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지에 ‘앵벌이’로 내몰린 친구들에게 사죄하는 마음으로

참으로 부끄럽게도 의로운 친구들을 졸지에 '앵벌이' 소년으로 몰고 말았습니다. 결론은 해피엔딩인데, 서글픈 마음 적지 않습니다.
3월3일 저녁, 선술집에서 몇몇 지인과 하루의 피로를 풀던 중 참으로 헷갈리는 상황을 맞았습니다. 지금 돌이켜봐도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마음 정하지 못하겠네요.

당시 상황을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작은 선술집 시계가 9시 근처를 가리킬 무렵, 조금 어려보이는 사내 둘이 가게에 들어섰습니다. 순간 ‘너무 어린데?’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지요. 술집을 드나들기에 너무 어리다는 생각을 한 것인데, 그 가게가 단골집이어서 더욱 신경이 쓰였나 봅니다.

가게 안이 좁아서, 자세히 보면 표정까지 읽을 수 있었겠지만 그냥 곁눈질로 슬쩍 살폈습니다. 사내 둘은 출입문 가까이 앉은 손님들과 대화를 나누는 듯 보였는데, 이내 나가버렸습니다.

‘아, 그냥 심부름 왔던 거구나’ 생각하고 마음을 놨지요.

그런데 잠시 후 이런저런 얘기로 열이 달아오를 때 쯤 아까 그 친구들이 우리 일행 술자리에 불쑥 다시 나타났습니다. 손에는 종이 한 장이 들려 있었지요. 그 중 한 애가 꺼낸 이야기는 이랬습니다.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장애가 좀 있는 친군데, 오늘 학교 입학식에 참석했다가 집에 간다고 갔는데 중간에 사라진 것 같습니다. 혹시 보시면 연락주세요.”

그랬습니다. 약간의 발달장애가 있는 신입생을 찾아 그 선배들이 밤길을 헤매는 중이었던 게지요. 참 흐뭇했습니다.

손에 들린 종이에는 찾고 있는 아이의 신상정보와 얼굴사진 그리고 학교와 부모님들의 연락처가 있었습니다. 저는 일단 그 친구의 이름과 연락처, 그리고 찾고 있는 아이의 신체 특징과 부모님 연락처 등을 옮겨 적었지요.

저뿐 아니라 일행들이 그들을 격려했습니다. 그 중 한 분은 주머니에서 만 원 짜리 한 장을 건네주며 “음료수라도 사 먹게”라고 했지만 끝끝내 거절하고 자리를 떴습니다.

행방이 묘연한 신입생 후배를 찾아 나선 경남자영고 학생들.
이 모습에 일행들은 요즘 애들 치고는 참 착하다느니 어쩌느니 하며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했지요.

하지만 이는 잠시였습니다. 곧 가게 주인장이 옆에 와 우리들 얘기를 듣더니 “무슨 소리냐” “쟤네들 앵벌이집단이다” “저런 친구들 종종 찾아온다” 등등의 말로 우리의 순진함(?)을 꾸짖는 것 아닙니까.

그러자 일부는 그 의견에 동의했지요. 하지만 나머지는 “그렇지 않다. 순수해 보이더라”라며 조금 전 자리를 뜬 어린 사내들을 변론했습니다.

그런데 그 변론은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잠시 뒤 걸려 온 한 통의 전화 때문이었지요. ‘날이 밝으면 알아보리라’ 생각하고 건넸던 내 명함, 그리고 혹시나 하고 적어 뒀던 그 친구의 이름과 연락처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전화통화였습니다.

“저기요, 아까 사람 찾는다고 찾아갔던 사람인데요, 그 애 찾았거든요, 신경 안 써셔도 된다고...”

순간 뭔가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 ‘띵’했습니다. 짧은 시간에 사람을 찾았다는 게 믿기지 않았고, 조금 전 사진까지 찍으며 관심을 보인 것에 부담을 느끼고는 일이 커지지 않도록 조치를 취하는 것이라 여겼던 거지요.

조금 전까지 그 친구 변론에 ‘열심’이던 일행들 모두가 황당해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일제히 “속았구나” 하고 무릎을 쳤고, “어쩐지 뭔가 이상하더라”를 연발했지요. 저마다 탐정이라도 된 듯, 이러쿵저러쿵 하며 안주거리로 삼고 말았습니다.

물론 “설마, 설마”하며 끝까지 믿음을 버리지 않으려는 일행도 있었지만 집단의 마녀사냥 앞에 힘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조금 전 그 친구들은 도망간 녀석을 찾는 ‘앵벌이집단’으로 낙인찍히고 말았습니다.

아주 조금의 찝찝함으로, 문제의 학교에 전화를 걸어 ‘실종 사건’ 진위를 파악하려 했지만 전화를 받지 않아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조금 전 걸려 왔던 번호로 다시 전화를 걸어 아이를 찾고 다닌 게 사실이었는지 물었습니다.

게다가 “나쁜 짓 하고 다니는 건 아니지?”하고 물었고, 전화기 너머에서 절대 아니라는 대답이 들려왔지만 신뢰에 금이 간 건 어쩔 수 없었지요.

'이때까지만 해도 좋았는데...' 그 뒷일은 일어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학생들,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일행들의 탄식도 이어졌습니다. “너무 슬프다” “그리 착해보이던 아이들의 표정이 가식이었단 말인가” “눈물이 나려 한다” 등등. 그리곤 “날이 새면 꼭 확인해보자”며 더 큰 반전을 은근히 기대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더 큰 반전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4일 해당 학교에 전화를 걸어 확인해보니 실제로 그런 일이 전날 발생했던 겁니다. 발달장애가 있던 한 학생이 홀로 집에 간다고 길을 나섰다가 밤이 돼서야 집에 도착했고, 그 사이 학생의 부모들과 담임교사는 길을 잃었다고 판단해 학생 20여 명을 동원해 학교주변과 시내를 찾아 다녔던 거지요.

전화기를 내려놓으며 머리가 다시 복잡해짐을 느꼈습니다. 전날 일행들 사이에 오갔던 많은 말들이 떠올랐고, 낯이 화끈거렸습니다. 끝까지 믿어주지 못했음에 부끄러웠습니다.

한편으론 기뻤습니다. 한 때 오해했던 것은 미안했지만, 첫인상에서 풍겼던 순수함이 거짓이 아니었음에 마음이 놓였습니다. 어제의 탄식과 눈물이 웃음으로 바뀌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씁쓸하고 허전한 마음 지울 수 없습니다. 부끄럽기도 하고요.

돌이켜 반성해 봅니다. ‘이러했으니 저럴 것이다’라는 독선과 편견이 아직 내 안에 있었나 봅니다. 사람을, 세상을 더 따뜻하게 바라봐야겠습니다. 무엇보다, 내가 나를 믿는 마음이 부족했습니다.

반성의 기회를 준, 웃음과 눈물에 이어 다시 더 큰 웃음을 준 경남자영고등학교 학생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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