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야화(野生野話)] 사남면 구룡마을

광대나물꽃의 소리 없는 아우성. 이처럼 힘없는 것이 존재를 드러내려면 다 모여야 한다. 세상일도 이와 비슷할 지니.
광대나물꽃의 소리 없는 아우성. 이처럼 힘없는 것이 존재를 드러내려면 다 모여야 한다. 세상일도 이와 비슷할 지니.

[뉴스사천=최재길 시민기자] 봄기운이 가득한 구룡마을에 들었다. 산골짜기 돌아서 구룡사까지 올라가 볼 작정이다. 묵정밭엔 광대나물이 지천으로 피어났다. 흔한 잡초로만 여기는 붉은 꽃의 미소가 소곤소곤하다. 힘없는 것이 존재를 드러내는 방법, 다 함께 모여서 동시에 낮은 꽃물결을 이루는 것이다. 광대나물이 드러내는 존재의 숨결은 빈 밭에서 마을로 건너온다.

소나무
소나무

구룡마을을 한 바퀴 둘러본다. 아기자기 정원을 꾸민 집들, 조경에 신경을 쓴 집이 많다. 그중에 대문에 마삭줄을 올려놓은 집이 있다. 덩굴식물의 특성을 이용하여 멋과 운치를 한껏 살려놓았다. 5월 하얀 팔랑개비 꽃이 피면 문간을 드나들 때마다 꽃향기에 묻힐 듯하다. 마을 후미진 안쪽에는 멋진 장송 한 그루가 있다. 늠름한 자태에 이끌려 발길을 옮겨본다. 그 옛날 누군가 심었을 한 그루 소나무는 이제 눈길을 끄는 장송이 되었구나! 무심코 바라보니 사람들이 큰 나무를 심는 뜻을 알 것 같기도 하다. 뭇 나무 세계의 피라미드 정점에 큰 나무가 있나니! 수많은 군상과 교감의 인사를 나눌 수 있겠다.

저수지
저수지

마을 위쪽 구룡사 골짜기에는 아담하고 풍요로운 저수지가 있다. 둑에 서서 바라보는 4월의 풍경이 ‘초록초록’하다. 그 싱그러운 물결의 출렁거림이 풋풋한 마음을 일깨운다. 마음이 부풀어 오름으로 충만한 시간이다. 구룡사 골짜기의 봄은 자연 식생이 다양해서 볼거리가 많다. 봄비 한 줄금에 시원한 물줄기가 쏟아진다. 봄꽃들이 보내는 작지만 커다란 미소! 햇잎이 돋고 꽃이 피고 새들이 우짖는다.

복사나무
복사나무

저 건너 밭가에 복사꽃 한 무리, 우리네 고향의 흔한 봄 풍경을 일러준다. 꽃잎을 따라 올라갔더니 거기 무릉도원이 있었네! 크게 한 번 찾아볼거나, 내 마음의 무릉도원을. 야생의 벚나무류 꽃이 진 자리에 햇잎이 신록으로 빛난다. 숲 가장자리를 즐겨 하는 병꽃나무의 미색 꽃이 싱그럽게 피어났다. 아침 햇살이 꽃살 사이로 스며들어 공기마저 은은하다. 저 멀리 은빛 구름 졸참나무도 점점 초록의 옷을 입으며 뭉게뭉게 피어난다. 출렁출렁 신록의 춤사위가 성큼성큼 다가서는 봄 산의 풍경이다. 계절의 생명을 조율하는 저 깊고 높은 손짓을 보라!

수선화
수선화

길을 따라 나의 숲길로 오른다. 구불구불 능선의 산길을 돌아 구룡사에 들었다. 절집 가운데 장대한 느티나무 한 그루가 꿈결의 벗인 양 반겨준다. 가지마다 초록의 연한 햇잎이 번져 나왔다. 대자연의 호시절 한때를 알려주는구나! 대웅전 앞에는 수선화가 말간 얼굴로 피어 있다. 수선화는 절집 분위기와 참 잘 어울리는 꽃이다.

살포시 고개 숙인 수선화 앞에 시간의 흔적을 따라 마주 앉았다. 대략 28년 전에 이 절에서 일주일간 단기 수행을 한 적이 있다. 직장에 휴가를 내고 찾아갔었다. 왜 하필이면 구룡사에 들게 되었는지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 그때 주지 스님이 살갑게 맞아 주셨는데 수행자의 깊은 인상이 오롯이 남아 있다.

구룡사는 남방불교의 흔적을 지니고 있다. 가야 김수로의 왕비 허황옥의 일곱 왕자가 머물렀다는 설이 전한다. 허황옥은 인도 아유타국 공주다. 1세기 인도에서 가야로 이어지는 남방불교의 전래와 맥이 닿아 있다. 바닷길을 이용하여 가야로 들어온 남방불교는 사천을 거쳐 지리산 운상원(칠불사)에서 꽃을 피운 거라 하겠다. 운상원은 일곱 왕자가 성불한 곳이다. 이렇게 해서 구룡사는 가야불교의 전파경로에 서 있다. 정사(正史)보다 훨씬 긴 세월의 불교 역사를 지닌 셈이지. 역사인 듯 역사 아닌 역사 같은 알쏭달쏭 의미를 지닌 사천의 고찰 구룡사!

구룡사 앞 풍경
구룡사 앞 풍경

절 앞마당에 서서 동쪽 풍경을 바라본다. 둥그런 호를 그리며 움푹 팬 능선 너머로 희미한 산 그림자가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그 고개 아래 신비로운 옛 기상이 출렁대고 있을지니.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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