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야화(野生野話)] 곤양 남산

온갖 풀꽃이 반가이 고개를 내미는 곤양면 남산. 그 정상에 있는 우산봉수대 터가 옛 기억을 품고 있다.
온갖 풀꽃이 반가이 고개를 내미는 곤양면 남산. 그 정상에 있는 우산봉수대 터가 옛 기억을 품고 있다.

[뉴스사천=최재길 시민기자] 봄물이 오른 아침, 맘먹고 곤양 남산에 풀꽃을 보러 나갔다. 작년에 지인의 안내로 알게 된 장소다. 개울가 벼랑에 진달래가 연분홍 물빛에 세수를 한다. 잠시 잠깐 숲속에 드니 봄꽃들이 꽃 천지를 이루었구나! 얼레지와 남산제비꽃은 지천으로 깔렸다. 노루귀, 산자고, 현호색, 꿩의바람꽃, 큰개별꽃, 춘란(보춘화)도 반가이 고개를 내밀었다. 나는 숲속 꽃밭에서 노닐 때가 제일 재밌다. 예전엔 가을이 좋았지만, 그래서 요즘엔 봄이 좋다.

얼레지
얼레지

봄 숲속의 풀꽃들은 햇빛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모든 식물은 햇빛을 간절히 원하지만, 모두가 원하는 만큼 받을 수는 없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다 갖지 못하는 것처럼. 이것이 낙엽활엽수림 아래 살아가는 풀꽃들의 처지다.

남산제비꽃
남산제비꽃

하지만 이른 봄이라면 사정은 다르다. 숲의 뼈대를 이루는 큰 나무들이 아직 잎을 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숲 아래 풀꽃들도 쨍쨍한 햇빛을 받을 수 있는 거지. 그렇지만 봄 풀꽃들은 재빠르게 꽃 피우고 열매 맺기를 마쳐야 한다. 이른 봄의 풀꽃들은 키가 10~20cm로 작다. 한정된 시간 동안 키를 키우는데 에너지를 쓸 형편이 못 되기 때문이다. 에너지를 아껴 꽃과 열매에 최대한 집중해야 한다. 여기에 봄 풀꽃의 앙증맞은 귀여움이 있다.

남산 정상에는 봉수대가 우뚝 솟아 있다. 우산봉수대라 한다. 예전에 소가 누운 듯한 산이라 하여 우산으로도 불렀던 모양이다. 이 봉수대는 흙무더기를 산처럼 쌓아 올려 만들었다. 아래로 곤양면 소재지가 훤히 내려다보인다. 봉수군이 곤양 앞바다를 살펴 곤양 읍성에 알리기 위해 세종 19년에 만들었다. 지금은 봉수대에서 바다가 보이지 않지만, 옛날에는 곤양 읍성 가까이 바닷물이 들어왔다고 한다.

봉수제도가 나타난 시기는 고려 중기지만, 고려말 왜구의 남해안 침입이 극심해지면서 체계를 갖추기 시작했다. 우산봉수대는 남쪽으로는 사천(삼천포) 각산 봉수대, 북쪽으로는 진주 망진산 봉수대와 연결하였다. 우산봉수대는 1756년(여지도서 편찬 연도) 이전에 폐지됐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봉수제도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한 봉수 노선 조정기일 것으로 보고 있다.

현호색
현호색

다시 풀숲에 들어서니 이슬 머금은 현호색이 말간 얼굴로 반긴다. 현호색은 기다란 통꽃 안쪽에 꿀주머니를 달고 있다. 암술과 수술은 숨어있어 보이지 않는다. 현호색 같은 좌우대칭형의 꽃은 특히 벌이 주로 중매쟁이 역할을 한다. 벌은 머리를 디밀고 꽃잎을 헤쳐 꽃가루와 꿀을 찾는다. 꿀샘이 깊이 숨어있는 좌우대칭형 꽃은 암술과 수술이 모두 벌의 특정 부위에 닿아 꽃가루받이에 유리하다. 그래서 방사형보다 좌우대칭형 꽃이 더 진화한 형태라 한다.

산자고
산자고

산자고는 여섯 장의 하얀 꽃잎 안쪽에 노랑 초록의 무늬를 갖고 있다. 이 노랑 무늬 속에는 곤충을 부르는 비밀이 숨어있다. ‘여기로 들어와. 이곳에 꿀이 있어!’ 하고 곤충을 부르는 ‘허니 가이드(honey guide)’다. 매개 곤충의 눈길을 끄는 꽃의 색과 형태를 갖추고 있으면 꽃가루받이에 성공할 확률이 높아진다.

꿩의바람꽃
꿩의바람꽃
생강나무 햇잎.
생강나무 햇잎.

숲길 한 곳에 귀한 풀꽃, 꿩의바람꽃이 듬성듬성 돋아나 있다. 꽃은 보이지 않는다. 동글동글한 잎의 표면이 너무나 매끈해서 물방울도 굴러다닐 정도다. 아래쪽을 바라보니 떼로 모여 싱그런 아침을 노래하고 있다. 눈을 크게 뜨고 찾아보니 서너 송이 꽃이 보인다. 햇살이 산등성이에 걸려 아직 꽃잎이 활짝 열리지 않았다. 꿩의바람꽃이나 얼레지는 햇빛에 민감한 것 같다. 꿩의바람꽃은 하나의 꽃대에 한 송이 새하얀 꽃을 피워낸다. 수행자처럼 맑고 고요한 느낌이다. 이미 꽃이 진 생강나무에선 어느새 햇잎이 고개를 내밀었다. 솜털로 가득한 햇잎을 보고 있자니 괜한 마음이 설렌다. 만물이 부풀어 생장의 수레바퀴를 돌리는 봄 한때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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