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해방 직후…두 번이나 사남면장 역임
지역 인사들, 그가 타계 후 공적 담은 ‘기덕비’ 세워
방지-사촌 간 도로 개설, 구룡저수지 건설에 공로 인정
삼성초교 설립 등 육영사업에도 기여…정치 인생은 굴곡

[뉴스사천=하병주 기자]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고 범은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고 했던가. 누구나 한번 살고 가는 인생이지만, 자신만이 아니라 사회와 공동체를 위한 삶을 살라는 선조들의 ‘뼈 있는’ 가르침이다. 그러나 오늘을 사는 사람들에겐 콧방귀 뀔 일인지도 모르겠다. ‘공동체를 위하기는커녕 제 앞가림이라도 잘하면 다행’이라는 분위기가 점점 힘을 얻는 듯하기 때문이다. 후세가 기억해야 마땅할 인물을 쉬이 잊는 세태와도 맞물린다.

사천 사남 사람, 월정(月汀) 구광조(具光祖) 씨는 이런 세태 속에서도 한번은 되새겨볼 만한 인물이다. 마침 도로 확장 공사로 그의 공덕을 기록한 비석이 사라질 위기를 맞고 있다니, 오히려 지금이 적기다.

구광조(1905~1973) 씨.
구광조(1905~1973) 씨.

구광조 씨는 1905년생이다. 사남면 월성마을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능성(綾城)이다. 일제강점기였던 1932년 12월에 27세라는 젊은 나이로 제5대 사남면장을 맡았다. 임기는 해방 직전인 1945년 7월 초까지 이어졌다. 1949년 11월부터 1951년 5월까지, 한국전쟁의 상처가 가장 깊을 때도 제10대 사남면장으로서 일을 봤다. 지금도 사남면 행정복지센터에는 그의 사진이 역대 면장 사진과 함께 걸려 있다.

여기까지로는 그의 공덕을 잘 알 수가 없다. 일제강점기에 오랫동안 면장을 지냈다는 사실에서 되레 친일 부역자로 바라볼 법도 한 일이다. 그러나 그런 세세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으니, 지금으로선 정확히 확인할 길이 없다. 다만 옛 진삼선 국도, 지금의 시도 1호선의 한 자락(사남면 월성리 111번지)에 남은 그의 공덕비에서 삶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비석에는 ‘기덕비(紀德碑)’라 표현했다.

‘월정(月汀) 구광조(具光祖) 공(公) 기덕비(紀德碑)’는 그가 1973년에 타계한 뒤 5년만인 1978년 5월에 ‘지역사회 인사’들이 세웠다. 이 비에서 언급한 그의 공로는 다음과 같다. ▲사남면 방지-사촌 간 산간벽지에 30리 산업도로 개발 ▲구룡저수지를 설치하여 640여 정보를 수리안전답으로 이룸 ▲삼성국민학교를 신설하여 육영에 공헌.

이 가운데 방지-사촌 간 산업도로 개발은 1930년대의 사남면 주요 과제였던가 보다. 조선일보의 1936년 2월 7일자 신문에는 “방지-계양 간(16km) 중앙도로 개설 문제는 면민의 다년간 현안”이었다면서 도로계획이 확정됐음을 보도하고 있다. 또 “여러 사정으로 지연되던 중 구광조 면장과 직원의 열렬한 활동으로 도로 편입 지주의 승낙이 완료돼 조만간 공사를 착수하게 되었음”도 알렸다. 계양은 사촌 옆 마을이다. 이 도로의 개설이 사남면을 하나로 잇는 데 큰 역할을 했을 것임은 불을 보듯 빤한 일이다.

구광조(1905~1973) 씨의 공덕을 새긴 '월정 구광조 공 기덕비' 모습. 사남면 월성리 111번지, 시도1호선 옆에 있다.
구광조(1905~1973) 씨의 공덕을 새긴 '월정 구광조 공 기덕비' 모습. 사남면 월성리 111번지, 시도1호선 옆에 있다.

구룡저수지는 1950년대 후반에 들어섰다. 구광조 씨가 사남면장뿐 아니라 사천수리조합장을 지낸 사실에 비춰 구룡저수지 건설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구룡저수지 건설로 사남면 아랫동네의 벼농사에 물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게 됐다.

사남면 소재지에 있는 지금의 삼성초등학교의 옛 이름이 삼성국민학교다. 이 학교는 1947년에 사남국민학교의 사남분교로 인가를 받은 뒤 1954년에 개교했다. 1949~1951년에 구광조 씨가 사남면장을 지냈기에 삼성초등학교의 개교에도 깊이 관여했을 가능성은 짙다. 그는 용남중‧고등학교의 운영 주체인 재단법인 용남학원의 초대 이사장을 지내기도 한 만큼, 육영사업 공헌 역시 미뤄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월정 구광조 공 기덕비'는 시도1호선의 도로 확장 공사 구역에 들어 있다. 화전마을 김광정(왼쪽) 씨와 김기석 전 사천시의원이 기덕비 앞에서 이전 대책을 의논하는 모습.
'월정 구광조 공 기덕비'는 시도1호선의 도로 확장 공사 구역에 들어 있다. 화전마을 김광정(왼쪽) 씨와 김기석 전 사천시의원이 기덕비 앞에서 이전 대책을 의논하는 모습.

그의 또 다른 경력 중 하나는 ‘민선 경남도의원’이다. 그러나 그 길은 쉽지 않았다. 1956년에 있었던 제2회 도의원 선거에서는 그 유명한 ‘자유당 부정선거’의 희생양이었다. 1960년에 있었던 제3회 도의원 선거에서는 당당히 당선했으나 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 군부 정권의 탄압으로 정치 생명이 일찍 끊기고 말았다. 당시 그의 당적은 민주당이었다.

이렇듯 구광조 씨는 격동의 시기였던 20세기 초중반에 사천 사남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사람이다. 하지만 타계 이후 그의 삶을 기억하는 이는 드물다. 월성마을에 그의 직계 후손이 남아 있지 않다는 점도 작용한 듯하다. 다만 화전마을 출신의 김광정 씨와 김기석 전 사천시의원이 구광조 씨의 기덕비 이설 추진위원회를 만들어 현재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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