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창섭 시인.
송창섭 시인.

[뉴스사천=송창섭 시인] 낮 기온이 30°에 이르니 한동안 잊었던 더위를 탑니다. 때 이른 혹서를 예상하지 못해 당혹감이 듭니다. 두어 달 전만 해도 추위에 덜덜 떨며 온기를 그리워했는데 그 사이에 몸과 마음이 돌변했습니다. 인간의 얄팍한 변덕스러움이 얼굴에 고스란히 묻어납니다. 현실 세계를 주관적으로 인식하는 인간의 특성을 포착합니다. 에스토니아의 생리학자인 야곱 폰 웩스쿨은 동물들이 펼치는 다양한 활동 영역을 움벨트Umbelt라 했습니다. 이는 동물들이 움직이는 온갖 행동반경을 의미하면서 의사소통과 느끼는 감정이 제각기 다름을 나타냅니다. 

이를테면, 거미와 고라니와 인간은 움벨트가 다릅니다. 거미는 부지런히 거미줄을 쳐서 주거 공간을 마련합니다. 또한 거미줄을 생계 수단으로 활용하여 곤충들을 잡아먹고 삽니다. 고라니는 초식동물이기에 나뭇잎이나 어린 순, 나무뿌리 따위를 먹고 삽니다. 입맛에 어울리지 않는 곤충과는 맞닥뜨릴 일이 없습니다. 인간은 동물과 식물을 아우르는 무궁무진한 먹잇감을 갖습니다. 잡식성이지만 곤충이나 나무뿌리를 식재료로 삼지는 않습니다. 이렇듯 같은 생명체라도 생존을 위한 거리감을 품으며 잔잔하면서 확연히 다른 삶을 보여줍니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정의와 불의가 대립하고 풍요와 빈곤, 평화와 전쟁이 공존하는 현상도 움벨트에서 오는 차이입니다. 차이에서 불거지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완충 지대가 필수적입니다. 완충 지대란 개체와 개체의 거리감이면서 그 틈새에 머무는 어정쩡한 삶을 이릅니다. 어정쩡한 삶은, 확실성과 명쾌함을 지양합니다. 움벨트를 파괴하는 편협한 행위와 권력형 지배 욕구를 경계합니다.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의식 위해물’로 지정합니다. 거미와 고라니와 인간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이면에는 서로 존중하며 공생 관계에 있음을 인지하는 힘이 깔려 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움벨트는 표면적으로 지향하는 공동체 삶과 내면적으로 달리하는 접근 방식 사이의 갈등을 해결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입니다. 문화와 과학이 발전하면서 생각의 무게에 관심이 쏠립니다. 생각이 지닌 폭과 깊이는 짐작하기 어렵지만, 미래의 불확실성과는 궤를 같이 합니다. 생각의 영역에는 긍정과 부정, 절충의 요소가 함께 들어 있습니다. 발생하는 사안을 한 쪽 시각으로만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는 판단의 균형을 보여줍니다. 때론 이런 상황이 무한 높이의 고민을 쌓기도 합니다. 쌓인 고민은 생활에 압박을 가하고, 생각의 부피는 팽창하여 막다른 골목에 부딪칩니다. 견디기 힘든 인간은 오만 잡생각에 사로잡혀 혼돈의 세계로 빠져듭니다. 

어떤 생명체든 종족 보존을 위한 독특한 생존 전략을 갖습니다. 말 없고 움직임 없는 식물들도 마찬가집니다. 이들이 공존하는 근본을 두 철길 사이의 공간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철길 사이의 어정쩡한 거리가 서로를 방해하거나 침해하지 않는 역할을 합니다. 움벨트란 ‘다르지만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잔잔하고 어정쩡한 숨터’입니다. 인간이 공멸을 물리치고 자연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와 영속성을 갖기 위해선, 개체 대 개체로서 어정쩡한 거리를 두며 살아야 합니다.

 

※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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