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은 하루에 걷는 길을 이틀째 ‘뚜벅뚜벅, 헉헉’
그래도 버거운 배낭, 결국 노새에게…‘내 힘 등반’ 무산
베이스캠프에서 다시 찾은 여유…‘맥주’로 자축과 위로

[좌충우돌 ‘안데스’ 산행기] ⑤ 아, 베이스캠프!

안데스 아콩카과산의 베이스캠프로 향하는 길.
안데스 아콩카과산의 베이스캠프로 향하는 길.

[뉴스사천=박용식 경상국립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베이스캠프로 향하다가 멈춘 자리. 길에서 10m쯤 벗어난 곳에 배낭을 풀어 놓는다. 편편한 것이 텐트 하나 치기에 딱 좋다. 그사이 눈도 살짝 그친다. 잠시 쉬고 있으니 두 사람이 올라온다. 저기 텐트 쳐도 되냐니까 안 된다고 한다. 2~3시간 정도만 가면 베이스캠프에 도착하니까 같이 올라가자고 한다. 배낭을 가리키면서 “저 배낭이 좀 무겁다. 오늘 안으로 갈 수는 있겠지만 내 걸음으로는 밤 9시는 될 거 같다. 나는 오늘 여기서 쉬는 게 좋겠다”라고 하니 무전기를 꺼낸다. 두 사람 중 한 명은 가이드인 모양이다.

어느 회사인지 물어본다. “인카!”라고 하니“오~ 인카!”라고 한다. 무슨 뜻일까? 내 이름도 물어본다. 좀 있더니 내 배낭도 한번 들어 보고는 10여 분 무전을 한다. 물이 얼마나 있는지 물어본다. 400mL 있다고 하니 옆의 일행이 자기 물을 준다. 200mL는 될 듯하다. 일단 ‘인카’에는 내 이야기를 해 뒀다고 한다. 그런데 뭐 어쩌자는 건지는 알 수 없다. 한 30분 같이 있다가 훌쩍 떠나니 혼자 남는다. 왠지 서글프다.

텐트를 치고 짐 정리를 하니 5시 30분. 구름이 끼어서 그런지 살짝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슬슬 추워진다. ‘여기서 또 혼자 자는 건가?’ 하는 사이 바람이 불고 눈이 내린다. 텐트를 그나마 야무지게 친 것이 다행이다. 어스름하게 텐트에 뭐가 쌓이는 게 느껴진다. 눈이다! 눈이 텐트에 살짝 걸쳐있다. 그렇지! 저거다.

텐트를 살짝 열어 눈을 담는다. 빼곡하게 담고는 버너 불을 켠다. 살살 녹으며 물이 되는데, 이게 맑다. 먼지 하나 없는 깨끗한 눈인가 보다. 코펠 뚜껑으로 눈을 담아서 1.5L 코펠이 가득 찰 때까지 눈을 담아 넣는다. 내일 가야 할 길을 지워 버릴지도 모를 눈이건만, 그건 내일 걱정하기로 한다. 물통과 코펠에 가득 물을 채우니 ‘와 이리 기분이 좋노!’

눈을 뜨니 어제와는 완전히 다른 몸이다. 한 번도 깨지 않고 잠을 잔 것 같다. 여기서 하루 묵은 게 정말 잘한 결정이었던 거 같다. 좋다. 배낭을 다시 꾸린다. 살짝 눈이 내린 길은 오히려 걷기에 편하다. 먼지가 안 난다. 길도 잘 보인다. 가야 할 길도 지나온 길도 잘 보인다.

'천근만근' 배낭의 무게는 여전히 부담이다.
'천근만근' 배낭의 무게는 여전히 부담이다.

계속 오르막이긴 해도 1시간에 1km 정도는 걷는 듯하다. 배낭의 무게는 여전히 부담이다. 노새가 어떻게 올랐을지 궁금할 정도의 급한 경사도 있다. 11시가 조금 지나니 저 멀리서 노새 무리가 온다. 한번 휙 지나가고, 또 한 무리가 저 아래에서 온다. 돈을 좀 주더라도 저 노새에게 내 배낭을 맡겨 볼까? 이런 생각하는 사이 한 무리가 또 지나가고. ‘아, 다음 노새가 오면 값을 한번 물어나 봐야겠다’ 하면서 걷는다.

베이스캠프까지 내 힘으로 가 보려 했으나 결국 노새에게 신세를 지고 말았다.
베이스캠프까지 내 힘으로 가 보려 했으나 결국 노새에게 신세를 지고 말았다.

20분 정도 더 걸었을까? 한 무리 노새가 또 온다. 한 분을 세워서 물어본다. “베이스캠프, 인카….” 몇 마디 단어를 나열하며 배낭을 푸니까 무슨 말인지 알아듣는 듯하다. 배낭을 자기에게 달라고 한다. 50달러 한 장을 보여주니까 배낭을 받아 간다. 베이스캠프가 2.7km 남았다. 오호! 멋지다. 참, 돈이란 게 뭔지. 이럴 때 쓰는 게 돈인가?. 내 힘으로 베이스캠프까지 가려 했던 계획은 무산이다. ‘계획은 바꾸라고 있는 거지. 지치지 않을 방법이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좋다.’ 이런 위로를 해본다.

물통 한 개만 들고 오르니, 몸이 이렇게 편할 수가 없다. 한결 마음이 놓인다. 천천히 걸어도 오후 2~3시에는 도착할 거 같다. 살짝 배가 고프다는 생각이 들 때, 저 멀리 베이스캠프가 보인다. 아, 이젠 살았구나! 신선한 공기가 머릿속으로 확 들어오는 느낌이다. ‘노새의 광장, Plaza De Mulas’에 도착한다.

관리사무실 텐트에 입산 허가서를 보여 주고 인카 캠프로 간다. 배낭이 잘 도착해 있다. 다시 눈이 내린다. 인카 직원이 텐트 치는 자리를 안내해 주는데, 또 서글퍼진다. 눈을 맞으며 텐트를 치려니 또 한숨이다. 주변의 커다랗고 튼튼한 텐트에 비해 볼품없이 작은 텐트여서 더 그렇다. 그나마 이틀 전에 부쳤던 두 뭉치의 짐을 찾아 텐트에 넣으니 뿌듯함이 밀려온다. 12일 치의 식량과 간식 덕분이다.

포터 협회의 텐트에 가 본다. 각 캠프까지 짐을 운송해 주는 요금표가 붙어 있다. 마지막 캠프까지는 350달러라고 되어 있다. 텐트를 쳐 주는 것도 포함된다고 한다. ‘배낭 없이 캠프2까지 한번 다녀온 뒤에 판단하자’는 마음으로 인사를 나누고 텐트를 나선다.

카페에서 맥주로 여유를 찾았다.
카페에서 맥주로 여유를 찾았다.

다음 목적지는 20m쯤 위에 안테나가 있는 텐트다. 그런데 그곳은? 따듯한 난로가 있는 카페다. 와이파이 쿠폰이 필요했는데, 그것만 있는 게 아니었다. 차도 있고 술도 있다. 투명한 텐트 속에서 ‘베이스캠프 뷰’를 즐길 수도 있다. 맥주 500mL에 5달러. 캔 두 개를 시켜서 자축 파티를 한다. 아내 생각이 난다. 인숙! 다음에 오면, 베이스캠프까지는 같이 와도 될 거 같다. 내리는 하얀 눈이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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