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정 사천중학교 교사.
최진정 사천중학교 교사.

[뉴스사천=최진정 사천중학교 교사] 삼천포항과 남해 창선을 오가는 도선(導船)을 타고, 떼를 지어 노니는 상괭이(돌고래)를 보며 물건중학교와 남수중학교에 다니던 때가 엊그제. 아주 작은 섬마을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을 위해 두 학교에 도서관도 만들고, 함께 저녁도 먹고 밤늦게까지 책도 읽고 놀이도 했다. 사춘기 아이들의 풋사랑 상담에도 함께 하며 낯설고도 행복한 시간을 보냈었다.

컴퓨터 게임에 빠져 지각을 일삼던, 전학 온 예쁜 여자 후배에게 반해 100일의 만남을 기념한다고 온 교실을 초로 밝히던, 얼마 못 가 헤어지고 눈물을 글썽이며 “선생님, 여자를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묻던 아이는 벌써 군대를 다녀와 그때 내 나이만큼 먹은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다. “여자를 알려면 고전(古典)을 많이 읽어라”라는 말도 안 되는 처방을 듣고 책을 죽으라고 읽어대던 그때 그 아이는, 지금 학교에서 그 같은 상황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

사천에 건너와서 삼천포제일중 3년, 사천여중 4년, 사천중 5년, 이렇게 12년을 시간 가는 줄도 모르게 보냈다. 제일중에서 가르친 제자 중에는 벌써 아이의 아빠가 되었다고 SNS를 통해 소식을 알려오고, 초롱 같던 눈망울로 숨소리까지 필기하던 사천여중의 그 아이들은 벌써 대학원에 다니는 중늙은이(?)가 되어 술도 한 잔 사 달라 한다. 내 맘이 아직 삼십 대 젊은 시절에 머물러 있는 것 같은데, ‘세월은 유수(流水)라’더니 정말 현기증이 날 정도로 세월이 빠르게 흘러간다.

이렇게 저렇게 하다 보니 교직 생활도 어언 삼십여 년. 처음 10년은 철없는 젊음 하나로 여고생들의 사랑을 받으며 성장했던 것 같고, 남해에서는 가족과 같은 작은 학교의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며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살았고, 다시 돌아온 사천에서는 사춘기 아이들의 갈등과 아픔을 함께하며 보낸 것 같다.

지나간 시절 만났던 인연에 힘입어 공적도 없지만 큰 오명도 없이 오늘에 이른 것 같다. 내가 몸이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는 걱정되는 마음에 자기 아버지 몸보신용 개소주까지 훔쳐 오는, ‘콩떡같이 말해도 팥떡으로 알아듣는’ 슬기로운 제자들의 지극한 사랑을 받았다. “선생님 덕분에 마음을 잡았습니다.” “덕분에 성적이 많이 올랐어요.” “덕분에….” 순간순간 아이들에게 여러 감사 인사를 들었지만, 정말이지 덕을 본 것은 아이들이 아니라 나 자신일 것이다. 아이들의 순수하고 바른 모습을 보면서 정면교사(正面敎師)로 내 모습을 바로 잡으며 살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따뜻하게 대해주신 학부모님과 지역민들의 마음은 불언지언(不言之言)으로 대신하겠다.

‘회자정리 거자필반(會者定離 去者必返)’이라고 ‘만나면 헤어지고 떠나가면 반드시 돌아옴’이 있듯이 다시 남해로 가게 되었다. 이제 남은 교직 생활은 작은 학교에서 책을 읽으며 꿈을 찾아가는 아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떠나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라는 이병기 님의 시 ‘낙화’가 생각나는 오늘이다.

“그동안 졸고(拙稿)를 읽어주신 <뉴스사천> 독자님들께 감사한 마음을 전하며 이별을 고합니다. 늘 건강하시고, 지역의 소식지 <뉴스사천>을 더 많이 사랑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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