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 방류가 낳은 갈등의 현장…선(善)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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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 방류가 낳은 갈등의 현장…선(善)은 무엇일까?
  • 최재길 시민기자
  • 승인 2023.09.07 09: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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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야화(野生野話)] 가화천
가화천은 오랜 세월 실개천으로 있었으나 1969년에 남강댐이 들어서면서 인공 방류구로 변했다.
가화천은 오랜 세월 실개천으로 있었으나 1969년에 남강댐이 들어서면서 인공 방류구로 변했다.

[뉴스사천=최재길 시민기자] 가화천(加花川)은 진양호의 넘치는 물을 방류하는 인공 하천이다. 원래는 실개천이었지만, 1969년 남강댐을 건설하면서 홍수조절용으로 넓혔다. 남강이 가로지르는 진주 시내가 잠기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 한다. 

인공 방류 중인 가화천.
인공 방류 중인 가화천.

진주는 옛날부터 수해가 심했다. 1936년 병자년 대홍수 때 진주성 일부가 무너지기도 했단다. 그러니 일찍이 남강물을 사천만으로 돌리자는 의견이 나왔던 거지. 18세기 정조실록에 따르면 장재곤이라는 이가 남강 물을 사천만으로 돌려 홍수 방지와 농토 확보를 건의했단다. 구한말 영남춘추에는 홍수 방지와 함께 8,000정보의 비옥한 토지를 얻을 수 있다는 구체적인 기록도 있단다. 이 의견들은 실행되지 않았다.

하지만 1960년대 들어서는 실행이 되었으니, 상전벽해(桑田碧海), 뽕나무밭이 변해 바다를 이루었구나! 세상일은 내일을 모르는 법, 가화천 방류로 묻혀있던 중생대 공룡 화석층이 드러났다. 1997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진주 유수리 백악기화석산지다. 그 뒤 공룡 발자국 화석도 나오는 등 가화천은 우리나라에서 공룡 뼈 화석이 많이 발견되는 곳 중 하나다. 1억 년도 전에 살았던 공룡들이 보따리를 슬금슬금 풀어내고 있는 거지. 그뿐 아니다. 나무화석이라 부르는 규화목도 대량으로 나왔다. 30년 전만 해도 동네엔 규화목 하나둘 없는 집이 없었단다.

사천만에 닿은 가화천
사천만에 닿은 가화천

이제 수많은 이야기를 품은 가화천에 나가봐야 할 때로구나! 진양호에서 시작되는 하천의 상류에서부터 사천만으로 이어지는 하류까지 쭉 둘러보기로 했다. 먼저 뚫어낸 암반의 급경사를 타고 물이 쏟아지는 상류를 스쳐왔다. 그리고 외진 산골짜기 관동마을에 들었다. 하천으로 내려가는 길, 왕버들 숲에는 온갖 새소리와 매미 소리로 가득하다. 건너 숲에선 무심한 뻐꾸기가 운다. 하천에는 백로와 왜가리가 하염없이 앉았고, 민물가마우지 한 무리는 시커먼 날개를 퍼덕이며 어디론가 날아간다. 강바닥에는 메마른 자갈이 뒹굴고. 그 사이 달뿌리풀은 채 자라지도 못하고 반쯤 누워있다. 엄청난 물줄기를 버텨내느라 혼쭐이 난 모양새다. 하천에서 낚시하는 관동마을 주민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올해만 대여섯 번 방류했다. 예전에 가화천 주변에는 논과 밭이 많았다. 옹기를 굽는 등 마을에 사는 사람들도 많았다. 남강댐 방류로 집과 논밭이 침수되니 대부분 보상을 받아 떠나고 일부는 아직 눌러살고 있다. 

달뿌리풀
달뿌리풀

하천을 따라 용수마을 쪽으로 발걸음을 놓는다. 실개천이 가화천으로 모여드는 곳에 조그마한 물웅덩이가 여럿 보인다. 흰뺨검둥오리 몇 마리 개구리밥으로 가득 찬 수면 위를 부드럽게 미끄러져 나간다. 이때 진양호 물을 방류한다는 방송을 듣고 가산마을로 내려왔다. 태풍에 대비하는 모양이다. 강바닥을 훤히 드러내던 가화천이 사천만 바다를 눈앞에 두고선 어느새 푸른 물결로 출렁인다. 양쪽에서 달려오던 산자락이 납작 엎드린 사이로 사천 시내가 빼꼼 내다보인다. 지리산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내리쏟아져 진양호에 섰다가 바다에 들기 직전이다. 온갖 생명을 적신 물이 바다로 모여드는 이유는 하늘에 오르기 위함일 거야! 

흰뺨검둥오리
흰뺨검둥오리

오후 5시 30분! 방류는 보지 못하고 돌아섰다. 다음날 메말랐던 하천은 어느새 굼실굼실 거친 물살을 토해내고 있다. 구조물에 부딪힌 물줄기가 솟구쳐 오르고 운무는 그 위를 감싼다. 간헐천의 변화무쌍하고 무서운 힘을 실감하는데,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위협하는 순간이다. 가화천 방수로가 개통되자 사천만 주민의 삶에 갈등이 일어났다. 많은 물이 한꺼번에 쏟아지면서 염분농도가 묽어져 해양 생태에 영향을 끼쳤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어민에게 돌아갔다. 저지대는 침수 위험에 시달렸다. 인간의 활동과 생태환경 사이의 갈등, 안전을 누리는 쪽과 피해를 보는 쪽의 갈등. 서로 다른 입장이 갈등하는 사이에서 타협점을 찾는 일. 이것은 늘 쉬운 일이 아니었다. 상선약수(上善若水), 인간 세상에 최고의 선은 무엇일까?? 

느티나무
느티나무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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