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표를 마련한 것만으로 그 여행의 절반은 성공
크리스마스 저녁의 텁텁한 공기, 여기가 아르헨티나!
비싼 입산 허가 비용에 절망…‘산에 오를 수 있을까?’

[좌충우돌 '안데스' 산행기] ①갈 수 있을까?

여행을 떠난다는 건 쉽고도 어려운 일이다. 스물한 살에 마음속으로 품었던 남미의 최고봉 ‘아콩카과’를 나이 쉰을 넘겨서야 찾아 나섰다. 아콩카과의 초입.
여행을 떠난다는 건 쉽고도 어려운 일이다. 스물한 살에 마음속으로 품었던 남미의 최고봉 ‘아콩카과’를 나이 쉰을 넘겨서야 찾아 나섰다. 아콩카과의 초입.

[뉴스사천=박용식 경상국립대학교 국어국문과 교수] 남겨진 이의 허전함을 안을 수 없다면 떠나지 말아야 한다. 혼자 떠나는 여행이어도 혼자만의 여정은 아니다. 건강히 돌아올 때까지는 자신만의 몸이 아니다. 보름이나 한 달 일정의 여행이라면 다들 부러워한다. 선뜻 나서기 어렵다.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만 갈 수 있다. 돈, 시간, 평판 등. 어쩌면 사랑하는 이에게는 가장 큰 서운함을 남겨 놓아야만 갈 수 있다. 가슴 속 큰 구멍을 만들어 놓는다.

직장과 학교를 왕복 1시간 30분씩 출퇴근을 해도 허벅지 근육은 탄탄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운동을 할수록 건강해지는 게 아니라 피로감만 쌓이는 기분이다. 다리 힘이 더 빠지기 전에, 뜨거운 가슴이 식기 전에 떠나기로 했다. 목적지는 아콩카과 산(6,962m)! 안데스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아시아를 제외한 대륙에서 가장 높은 산이기도 하다. 대학 산악부 생활을 하면서부터 알게 된 산인데, 스물한 살에 ‘때 되면 가게 되겠지’ 했던 산을 쉰셋 나이가 되어서야 나서게 되었다. 

‘산이 어느 나라에 있지?’ ‘비행기 표는 어느 공항으로 끊어야 하지?’ 여행은 이런 질문으로 시작했다. 아내로부터 허락을 받는 일은 포기했다. 12월 23일에 떠나 1월 19일에 돌아온다는 남편을 어느 아내가 쉽사리 받아들이겠는가, 그냥 저지르는 수밖에. 직장에는 일반 연수를 신청했다. 브라질의 포르투갈어 박물관 답사 일정을 넣은 것은 그 이유다. 한 나라의 언어를 어떻게 전시하는지 직접 보는 일은 꽤 멋진 일이다.

앞서 다녀온 이들의 글과 이야기에서 일정을 알아보고 비행기 표를 샀다. 이렇게 하면 여행의 절반은 성공이다. ‘진짜 가는 건가?’ ‘배낭에는 무엇을 넣어야 할까?’ ‘얼마나 짊어질 수 있을까?’ 머릿속 질문이 그치지 않았다. 입산 허가를 위한 절차, 산행하는 동안 먹을 것, 필요한 장비, 외장 충전기와 연료용 가스 등을 점검하고 또 구입했다.

산에서는 최대 12박 13일 있을 예정이다. 식량을 하루 300g 이내로 하려니 결론은 라면과 누룽지. 산에서 먹는 간편식을 이것저것 먹어 본 뒤에 내린 결론이다. 특식이라면 치약 통 같은 데 든 고추장 3개다. 120g의 라면 하나와 누룽지 100g으로 저녁과 아침을 해결하고, 점심은 초코렛과 비스킷이다. 물통 1리터로 하루를 버텨야 한다.

인천공항에서 받은 비행기 표는 석 장. 바르셀로나-상파울루-멘도사로 이어지는 일정이다. 바르셀로나와 상파울루 공항에서는 노숙을 해야 할 처지다. 그렇게 공항 거지가 되어 가며 2박 3일 뒤 멘도사 공항에 도착했다.

아르헨티나 멘도사 시내 풍경
아르헨티나 멘도사 시내 풍경

해가 저물어 가는데 텁텁한 바람이 낯설다. 크리스마스 저녁인데 이곳은 한여름이다. 예약해 놓은 숙소까지는 20km 떨어져 있다. 외국 가면 환전과 현지의 유심 칩(스마트폰에 끼우는 개인 정보용 칩) 구매부터 해야 한다. 유심 칩 구매는 전화기에 인터넷 기능을 넣는 일이라 신경이 많이 쓰인다. 그런데 멘도사 공항에는 환전소도 없고 현지 통신사의 유심 칩 판매점도 없는 게 아닌가. 현지 화폐가 없으니 버스를 탈 수도 없다. 다행히 공항 앞 택시 운전사에게 호텔 주소와 10달러 지폐를 보여 주니 타라고 한다.

여행지 도착 첫날 묵었던 장소
여행지 도착 첫날 묵었던 장소

숙소 도착. 숙소를 지키는 노인은 영어가 아주 짧다. 이럴 땐 번역기가 제격이다. 그런데 이런! 아르헨티나어가 번역기에 없다. ‘어쩌지’ 하다가 답을 찾았다. ‘아르헨티나는 스페인어를 쓰지!’
이튿날은 전날 못한 환전과 유심 칩 구매로 시작했다. 유심 칩 구매에는 2만 원 정도를 썼다. 이 정도면 1달에 15기가의 데이터를 쓸 수 있다.

다음으로 해야 할 일은 입산 허가서를 받는 것. 이번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다. 여기저기 발품을 팔았으나 코로나 이후 뭔가 좀 바뀐 듯하다. 아콩카과 누리집 설명과도 맞지 않고, 3년 전에 다녀온 블로거의 글과도 좀 다르다. 몸으로 자꾸 부딪쳐 볼 수밖에.

그런데 어렵게 찾아간 입산 허가서를 준다는 사무실에서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내놓는다. 대행사를 통하면 1,300달러, 직접 가려면 2,600달러를 내어야 한단다. 누리집에는 분명 800달러와 1,300달러라고 소개되어 있었다. “그것은 업데이트가 안 된 정보”라고 말하니 말문이 막힌다. ‘어쩌지? 내가 가진 돈은 1,900달러뿐인데, 산에 오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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