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도 벌은 날아오르고 산초나무는 열매 맺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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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도 벌은 날아오르고 산초나무는 열매 맺을까?
  • 최재길 시민기자
  • 승인 2023.09.14 09: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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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야화(野生野話)] 뜸벌산 희망봉
뜸벌산에서 희망봉으로 향하는 숲길. 이 길에서 만난 벌과 나비, 여러 풀꽃들을 후세들도 길이길이 볼 수 있기를!
뜸벌산에서 희망봉으로 향하는 숲길. 이 길에서 만난 벌과 나비, 여러 풀꽃들을 후세들도 길이길이 볼 수 있기를!

[뉴스사천=최재길 시민기자] 뜸벌산 희망봉을 찾아가는 길이다. 지나는 길, 화암저수지 둑에 서 있는 큰 나무가 눈길을 끈다. 얼마 전에 지인이 알려준 이팝나무다. 예전에는 두 그루의 이팝나무가 있었다는데 한 그루는 수명을 다했다. 살아남은 이 나무는 150살이 넘었다는구나! 나무 둥치에는 사연이 담긴 글귀가 붙어 있으니. 경북도지사를 지낸 김수학 선생이 이 나무를 보면서 썼다는 책의 내용이다. 

1970년대만 해도 보릿고개가 심했다. 들판에 심어놓은 보리가 익을 때까지 배고픈 봄의 시기를 잘 견뎌내야 했다. 농민들은 들판만 바라보기 일쑤였다. “이팝나무꽃 필 적엔 딸네 집에도 가지 마라.” 선생은 보리누름에 이팝나무 흰 꽃이 피는 것을 보릿고개의 신호로 풍자했다. 보슬보슬 하얀 꽃 무더기는 쌀밥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보릿고개에 저 꽃을 보면서 쌀밥 먹기를 소원했을까? 그러고 보니 이팝나무 거친 가지들이 그 시절 보릿고개의 애환을 간직한 듯 보인다. 연못을 향해 늘어진 가지는 물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하고. 잠시 잠깐 의식이 시간을 돌려세운다. 

이팝나무
이팝나무

화암마을 서쪽으로 비켜선 등산로 입구에 섰다. 뜸벌산이라는 이름이 정겹고도 유별나구나! ‘뜨는 벌’ 벌이 날아오르는 것 같아 붙여진 이름이란다. 1872년지방지도에는 부봉산(浮蜂山)으로 적혀 있으니 또 그렇다. 주민들은 뚬벙산이라 부르고 있단다. 정확한 유래는 알지 못한다. 이 산은 사천의 진산(鎭山)이라 한다. 하늘 기운이 흐르는 산맥의 정기를 고을로 이어주는 맥점이었다. 한때는 신성한 산이었겠지만 지금은 시민들이 즐겨 찾는 운동코스다. 한낮 무더위를 피해 등산로를 따라 발걸음을 올려놓는다. 저 멀리 멧비둘기 우는 소리 들린다.

산초나무와 호랑나비
산초나무와 호랑나비

들머리에는 이제 막 피어나는 산초나무 한 그루 있다. 온갖 곤충들이 찾아와 꿀을 빤다. 벌·나비는 떼로 몰려왔다. 산초나무, 붉나무, 싸리나무들은 가을 무렵에 꽃을 피우는 나무다. 느지막이 꽃을 피우니 열매 맺는 일도 서두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꽃들은 꿀과 향기로 수많은 곤충을 유혹한다. 그런데 요즘 매개 곤충 꿀벌은 극심한 위기를 맞고 있다. 복합적인 이유가 있겠지만 환경파괴와 기후 변화가 대표적으로 맞물려 있단다. 

파리풀
파리풀

해가 드는 길섶에는 파리풀이 모여서 하얀 입술의 이야기를 나눈다. 가냘픈 꽃잎은 소곤소곤 모여있지만, 그냥 지나치는 사람은 누구도 듣지 못한다. 숲에는 매미 소리가 한창이다. 나무 의자에 걸터앉아 쉬고 있는데 바로 앞에서 애매미 한 마리 큰소리를 지른다. 한줄기 산들바람이 불어와 식은땀을 걷어 간다. 점점 제 목소리를 키우는 풀벌레 소리가 계절의 변화를 이끌어 간다. 꼬리 끝이 빨간 잠자리 한 마리 풀대 끝에 앉았다가 파르르 날아간다. 가을이 저 꼬리 끝에 매달린 듯하구나! 저만치 맑은 땅을 좋아하는 짚신나물의 노란 얼굴이 반갑다. 야생의 풀꽃들은 꾸미지 않아도 어찌 이리 해맑고 아름다울까? 떡갈나무 도토리는 누런 가시 갑옷을 입고 고개를 내밀었다. 그래~ 너는 따가운 햇볕에 토실토실 철이 들고 있구나. 

짚신나물
짚신나물
잠자리
잠자리

야생의 자연을 바라보는 새 어느덧 희망봉에 다다랐다. 숲 가지를 비틀어 저 멀리 사천만을 내려다본다. 기후 위기는 2023년 들어 전 세계의 재앙으로 눈앞에 드러나고 있다. 신냉전으로 치닫는 대립의 틈바구니는 점점 그 영역을 넓혀가고. 사라져가는 꿀벌은 하나의 징조일 뿐이겠지? 산초나무 열매가 채 익기도 전에 빙하 같은 겨울이 들이닥치면 어떡하지? 부지런히 희망봉에 오르는 사람들! 무심코 그 아래를 내려다보는 사람들! 이팝나무의 하얀 꽃은 배고픈 시절 쌀밥, 희망의 아이콘이었다. 우리들 하나하나는 어떤 희망 앞에 서 있는가? 벌이 날아올라야 할 텐데! 뜸벌산 산초나무 열매가 튼실한 새싹을 틔워낼 수 있도록!!!

산그림자
산그림자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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