열매를 맺는다. 굳이 색깔로 드러내려 애쓰지 않아도 새들의 눈에 띄기 마련이지. 직박구리가 찾아와 열매를 따 먹는다. 자기만의 뚜렷한 개성으로 새들을 유혹하는 이 자신감이란?! 매사에 꼭 대로(大路)를 가야 할 이유는 없는 것 같다. 우리는 이미 그런 시대에 살고 있다.

도깨비바늘
도깨비바늘

나무 열매에 눈이 팔려 쏘다니는 동안 바짓가랑이에 도깨비바늘이 수도 없이 따라왔다. 누군가 지나가기를 손꼽아 기다려 무임승차 하는 도둑놈의 열매들! 씨앗의 끝에 낚싯바늘처럼 날카로운 가시를 달고 동물이나 사람의 몸에 붙어서 이동한다. 도깨비 중에는 바늘을 무서워하는 녀석이 있다지. 귀찮고 성가신 도깨비바늘 씨앗이 여러 개로 뭉친 바늘과 같으니 도깨비가 무서워할 만하다. 바늘에 찔려 허둥대다가 날밤을 새우는 도깨비 꼴을 상상하니 우습기도 하다.

도꼬마리열매
도꼬마리열매

도꼬마리 열매는 무임승차 하는 도둑놈 중에서도 아주 강력하다. 예전에 야생화 농장을 운영할 때 염소를 키운 적이 있다. 늦가을 양지바른 언덕에 누워 되새김질하는 염소의 배 주변에 도꼬마리 열매가 잔뜩 붙어 있는 거다. 염소를 붙잡고 떼어 주려 하니 고함을 지르며 달아나버렸다. 이를 어찌할 노릇인가?!

씨앗의 특성을 잘 살려서 실생활에 이용한 사례가 있다. 스위스의 공학자 메스트랄은 도깨비바늘 열매의 특성을 모방하여 옷이나 신발의 찍찍이를 만들었다고 한다.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대자연의 생물들은 오랜 진화의 결과 환경에 적응하면서 살아남았다. 생존을 걸고 지혜를 짜낸 덕분이다. 한 생명의 생존 자체가 지혜의 보물창고인 셈이지. 한평생 젓가락질을 하고 운전을 해도 일상에 변화가 없는 것은 새로운 시도가 없었기 때문이겠지?
 

식물 문화 연구가이자 산림 치유 지도사인 최재길 시민기자는 사남면 죽천 사람이다. 지리산 자락에서 오랫동안 머물다 최근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앞으로 사천의 곳곳을 걸으며 만나는 풀과 나무, 숲 따위를 이곳 ‘야생야화(野生野話)’에서 소개한다. 때로는 그의 추억이나 재미난 이야기도 만날 수 있다.    -‘야생야화(野生野話)’ 소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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