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야화(野生野話)] 구룡저수지~이구산

찔레꽃은 언제나 고향의 아련한 향수를 자극한다. 꽃향기가 해맑은 누이의 머릿결 같다.
찔레꽃은 언제나 고향의 아련한 향수를 자극한다. 꽃향기가 해맑은 누이의 머릿결 같다.

[뉴스사천=최재길 시민기자] 구룡마을 들머리에서 이구산으로 오른다. 구룡저수지 바로 위에 있는 산이로구나. 예전엔 다닌 적이 없어 처음엔 몰랐지만, 나중에 이정표를 보고 알았다. 이 숲길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들머리에 큰꽃으아리가 하얗게 피어나 함박웃음을 짓는다. 어쩌다가 저리도 큰 꽃을 피우게 되었을까? 큰꽃으아리는 다른 나무를 붙잡고 오르는 덩굴식물이다. 하지만 위로 오르는 것보단 꽃(정확하게 꽃받침 조각)을 키우기로 작정한 모양이다. 숲 바닥에선 마삭줄 햇잎이 뽀얗게 올라와 반짝 빛이 난다. 저 위쪽에서 아침 햇살이 마주 보고 있구나.

큰꽃으아리
큰꽃으아리

주변에는 땅비싸리꽃이 화사하게 피어났다. 땅에 바싹 붙어 자라는 걸 보니 이름의 유래를 바로 알겠다. 싸리나무와 한 집안이긴 하지만 속(屬)이 달라 먼 친척이다. 콩과 식물 특유의 입술 붉은 꽃이 예쁜데, 아까시나무처럼 꿀도 많은 모양이다. 농가에서 밀원식물로 이용한단다. 고개 드니 떡갈나무 햇잎이 ‘초록초록’ 내려다본다. 초록 물감을 풀어 놓은 듯 마음에도 싱그럽게 물이 든다. 풋풋하고 아름다운 생명의 속삭임이 푸르른 오월을 노래한다.

땅비싸리
땅비싸리
떡갈나무 잎
떡갈나무 잎

더불어 송홧가루 날리는 계절이 돌아왔구나! 온통 소나무들이 내놓는 꽃가루를 뒤집어쓰고 뿌옇다. 산천초목이 송홧가루 은혜를 입었다. 지구를 ‘성의 별’이라 하는 이유가 또 여기 있으니. 송홧가루는 생식을 위해 무작위로 떠도는 생명의 반쪽들이지. 이렇게 꽃가루받이하는 꽃을 풍매화라고 한다. 참나무 역시 꽃가루를 바람에 날려 수정에 성공하는 식물이다. 하지만 소나무처럼 커다란 흔적을 남길까. 

능선을 따라 잠시 잠깐 사이 이구산 정상이다. 중국 곡부에 있는 이구산은 원래 공자의 탄생과 깊은 인연을 지닌 성지다. 그런데 우리 산 이름에 이구산은 어찌 이리도 많을까? 문득 떠오르는 생각! 우리 사회는 몸 둘 바 몰라라 하던 시대들을 겹겹 안고 있다. 삼국 시대에는 부처님께 몸 둘 바 몰라라 했고, 조선 시대에는 공자님께 몸 둘 바 몰라라 했다. 현대에는 예수님께 몸 둘 바 몰라라 하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선선한 바람이 이마를 스친다. 멀리서 까마귀 소리가 들린다. 산정에 오르면 도시의 소음이 더 크게 잘 들리는 이유는 그 중심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주체를 객관화하는 것은 매우 어렵지만, 사실에 한 걸음 다가서는 눈이 생긴다. 저 멀리 눈길을 돌린다. 발아래로 사남 들판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그 뒤론 공단으로 변한 사천만이 길게 누워있다. 또 그 뒤론 날마다 해넘이를 하는 올망졸망 산자락이다. 내일이면 그 해는 다시 돌아와 이구산 정수리에 비추리라.

이구산에서 바라보는 사남 들판
이구산에서 바라보는 사남 들판

내려서는 길은 구룡저수지 방향으로 잡았다. 잠시 가파른 숲길을 내려서니 임도가 나온다. 아래로는 청년 참나무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었다. 이곳은 도시의 소음에서 해방된 공간이다. 비로소 야생의 온전한 새소리를 듣겠다. 돌아선 산자락이 성벽처럼 가려주는 덕분이다. 가끔 얄밉게도 드러나는 저수지와 뒷배경으로 무성한 산자락이 더욱 마음을 다독인다. 크게 빼어나진 않지만, 또 거닐고 싶은 마음이 가는 호젓한 숲길이다. 길섶에 산골무꽃 한 무리 피어서 빤히 쳐다본다. 가까이 다가서서 한참을 마주 본다. 꽃은 말이 없고 무한한 짝사랑은 계속된다. 나비 한 마리 자꾸만 길 앞으로 내달아가더니 코앞 풀섶에 주저앉는다. 저 딴에 숨었다고 생각하겠지만, 다 보인다. 여기 서로 다른 시각의 지평이 있다.

구룡저수지 경관
구룡저수지 경관

임도 가에 찔레꽃 한 무리 피어났다. 아련한 고향의 향수를 자극하는 꽃! 코끝을 간지럽히는 꽃향기가 해맑은 누이의 머릿결 같다. 그 길 아래에는 산딸기꽃이 피고 지기 분주하다. 어린 시절 입맛을 유혹하던 그 산딸기가 이내 바알갛게 매달리겠지. 시간은 점점 농익어 또 한 계절이 슬그머니 자취를 감출 거다. 저 앞에 길고양이 한 마리 쏜살같이 내달린다. 

산딸기꽃
산딸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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