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점검을 이유로 베이스캠프행 출발을 하루 늦추다
의료 테스트 겨우 통과…그러나 무거운 몸에 마음은 복잡
‘오를까 말까’…날씨만큼 변덕스러운 내 마음을 새삼 발견

[좌충우돌 '안데스' 산행기] ③ 고산에서의 휴식

건강 점검으로 뜻하지 않게 얻은 고산에서의 휴식. 휴대용 태양광 충전기가 제 성능을 발휘했지만, 내 마음은 갈팡질팡했다.
건강 점검으로 뜻하지 않게 얻은 고산에서의 휴식. 휴대용 태양광 충전기가 제 성능을 발휘했지만, 내 마음은 갈팡질팡했다.

[뉴스사천=박용식 경상국립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유명해지기 위해서.” 인류 최초로 산악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던 고 박영석 대장은 동국대학교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선배님, 마지막으로 질문드리겠습니다. 왜 산에 가십니까?”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나는 아직 산에 가는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페북에 ‘좋아요’ 받으려고 간다.”라고 답한 적은 있다. 멋진 답은 아니지만 부정할 수는 없다. 다만 이런 생각을 한 적 있다, 배우와 등반가의 구분이 모호하다는. 정상까지 간들, 얼마 못 가 바로 하산을 한들, 내 삶은 변함이 없겠지만 만족감은 달라질 것이다. 만족감도 욕심인가? 이런저런 잡생각으로 산행의 첫 밤을 보냈다.

2022년 12월 29일. 해가 뜬다. 눈을 뜬다. 살아 있다. 원래 계획은 베이스캠프로 바로 출발하는 거였지만, 어젯밤에 의료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다. 의지와 상관없는 휴식이지만 오히려 편안하다. 바로 출발할지 하루 쉬었다 갈지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생각보다 춥지는 않았지만 일어나 보니 텐트에 얼음이 붙어 있다. 해가 뜨니 금세 녹아서 축축해진다. 누룽지를 끓여 먹고 나간다. 몸이 가벼우니 알싸한 바람이 상쾌하다. 7시 30분부터 산책을 하기도 하고 내일 갈 길을 제법 걸어가 본다. 슬렁슬렁. 하루 쉬는 게 이런 건가 싶다. 언제 이렇게 편하게 쉬어 봤나. 안데스를 혼자서 다 즐긴다.

콘플루엔시아(confluencia)의 의료텐트 실내 모습.
콘플루엔시아(confluencia)의 의료텐트 실내 모습.

12시에 의료 테스트가 예정되어 있는데 쉽게 통과할 거 같다. 어제저녁과는 완전히 다른 몸이다. 병원 텐트 앞에 기다리고 있으니 담당자가 온다. 혈압 통과! 손가락에 두툼하고 작은 집게를 물린다. 혈중 산소 수치 측정기. 이 손가락 저 손가락 해 보더니 좋다고 한다. 고혈압 약을 보자고 한다. 약 이름과 성분이 한글로 되어 있다.

한참 후에 담당자는 로마자로 제대로 적어낸다. 의료 텐트 지키는 이가 진짜 의사인지 궁금했는데 영 엉터리는 아닌 듯하다. 고혈압 약도 통과. 통과 최저 수치라고 한다. 물 많이 마시고, 하루에 10시간 정도로 걷는다는 생각으로 천천히 가라고 권한다. ‘무거운 배낭 멜 생각하니 정신이 없는데, 우찌 빨리 가노?’ 마음이 놓인다.

제법 높은 언덕으로 올라가 내려다 보니 수십 개의 텐트가 한눈에 들어온다.
제법 높은 언덕으로 올라가 내려다 보니 수십 개의 텐트가 한눈에 들어온다.

콘플루엔시아에서는 전화기 신호가 잡히지 않는다. 와이파이를 사용하려면 1시간에 10달러가 든다. 비밀번호 같은 걸 하나 주는데, 그 번호를 입력하면 접속이 되고 1시간이 지나면 딱 끊어진다. 혹시나 해서 제법 높은 언덕으로 올라가 본다. 신호는 잡히지 않지만 수십 개의 텐트가 한눈에 들어온다.

텐트가 모여 있는 콘플루엔시아(confluencia)는 ‘합류 지점’이란 뜻이다. 두 계곡이 만나는 곳에 있다. 그래서인지 깨끗한 물이 풍부하다. 작은 샘 옆에 벤치가 있다. 쉬기도 좋고 라면 끓여 먹기도 ‘딱’이다. 아, 충전! 태양광 충전을 해 본다. 에이포(A4) 종이만 한 태양광 충전 장치이지만 이게 충전이 된다. 햇볕이 강해서 그런가? 연구실에서는 효율이 별로였는데 30분에 10%는 충전되는 거 같다. 하지만 전화기 충전만 하면 뭐하겠나, 인터넷이 안 되는데. 일기라도 적어볼까?

라면에 누룽지를 넣어 끓여 점심을 먹는다. 대한민국 라면이 제일 맛있다.
라면에 누룽지를 넣어 끓여 점심을 먹는다. 대한민국 라면이 제일 맛있다.

오후 2시. 라면에 누룽지를 넣어 끓여 점심을 먹는다. 여기까진 좋았다. 좀 더워지자 몸이 무겁다. 숨이 가쁘니 걷는 게 짜증이 난다. 쉬고 싶지만, 좀 눕고 싶지만, 적절한 곳이 텐트밖에 없다. 텐트 안은 온실도 이런 온실이 없다. 남회귀선까지 내려온 태양은 거의 90도로 빛과 열기를 들이붓는다. 너무 덥다. 출입문과 창을 여니 바람이 좀 들어오긴 하는데, 흙먼지가 같이 들어온다. 침낭 위로 먼지가 쌓이지만 그게 대수인가? 시원한 게 우선이다.

아, 몸 상태가 점점 엉망이다. 그러니 의지도 꺾인다. 내일 산으로 올라갈지 다시 마을로 내려갈지도 고민이다. 이러면 안 되는데, 무참히도 무너진다. ‘그래도 갈 수 있는 데까지는 가야지!’ 이내 이 결심마저 무색해진다. 등반 의욕 상실. 땀나고, 덥고, 몸은 무겁고. 빙벽화 신기가 귀찮아서 텐트 밖을 나가기도 싫다. 이래저래 별생각이 다 든다.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다가 5시가 넘어가니 상황이 달라진다. 선선하다. 잠이 들었는데 깨어 보니 춥다. 7시 넘으니 해가 진다. 몸이 다시 가볍다. 옷을 좀 챙겨 입고, 돋은 식욕에 단맛 간식을 먹어 본다. 아, 좋다. 오늘 저녁이 어제저녁보다 좋으니 내일 아침 몸 상태는 더 좋아질까? ‘추웠다 더웠다’ 하는 날씨만큼이나 나도 내가 이토록 변덕스럽고 약한 존재인 줄 이제야 알게 된다. 오랫동안이나 감추고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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