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야화(野生野話)] 용현면 신복마을

용현면 신복마을에 있는 소나무. 박연묵 교육박물관을 굽어보는 이 소나무의 이름을 ‘박연묵 소나무’라 부르면 어떨까.
용현면 신복마을에 있는 소나무. 박연묵 교육박물관을 굽어보는 이 소나무의 이름을 ‘박연묵 소나무’라 부르면 어떨까.

[뉴스사천=최재길 시민기자] 어느 날 초등학교 은사 선생님이 찾는다는 전화를 받았다. <뉴스사천>에 싣는 ‘야생야화’ 연재 글을 보신 것이다. 용현면 신복마을에서 오롯이 교육박물관을 일구어내신 박연묵 선생님! 평소 지연이나 학연을 챙기는 성격이 못되지만, 선생님을 향한 마음은 깊이 남아 있다. 초등 3~4학년 두 해 동안을 애정으로 가르치고 보살펴 주신 추억 때문일 거다. 미술 시간, 색종이를 오려 알록달록 붙이던 기억이 희미하게 떠오른다. 오랜 짐처럼 포개져 있던 마음을 꺼내어 선생님을 찾아뵈었다. 십여 년도 전에 드렸던 야생화 사진첩을 꺼내놓고 기다리고 계신다. 사소한 물건 하나도 버리지 않고 쓰임새 있게 갈무리하시는 선생님의 모습에 절로 고개 숙인다.

강인한 생명력을 가진 소나무.
강인한 생명력을 가진 소나무.

이내 뒷산 소나무로 이야기가 흘러가고~. 구순을 맞으신 선생님의 안내로 집 뒤 산비탈 소나무 아래 섰다. 이 주변의 땅은 선생님 소유다. 몇십 년 전에는 전부 야생의 솔밭이었다. 유실수가 한창 인기 있던 시절에 솔을 베어내고 밤나무를 심었다. 그때도 제법 굵은 솔이 많았지만, 그중에서 제일 큰 솔 하나는 남겨두었다. 이곳의 토질이 거친 ‘비륵’인데도 우람하게 잘 자랐다. 바위를 뚫어 길을 내며 살아가는 강인한 생명력! 이 소나무는 마침내 보호수가 되었다. 선생님을 쏙 빼닮은 보호수! 솔숲은 서로 조율하는 화합력을 갖지만, 낙락장송은 한 곳으로 집중하는 강력한 흡인력을 갖는다. ‘같이’와 ‘따로’는 그 쓰임이 다른 법이지.

집 동쪽 넓은 밭에는 원산지가 확실한 동백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사량도에서 묘목을 가져온 것이라 한다. 예년 같으면 벌써 붉은 동백꽃이 고개를 내밀고 있을 텐데. 꽃망울이 터져 나오다가 모두 얼어버렸다. 올겨울이 그만큼 추웠던 게다. 기후변화의 영향이라 한다. 생강나무도 이제 겨우 겉껍질이 벌어져 노란 솜털이 삐져나오고 있다.

생강나무 꽃
생강나무 꽃
동백꽃
동백꽃

어느새 선생님은 한 그루 동백나무 아래로 가서 앉아 계신다. 흰 꽃이 피는 귀한 동백을 보여주고 싶으신 게다. 흰 동백을 기다리는 마음이 샘솟는다. 주변에 돌배나무, 매화, 산수유, 살구나무, 앵두 등은 교육 목적으로 심은 민속 식물들이다. 선생님이 저쪽 밭 가장자리의 미루나무를 가리킨다. 요즘 귀해져서 보기 어려우니 몇 그루 심어두셨다 한다. 이렇게 심어 가꾼 나무들이 100여 종이나 된다. 이 나무들도 교육박물관 일부로 저마다의 사연을 나누고 있다.

소나무로 만든 바가지
소나무로 만든 바가지

소나무로 만든 바가지가 있다고 하셔서 보여 달랬다. 이 바가지에는 생생한 농경 생활의 한 면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예전에 마을을 다니며 가정에 필요한 생활 도구를 깎아주는 사람이 있었다. 대가로 돈이나 곡식 가리지 않고 받았다. 선생님이 직접 산에서 베어온 소나무를 그 장인이 깎아서 만든 바가지가 내 눈앞에 놓여있다. 자신의 이력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바가지, 이 또한 농경사회의 생생한 기록이 아닌가!

기록용 카메라
기록용 카메라

옛 풍경 그대로인 청마루에 앉았다. 선생님께서 오래된 필름 카메라를 꺼내 오신다. 한국전쟁 때 샀다니 70년도 넘었다. 그 시절 귀하기만 한 카메라로 선생님은 아이들과 함께 한 시간을 하나하나 기록으로 남겨 오셨다. 그 애정 어린 자료와 기록들이 쌓여 교육박물관을 이루었다.

오래된 초등교육 자료를 찾는 사람들은 이제 박연묵 교육박물관을 찾게 되었다. 어디에도 없는 귀한 자료를 만날 수 있으니까. 최근에는 국가기록 전시에 3번이나 참여했다. 국가가 나서서 인정해 준 거지.

다시 뒷산 소나무를 바라본다. 솔밭을 이루었던 숱한 소나무들의 기운이 하나로 뭉쳐 보호수로 거듭났다. 장대하고 우직한 소나무는 선생님의 생애와 함께해 왔다. 한 우물을 깊이 파 오신 의미의 상징이 되었다. 박연묵 교육박물관의 터전을 상징하는 자연문화유산 하나가 탄생한 것이다. 이 장대하고 우직한 소나무는 이제 ‘박연묵 소나무’로 영원히 남을 것이다.

식물 문화 연구가이자 산림 치유 지도사인 최재길 시민기자는 사남면 죽천 사람이다. 지리산 자락에서 오랫동안 머물다 최근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앞으로 사천의 곳곳을 걸으며 만나는 풀과 나무, 숲 따위를 이곳 ‘야생야화(野生野話)’에서 소개한다. 때로는 그의 추억이나 재미난 이야기도 만날 수 있다.    -‘야생야화(野生野話)’ 소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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